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 :: 안녕, 내 곁의 낯선 사람

영화 <완벽한 타인>은 뜻밖의 재미에 색다른 통찰을 더하며 삶을 돌아보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오래간만의 커플모임을 통하여 한 자리에 모임으로써 식사를 하게 된 친구들이 휴대폰 게임을 진행하면서 펼쳐진 이야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과 메시지를 경험하도록 하며 흥미로움을 자아냈다.

 

 

태수, 석호, 준모, 영배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돈독한 우정을 쌓아 온 동갑내기 소꿉친구들이다. 정신과 의사 예진과 성형외과 의사 석호 부부는 변호사 태수와 전업주부 수현, 레스토랑 사장인 준모와 수의사 세경, 현재 무직 생활 중인 영배를 초대해 집들이 파티를 연다. 이때 예진이 핸드폰 게임을 제안하고, 그로 인해 일곱 사람은 긴장감 가득한 시간 속에 빠져들고야 만다. 

 

게임의 규칙은 이렇다. 테이블 위에 잠금을 해제한 휴대폰을 올려두고, 정해진 시간 동안 도착한 내용 전부를 모두와 공유하는 것. 이로 인해 그동안 감춰져 있던 7명의 비밀이 하나 둘씩 드러나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깊은 수렁으로 한없이 가라앉기에 이르렀다. 

 

수현 : 염정아, 태수 : 유해진

태수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가장의 결정체로 외출할 때면 아내의 속옷 스타일까지 관여하는 지독함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수현은 그런 남편에게 헌신하며 아이를 키워나감과 동시에 시어머니를 모시는 상태였는데, 이로 인해 쌓이는 답답한 마음과 스트레스를 좋아하는 문학을 통하여 해소하며 위안을 얻었다. 

 

예진 : 김지수, 석호 : 조진웅

모임을 주최한 예진과 석호는 속도위반으로 결혼하여 슬하에 스무 살이 된 딸 소영을 두었다. 예진은 소영이 남자친구와 가까질수록 불안함을 표출하며 단속하려 들고, 석호는 딸을 지지하며 신중한 선택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이에 따른 의견 충돌이 잦은 편이다.  

 

결혼 전, 예진의 아버지가 석호와의 결혼을 크게 반대했던 사실이 있다. 

 

세경 : 송하윤, 준모 : 이서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세경과 준모는 신혼부부 특유의 달달함을 자랑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로, 준모는 세경의 집안 도움을 받아 각종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이후 레스토랑 운영에 온 신경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 와중에 비혼주의자였던 세경을 결혼으로 이끈 장본인인 준모의 과거에 여자가 많았음을 폭로하며 우스갯소리를 내뱉던 친구들의 대화가 의미심장했다. 

 

영배 : 윤경호

이번 모임에서 유일하게 동반자 없이 홀로 방문한 영배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생님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그만두고 이혼한 뒤, 현재는 여자친구와 교제 중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친구들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해 준 적이 없다. 이날도 여자친구가 몸이 좋지 않아 혼자 오게 되었음을 피력했다.

 

태수, 석호, 준모, 영배는 오래된 친구 사이지만 묘한 벽이 그들 사이를 가로 막고 있었다. 그로 인해 태수, 석호, 준모는 골프모임 얘기를 영배에게 하지 않음에 따라 이로 인한 갈등이 불거졌다. 하지만 영화 <완벽한 타인>을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영배가 셋보다 훨씬 나았다.  

 

이날 모임에 참여한 일곱 사람은 저마다 각자 다른 비밀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곁에 존재하는 소중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감춰야만 하는 그런 비밀을 말이다. 허나 예기치 않았던 핸드폰 게임으로 인해 원치 않았던 내막이 밝혀지게 됐고, 그리하여 모두가 파국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휴대폰을 바꾸는데 합의한 두 친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방향으로 말미암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격으로, 친구와의 우정을 넘어서 부부 관계마저 금이 가기 직전에 다다랐다. 

 

식사 중 걸려 온 전화를 통해 뒷담화를 들킨 건 오히려 평범해 보였다. 도와준답시고 휴대폰 쪽으로 물이 든 컵을 쏟아버리는 재치에 웃음이 툭 튀어 나오는 찰나도 없지 않았다. 처음 몇 번은 맛보기에 불과했지만 게임이 계속될수록 좌불안석의 극치를 선사했으므로, 이에 따른 파장이 만나게 해줄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서로가 얽히고 설킨 비밀이 파헤쳐져 삶의 어두운 이면이 두드러지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그리하여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상황이 이어짐에 따라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에 담긴 속사정까지 굳이 알아야 할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덕분에 "모든 관계는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석호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오묘한 기분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쯤, 영화 <완벽한 타인>의 반전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충격을 전했다. 이들이 함께 모인 밤, 개기월식으로 인해 붉은 달이 떠올랐다 사라지자 모든 것이 달라진 것이다.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졌을 때 나타난 블러드 문이 가져다 준 기이한 시간의 의미가 작품을 바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묵직하게 울리기 충분했다. 

 

휴대폰은 인생의 블랙박스와 같으며, 사람의 본성은 월식 같아서 잠깐은 가려져도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음을 일깨워준 명대사도 인상깊게 남았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있을 리 만무하고, 우리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이므로 굳이 서로에 대해 많은 걸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도 심금을 울렸다. 

 

예진이 거짓말은 남이 아니라 너 자신을 속이는 짓이며 결국 망가지는 건 너라며 소영을 다그치는 말 속에 자기 자신을 향한 진심이 곁들여져 있는 것 같아 이 역시도 곱씹어 볼만 했다. 

 

영화는 사람들이 세 개의 삶(공적인 삶, 개인적인 삶, 비밀의 삶)을 산다고 명시했는데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완벽한 타인>은 다소 극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됐을 뿐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적당히 나만의 비밀을 지켜나가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단, 발각되면 파멸에 치닫는 그런 어마무시한 비밀은 사절이다. 

 

배우들의 명연기로 인해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작품으로, 애증의 멜로와 더불어 코미디와 스릴러를 오가는 장르의 묘미가 남달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7명의 주연 외에 목소리 출연으로 존재감을 내세운 인물도 없지 않았는데 수현의 친구 소월 역의 라미란이 특히 그랬고, 세경의 전남친 연우 역의 조정석은 뒤늦게 엔딩 크레딧에서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7명의 케미와 인물들의 개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몰입이 더해졌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완벽한 타인>은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올해 5월에 동명의 연극으로 초연되며 무대에 오를 예정이기도 하다. 개막일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연극 <완벽한 타인>이 궁금해져서 봤는데, 공연으로 올리기에 안성맞춤인 작품이라고 여겨져 공연장에서 펼쳐질 이야기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코로나로 인해서 공연장에서의 관람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슬프지만. 

 

그래도 제한된 공간에서 배우들의 티키타카로 가득 채워질 무대에 대한 호기심을 애써 숨기지는 않으려고 한다. 연극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이 아닌, 원작 영화의 캐릭터와 내용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흘러간다고 해서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다. 

 

영화를 통해 현실을 돌아보며 나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를 돌아보게 해줬던 영화 <완벽한 타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는 일이 적어진 요즘이라 생각이 더 많아지게 만든 작품이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영원히 낯선 사람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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