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포석정지(입장료 있음) :: 수로의 흔적과 자연의 어우러짐이 풍류를 전해준 여행지

경주 포석정지에선 이야기가 있는 경주여행이라고 이름 붙여진 안내판을 통하여 신라왕경도의 모습을 만나보는 일이 가능해 흥미로웠다. 그 속에서 포석정의 위치가 왼쪽 하단에 자리잡은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이 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경주 포석정지의 입장료로는 어른 기준 2,000원을 지불했다. 이와 함께 주차장도 유료로 이용해야 했는데, 소형은 2,000원이고 대형은 4,000원이었으니 이 점을 참고해서 방문하면 좋겠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위치한 포석정지는 사적 제1호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의례 및 연회 장소로 이용되던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별궁이었는데 정자 등의 건물이 모두 사라짐에 따라 화강석으로 만든 수로만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이것의 길이는 약 22m에 달한다. 역대 임금들은 이곳에서 유상곡수연을 베풀며 신하들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유상곡수연이란 굽이도는 물에 술잔을 띄워 놓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오면 시를 읊는 놀이의 일종이라고 보면 된다. 덧붙여, 멀리서 바라봤을 때 전복의 껍데기 모양을 닮아 포석정의 '포'에 전복 '포(鮑)'가 쓰였음을 깨닫게 돼 인상적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바라보니까 확실히 비슷한 모양새가 두드러져 한참을 눈여겨 볼만 했다. 

 

포석정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남산의 신이 추는 춤을 따라 추면서 '어무산신무'라는 신라춤을 만들었다고 일컬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신라 제55대 왕인 경애왕이 927년에 후백제 견훤 군대의 습격을 받아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해 1999년에는 정비를 목적으로 시굴조사를 시행해 포석정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한 중요한 유물 '포석'명 기와가 출토된 바 있다고. 학계에서는 연회장소보다 국가적인 제의를 행하던 신성한 곳이었다는 견해가 제시되었으나 국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차이를 보이는 중이란다. 

 

 

화강암 63개를 이어 만든 뒤에 물을 채워 흘렸으며, 그 위에 띄운 술잔이 떠내려갈 때 기울어지거나 벽에 부딪히는 일이 없었다는 점도 감탄을 자아냈다. 게다가 수로의 깊이를 정확히 측정하여 술잔에 천천히 떠내려가게끔 제작했다고 하니, 노는 일에도 진심이었던 선조의 재치가 느껴져 재밌었다. 시를 읊으며 술 한 잔을 기울이는 순간마저도 한치의 오차를 허용치 않았다니 그저 대단할 수 밖에. 역시, 풍류의 민족이 아닐 리가 없었다.

 

여러모로 놀라움과 탄성을 내뱉게 만들었으나 경주 포석정지의 볼거리는 앞서 만나 본 수로가 거의 전부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허무함이 느껴지는 때가 있긴 했지만, 이러한 이유로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아 한적한 분위기 만큼은 제대로였다. 

 

봄에 와서 푸르게 우거진 나무와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만발한 꽃들을 원없이 봤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수로 주변을 둘러보며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은 여행지였다.  

 

덧붙여, 경주 포석정지 현장에 발을 들이게 되니 예전에 VJ 특공대에서 방송된 가게 하나가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신촌의 이색술집이자 무제한 막걸리 주점으로 소개되었던 포석정이 바로 그곳인데, 경주 여행 중에 마주한 포석정의 수로를 재현해 놓은 공간으로 꾸며져 감명깊었다. 직접 가본 적은 없고, 코로나 시대로 말미암아 수로는 더 이상 운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꽤나 기발한 아이디어였다는 점만은 인정하는 바다. 

 

 

덧붙여, 포석정 한 켠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림에 따라 유물이 훼손되었다고 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 부분이 좋은 쪽으로 해결이 되면 좋으련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보는 내내 마음이 아렸다. 

 

경주여행 산책코스로 괜찮아 보였던 포석정지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관람요금과 주차료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볼거리가 풍성하진 않으나 경주에 오면 한 번쯤 들르게 되는 곳인 건 분명하므로. 

 

여러모로 수로의 흔적과 자연의 어우러짐이 풍류를 전해주었던 여행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포석정의 위엄을 이렇게 직접 실물로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다른 계절에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봄나들이 여행으로는 썩 좋은 장소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피톤치드로 온 몸을 가득 채우고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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