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기 :: 믿음을 경계하고, 의심은 게을리하지 말 것 (이주영X문소리X구교환X이옥섭)

감독 : 이옥섭

여윤영 : 이주영

이경진 : 문소리

이성원 : 구교환

메기 : 천우희 

 


영화 <메기>는 참신한 발상을 기반으로 탄생된 이야기 속에 녹록치 않은 현실을 녹여내며 신선한 자극을 전해줌으로써 색다른 여운을 남긴 작품이었다. 그리하여 각양각색의 사건사고 속에서 피어난 믿음과 의심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감에 따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게 해줘서 흥미로웠다.

 

 

사랑을 나누던 연인들의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이 공개되자 마리아 사랑병원은 발칵 뒤집힌다. 간호사 윤영은 자신과 남자친구 성원이 사진의 주인공인 것만 같아 두려워하며 사직서를 준비하지만, 막상 부원장 경진이 퇴사를 권유하자 병원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그날은 놀랍게도 경진과 윤영만 병원에 출근을 한 상태였다. 다른 직원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경진은 엑스레이 사진이 계기가 됐을 거라 의심하고, 이때 윤영은 아파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며 직접 집으로 찾아가 확인을 해보자고 말하며 경진의 의심을 믿음으로 바꿔놓는다.  

 

한편 사과를 깎다가 다쳤다며 병원을 찾아와 치료받기를 원하던 환자가 총상을 입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경진의 의심은 윤영의 믿음을 불안으로 변화시키며 긴장감을 높였다. 그리고 결국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부원장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장면이 눈 앞에 나타나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가능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믿음과 의심을 반복하며 선사하는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펼쳐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로 인하여 믿음과 의심의 경계에서 균형을 잘 잡고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을 맞닥뜨리는 일이 가능할 수 있어 감탄을 터뜨리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참고로, 영화 <메기>는 믿음이 아닌 의심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가 진행되는 작품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라는 명대사가 의미하는 바 역시 이와 일맥상통했다. 

 

무언가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랐을 때 만큼은 믿음을 잠시 접어두고, 의심이 더 커지지 않게끔 실체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 여기서 확실한 건, 이런 순간에 있어 절대적인 믿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 <메기>는 상사의 의심이 직원에게로 향했을 때, 같은 직장의 동료가 동료에게 의혹을 품었을 때, 연인이 연인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했을 때 겪게 되는 불신의 감정과 이에 따른 결과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며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도왔다. 다만 때때로 의심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일도 없지 않으므로, 믿음이 필요한 찰나 역시 만나보도록 하며 남다른 밸런스를 갖춘 작품의 묘미를 일깨워줘서 눈여겨 볼만 했다. 

 

 

여기에 더하여 불법촬영, 재개발, 청년 실업, 데이트 폭력 등의 사회 문제를 어색함 없이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영화 <메기>의 탁월함이 도드라졌다. 이옥섭의 재기발랄한 연출 속 무게감 있는 메시지가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덧붙여, 이성원 역을 맡은 배우 구교환이 연인 이옥섭 감독과 함께 각본을 담당함으로써 탄생된 작품의 완성도도 기대 이상이었다. 

 

주연을 맡은 이주영, 문소리, 구교환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 안 그래도 이 작품에 대한 입소문이 자자해서 꽤 오래 전부터 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서야 보게 됐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한호열 상병으로 출연한 구교환으로 말미암아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라서 참 다행스러웠다. 디피로 먼저 만나서 연기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연출과 각본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어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덧붙여, 영화 <메기>에는 진짜 메기가 나온다. 덕분에 메기의 목소리를 담당한 천우희의 내레이션이 작품의 개성을 한껏 더 극대화시켜줘서 눈과 귀를 쉽사리 뗄 수 없었다. 평소에는 물 속에서 숨쉬며 헤엄칠 뿐이지만, 지각 변동에 예민한 생물이라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이를 감지해 어항 위로 튀어오르며 위험을 알리는 존재의 위엄이 눈부시게 빛났다. 

 

 

싱크홀이 생겨나며 벌어진 결말의 행방도 그래서 더욱 감명깊었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에 대한 메모가 머리 속에 떠오르며 강렬한 명장면으로 거듭나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윤영과 성원의 위태로운 관계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둘의 모습과 겹쳐 보여 이 점도 기억에 남았다. 믿음을 경계하고, 의심을 게을리 하지 말 것. 영화 <메기>가 내게 남긴 이 한 문장은 어떤 사이에서든 통용되어야 하지만 특히 연인이라면 더더욱 몸과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곁에 두어야 할 믿음과 의심에 대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풀어낸 영화 <메기>와 함께 하게 돼 즐거웠다. 이 작품만의 멋드러진 색감과 메기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속 인물들의 삶에 집중해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구덩이의 등장이 전한 통쾌한 결말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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