[영화] 모노노케 히메 :: 선악이 공존하는 인간과 자연의 대립

영화 <모노노케 히메>는 나에게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위엄을 제대로 각인시켜준 작품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부터 탄생된 1997년작으로써 국내에서는 <원령공주>라는 타이틀로 2003년에 개봉된 것이 특징인데, 오래간만에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북쪽 변방에 터전을 잡고 생활하던 에미시 일족의 차기 족장 아시타카는 멧돼지의 모습을 한 재앙신이 숲에서 갑작스레 나타나 마을로 돌진하는 걸 발견하고 화살을 날려 쓰러뜨린다. 대신, 오른팔에 죽음의 저주가 새겨져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서쪽으로 먼 길을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시타카는 서쪽 끝에 자리잡은 사슴신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와 함께 철을 만드는 마을인 타타라의 지도자 에보시, 들개신 모로의 곁에서 인간임을 부정하는 산과 마주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다. 

 

태곳적 모습을 잃지 않음에 따라 거대한 몸을 가진 신들이 존재하는, 깊은 숲에 둘러싸인 나라를 배경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산을 파고 나무를 잘라냄으로써 자연의 증오와 한을 불러 일으킨 인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신과 그로 인해 무참히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대신해 숲을 지키려 희생을 불사하는 신들을 증오하게 된 인간이 팽팽하게 맞서며 선사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 속에서 인간도, 들개도 아닌 채로 살아가던 산의 모습이 도드라졌다. 인간에게 버려진 이후에 들개의 신 모로가 키워낸 아이는 명확한 존재들의 경계에 자리함에 따라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는데, 아시타카를 만나며 변화를 꾀하는 과정을 마주할 수 있어 이 또한 흥미로움을 자아냈다. 

 

숲을 지켜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거침없이 뛰어든 위험한 전투에서 용맹스러움을 맞닥뜨리게 해주었던 산이 아사타카의 진심에 흔들리는 눈빛을 선보였던, 바로 그 순간이 감명깊지 않을 수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인간다운 면모를 확인하게 도왔으므로 더더욱. 

 

 

이러한 이유로 아시타카가 산에게 건넨 얘기도 명대사로 기억되기에 충분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산을 유일하게 알아 본 장본인으로 나지막이 경탄을 쏟아내며 읊조리던 말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남겼기 때문에, 중립을 원하는 아시타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그리고, 자연에 대항하는 인물로 그려진 에보시의 카리스마 역시도 남달라서 눈길이 절로 갔다. 온화하면서도 탁월한 능력을 겸비한 리더로 마을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한편, 사슴신의 머리를 노림에 따라 숲을 위협하는 빌런으로 입체적인 캐릭터를 맞닥뜨리게 도와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아무리 신들이라고 해도 인간을 공포로 치닫게 만든다면, 악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기며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이뤄나가는 순간들이 탄성을 내뱉게 도왔다. 마을에서 채취한 철로 무기를 만들어 미리 세워둔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모습도 대단했다. 제철소 일을 도맡은 여성들의 주체성도 돋보였다. 

 

 

다만,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에는 격하게 동의한다. 이로 인하여 생태계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점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허나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현실인 게 분명하므로, 자연을 해치치 않는 방법을 찾아 상생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하여 펼쳐진 인간의 손길을 타지 않은 아름다운 생명의 신비로 가득한 숲에 매료되던 찰나, 유유히 거닐던 나무의 정령 고다마의 행렬이 황홀함을 더했다. 영화 <모노노케 히메>는 사실 마냥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은 아니었고, 때때로 작품 안에 깃든 잔인함을 목도해야 했지만 이에 따른 경각심이 극대화돼서 다시 봐도 명작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슴신 
다이다라봇치

낮에는 사슴신, 밤에는 다이다라봇치의 형상을 띄는 존재는 삶과 죽음을 관장하며 생명을 구함과 동시에 빼앗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특히, 인간에게 더없는 잔혹함을 선사하는 자연을 대변함으로써 두려움을 품게 만든 사슴신으로 말미암아 이때 만큼은 소중한 것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인간이 한없이 연약해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모노노케 히메> 속 인간과 자연은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었다. 덕분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확인할 수 있어 뜻깊었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을 향한 경고와 더불어 경이로움과 무서움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자연의 면모를 일깨워주며 짙은 여운을 남기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아시타카와 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시타카를 좋아하지만 인간을 용서할 수 없는 산은 숲으로, 그 누구의 편도 아니지만 인간으로의 삶을 지속해야 하는 아시타카는 타타라 마을에서의 정착을 결심하며 각자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을 중심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공존을 선택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산의 곁을 지키는 들개와 아시타카를 떠나지 않는 야쿠르의 모습도 앞서 언급한 내용과 일맥상통해서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결말 역시도 중립에 가까웠던 영화 <모노노케 히메>였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만드는 작품 속 메시지가 수려한 영상미와 그에 걸맞는 음악의 조화로움을 바탕으로 눈과 귀를 사로잡아서 다시 보길 잘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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