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굴레에 갇힌 이들의 숙명이 담긴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

드라마 <시지프스 : 더 미쓰(SISYPHUS : THE MYTH)>는 운명의 굴레에 갇힌 이들의 숙명을 담아낸 타임슬립 SF 판타지 미스터리물로, 첫회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존재하는 작품이었다. 천재공학자이자 퀀텀앤타임 대표 한태술이 원인불명의 비행기 사고에 휘말린 이후, 형 한태산(허준석)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파헤쳐 나가다 세상을 구하려 미래에서 온 강서해와 만나 의기투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로움을 자아냈다. 특히, 풍부한 상상력과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목해 완성시킨 세계관이 전하는 메시지가 의미있게 다가왔다. 

 

 

코린토스의 왕인 시지프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산꼭대기에 커다란 바위를 밀어올리는 형벌에 처해진다. 그러나 바위가 산꼭대기에 도달하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짐으로써 영원히 반복되는 행위를 지속해 나가야만 했는데, 태술과 서해의 운명 역시도 시지프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음으로 인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는 신화적 관점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 전개를 이어나간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로 인해 하나의 세계에서 파생된 두 개의 미래 중 절망이 아닌 희망을 쟁취하기 위한 고군분투는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강서해 : 박신혜 

강서해는 2035년, 미래에서 온 구원자로 스펙타클한 액션의 정점을 선보이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다만, 이 모든 능력이 생존을 위한 본능이자 전략이어야 하는 시대에 맞춰 다져진 것임을 알게 되니 삭막한 미래의 암울함이 절실하게 전해져 와 마음이 아렸다. 

 

서해가 과거로 오게 된 이유는 태술이 업로더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핵전쟁도 일어나지 않고, 본인의 세계 또한 지금과 확연히 달라질 테니까. 무엇보다도 한태술을 구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 자기 자신임을 깨닫고, 내가 한 이야기를 믿어 보려 한다는 굳은 결심이 인상깊게 와닿았다. 

 

용맹한 전사로 태술의 보디가드를 겸하며 눈 앞에 펼쳐질 시간을 준비하던 강서해 역의 박신혜는, 역동적인 액션씬을 멋지게 소화함은 물론이고 탁월한 사격 솜씨에 따른 카리스마 역시도 빛을 발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장르와 캐릭터에 구애받지 않는 배우로의 성장이 눈부셔셔 보는 내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한태술 : 조승우

한태술은 뛰어난 두뇌를 보유함에 따라 헤어나올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 태풍의 눈과 같은 존재감을 뿜어내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너드미를 장착한 브레인으로 기술의 발달에 기여하는 바가 컸지만, 그게 오히려 득보다 실로 다가와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게 만드는 딜레마로 작용하며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닥뜨릴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함을 경험하게 해주는 인물이기도 했다. 

 

태술은 어릴 때 부모를 잃었으나 형의 무한한 애정 속에서 재능을 발휘하여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머쥔 사업가로 발돋움했고, 그리하여 이기적이고 오만한 면모가 도드라지는 캐릭터였다. 허나 서해로 인해 세상을 구하는 임무에 몰두하면서 여태껏 보여줬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마주하게 해주는데, 나중에는 그에 따른 희생마저 감수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어 깜짝 놀랐다. 어느 정도는 예고된 사실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나 그래도 실제로 보게 되니 충격이 한층 더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새로운 캐릭터로 변화를 시도한 조승우는 한태술 그 자체였다. 정장 대신 후드티에 청바지를 주로 착용함으로써 확인할 수 있었던 캐주얼 패션과 더불어 앞머리를 내려 이마를 덮은 헤어스타일이 색다른 개성을 뽐냈고, 적당한 위트에 능청스러움이 겸비된 말솜씨와 위기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순발력 역시도 탄성을 내뱉게 만들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겉으로 드러내며 솔직함을 표출하는 모습도, 이렇게 말 많고 유머러스한 역할도 처음 보게 된 거였는데 팔색조다운 매력을 마주하게 해줘서 보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위험천만한 찰나에서 벗어나고자 태술이 탄생시킨 소소한 발명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콜라로켓폭탄과 EMP에 이어 공구상가에 마련된 장치를 먹통이 된 유선 전화기에 연결해 서해와의 통화가 성사되는 장면이 짜릿함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기에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를 위해 활용된 양자역학의 시간기술도 눈여겨 볼만 했다. 2021년에 태술에 의해 발명된 타임머신 업로더, 미래에서 전송한 것을 전송한 것을 현재에서 받는 장치인 다운로더를 중심으로 이야기에 꼭 필요한 내용을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친절하게 풀어낸 점도 쉬운 이해를 도왔다. 

 

덧붙여, 조승우가 선보이는 멜로를 굉장히 오래간만에 보게 돼서 이 또한 반가웠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뭉친 강서해와 한태술은 강한커플이자 제리즈라는 애칭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위기 속에서 티격태격하던 와중에 은근하게 터져 나오는 둘의 달달한 케미도 기대 이상이라 만족스러웠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과 따뜻한 미소로 서해를 바라보다가도 썬의 얘기가 나오자마자 질투하며 돌변하던 태술의 표정이 웃음을 터뜨리게 했다. 

 

서해는 화려한 몸놀림으로, 태술은 타고난 머리로 각자가 지닌 강점을 총동원하여 서로를 지키려 애쓰던 모습도 감동을 전했다. 그래서 더더욱,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두렵기는 해도 죽음을 피할 생각이 없었던 서해와 세상보다 소중한 사람을 구하고 싶어 죽음을 향해 몸을 내던지던 태술의 결심이 언젠가는 이 모든 운명의 굴레를 끊어낼 수 있게 도왔을 거라는 기대감을 끝까지 놓을 수 없었다. 

 

JTBC 10주년 특별기획으로 제작된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는 신화에 입각해서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형벌의 영원함을 다룬 작품이었다. 과거의 후회되는 일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전부를 걸어도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선택을 후회하며 살아갈 수 밖에. 

 

허나 절망 뿐인 건 아니었다. 서해와 태술로 인해 세계는 희망의 발걸음을 조금씩 천천히 내딛어 나갔으니, 다음 회차에는 아마도 그들이 진정으로 이기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음이 아니라면 그 다음, 머나먼 어느 시기의 다음에서라도 말이다. 예전과 분명히 다른 긍정적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간의 흐름이 목격되었으므로. 

 

 

그 와중에 스스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 채로 서해를 향하여 꼭 나를 찾아와 달라며 눈물 흘리던 태술의 말에는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태술, 서해를 바라보는 내 눈에서도 쉴새 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시그마 : 김병철

하지만 좀 더 나은 길로 전진한다고 해서 악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다. 이번 회차에서 맞닥뜨린 절대악은 시그마였지만, 시그마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악이 뿌리뽑히는 세상은 영원히 만나볼 수 없을 거다. 

 

태술과 시그마의 악연이 매우 오래된 것임을 알았을 때, 시그마가 결코 끝이 아닌 시작임을 깨달았어야 했다.  

 

에디 김(김승복) : 태인호 

시그마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승복이가 내뱉던 절규는 사소한 투정 같아 보였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말들로 가득해서 심금을 울렸다. 아무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미래를 바꾸려 해도 그보다 더 오래된 과거의 행동이 발목을 잡아 후회로 남을 일들이 자꾸 생겨나고야 말았으니,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도 결국에는 인과응보의 노선을 이어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절친이라는 이름으로 비수를 꽂게 된 태술과 승복의 대립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버리고야 말았다.  

 

썬(최재선) : 채종협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리즈가 원하는 세상이 찾아오고야 말 거라는 믿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절대악 못지 않게 서해와 태술을 위해 곁을 내어줄 조력자도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서해 바라기 썬이 그랬듯이. 로또 1등 당첨의 꿈을 이루게 해주고 종적을 감춘 서해를 기어코 찾아내 도움을 주던 모습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뿐만 아니라 짝사랑의 순정이 더해짐에 따라 풋풋한 연하남의 매력 또한 극대화되어 관심을 잡아끌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드림즈의 투수 유망주 유민호로 만났던 채종협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돼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서해와 있을 땐 한 사람만을 위한 순애보 케미를, 태술의 옆에선 투닥거리는 형제 케미가 돋보여서 보는 내내 흡족함이 차올랐다. 

 

강동기 : 김종태 

뜻밖의 우연으로 맺어진 조력자가 썬이었다면, 동기는 서해의 아버지로 피를 나눈 가족이라는 점에서 딸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아낌없이 도움을 주고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든든한 울타리와 같아서 신뢰가 절로 갔다. 2035년이 아닌, 2020년을 사는 동기도 서해를 위하여 힘을 보태게 되었으니 과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의 깊이를 논하는데 있어 동시대를 사느냐 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동기 역의 김종태가 선보인 딸을 향한 부성애, 서해를 리드하며 삶의 의미를 일깨워줌으로써 만나볼 수 있었던 부녀 케미도 작품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에 한 몫을 했다.  

 

배우들의 열연과 예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말 속에서 일말의 희망을 남긴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는 나름대로 SF 판타지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었다. 다만,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인 것에 비해 CG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하는 찰나가 있었음을 밝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 사람이 단속국을 피해 고층 건물에서 로프를 타고 활강하는 장면이었다. 이때 서해와 태술 주변의 풍경이 드라마가 표방하는 장르적 특성과 달리, 예상치 못한 어설픈 효과로 처리되었음을 확인하게 돼 실소가 터져 나왔다.

 

반면에 제리즈가 탄 자동차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은 꽤 멋졌다. 태술과 서해가 자동차와 계단의 끊임없는 충돌로 인해 몸이 튕겨나갈 것만 같은 모습을 제대로 연기하는 모습이 메이킹 영상으로 포착돼서 박수가 나올 정도였다. CG도 CG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 둘의 연기에 빠져든 것이라고 봐도 될 듯.     

 

다소 엉성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대한민국 SF 장르물의 방향성을 새로이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볼만 한 가치는 있었다. 

 

운명의 굴레에 갇힌 이들의 잔혹한 숙명 속에 한 줄기 빛을 담아내며 또다른 시작을 맞닥뜨리게 해준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였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에도 계속될 태술과 서해의 구원 프로젝트를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이제부터라도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최선을 다해 현실을 살아가기로 한다.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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