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 상처받은 영혼들을 다독이는 치유의 동화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상처받은 영혼들을 다독여주는 치유의 동화 한 편을 읽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판타지와 스릴러가 겸비된, 정신 병동 보호사 강태와 동화 작가 문영의 예측불허 로맨틱 코미디를 중심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이야기는 볼수록 흥미로움을 자아냈다. 


한 마디로, 다양한 장르의 결합 속에서 배우들의 열연과 촬영지의 멋진 풍경은 물론이고 환상적인 기술력까지 돋보임으로써 보는 재미가 남달랐던 드라마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위해 탄생된 동화와의 만남이었다.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 "봄날의 개", "좀비아이", "손, 아귀",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써 현실의 잔혹함을 투영시킨 비극적 스토리 속에서도 은근한 위로와 곱씹어 볼만한 메시지를 녹여내며 감동을 선사했다. 



게다가 다섯 작품 모두 절망스러운 내용을 담아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덧붙여, 마지막회에서 확인이 가능했던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는 드라마의 핵심을 오롯이 담아내며 주인공들의 성장까지 만나보게 해줘서 감명깊었다.


이로 인해 그림과 글이 인상적이었던 동화책과 더불어 적재적소에 삽입된 애니메이션의 활용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CAST]

문강태 : 김수현

고문영 : 서예지

문상태 : 오정세

남주리 : 박규영


이와 함께, 예상을 뛰어넘는 CG효과의 강렬함도 색다른 볼거리를 일깨워 주었음은 물론이다. 일명 저주받은 성으로 불리는 문영의 집을 포함한 주변 풍경과 내부의 천정 및 샹들리에, 발코니까지 컴퓨터 그래픽으로 완성됐다고 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2회에서 상태가 문영의 사인회로 향하는 발걸음에서 전해져 오던 설렘이 거리에 마법을 불러 일으킴에 따라 한 편의 뮤지컬 같은 장면을 맞닥뜨리게 해준 순간 역시도 기억에 남았다.


나비가 고대 그리스어로는 프시케(psyche)이며 영어 사이코(Psycho)의 어원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적 흐름을 이어감과 동시에 프시케에 치유라는 의미를 더해 주인공들의 삶에 절망을 넘어 희망을 선물하는 결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자폐 스펙트럼을 보유한 일곱 살 터울의 형 상태가 나비가 날아드는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꾸는 악몽으로 인해 끊임없이 거처를 옮기며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던 강태는 삶이 버거운 정신병동 보호사로 다른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문영 덕택에 상상을 초월하는 스펙터클한 인생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깊숙이 감춰 두었던 진심을 조금씩 꺼내놓으며 그토록 원했던 시간을 마주하게 되는 모습이 눈부셨다. 


탁월한 암기력과 타고난 그림 실력을 갖춘 상태는 옳은 말만 하는 입 덕택에 매정해 보일 때가 없지 않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다정함이 곳곳에서 표출돼 눈여겨 볼만 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돈독한 형제애로 드러나는 반면,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일들로 인해 미움 역시 품에 안고 살아가는 찰나 또한 엿볼 수 있어 공감대 형성을 도왔다. 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애증의 관계를 이들 역시도 피해 가지는 못했으므로.


그러던 어느 날, 상태가 강태를 위해 맛있는 돈까스를 사주고 용돈을 쥐어주며 형 노릇을 하던 장면은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동생의 보살핌 속에서 자신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상태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한 걸음을 내딛으며 변화를 일구어나가던 모습이 아름다웠다. 



화려하다 못해 다소 과한 스타일링의 의상과 헤어를 통해 스스로를 무장하며 살아 온 인기 아동문학 작가 고문영에게는 감정이 없다. 반사회적 인격성향을 가짐으로써 제멋대로 살다 문강태를 만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으로의 발돋움을 시작하는데, 그로 인해 드라마가 점점 더 재밌어졌다. 


문영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느낄 수 없도록, 비뚤어진 어른에게 제어당한 채 나이를 먹어온 거였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나니,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어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본보기가 되어주어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아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이로 인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고문영의 폭력적 면모와 막말 시전은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하며 웃음을 전해주기도 했지만, 가끔 정도를 지나칠 때가 있어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장면도 존재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아버지 고대환에게 목이 졸려 바닥에 쓰러지던 장면과 그 이후에 늦은 밤까지 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매는 장면에서의 착장이 하필이면 새하얀 원피스였어서 굉장히 아슬아슬해 보였다. 내 안의 유교걸이 절규할 수 밖에 없었던 한때였다.



고문영과 문강태의 로맨스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지만, 그래서 더 달달함과 애틋함이 돋보였다. 서서히 감정을 내보이게 된 문영과 진짜 얼굴을 찾게 된 강태는 천생연분 그 자체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고문영과 부드러운 리더십이 두드러지는 둘이 만들어낸 로맨틱 코미디도 예뻤다. 문영은 동화를 써서 돈을 벌고, 강태는 그 돈으로 밥을 짓고 집안을 책임지며 내조하는 완벽한 생활이 머리 속에 선명히 그려졌다. 


험난한 장애물을 거쳐 왔기에 단단할 수 밖에 없는 둘의 사랑은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일어난 만큼, 이제부턴 행복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몰입할수 밖에 없었던 이유로 극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양면성을 꼽고 싶다. 단순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고, 이중적인 모습을 필요에 따라 가감없이 보여주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장면들이 가히 최고였다. 평면성이 아닌 입체성을 부각시킨 인물들의 생생함에 매료되었다.  


괜찮은 정신병원의 수간호사 박행자는 병동 전체를 돌며 환자들을 체크하고 관리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그로 인한 직업적 프로페셔널함으로 다져진 내공이 상당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박행자의 정체가 고문영의 엄마인 도희재로 밝혀지면서 드라마의 반전과 서늘함이 부각되며 눈을 잡아끌었다.


올림머리에 간호사복만 봐오다가 찰랑이는 단발과 블랙 시스루 원피스에 진한 립스틱까지 바른 모습으로 등장하자 시선이 절로 갔고, 정체가 밝혀지고 나니 놀라움이 극대화돼서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마지막으로 장영남 배우의 연기는 당연히,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유승재(박진주)는 문영의 동화책이 출간되는 아동문학출판사 상상이상의 아트디렉터로 입사했지만, 상인의 개인비서와 다를 바 없는 일을 하고 있는 데다가 월급이 아깝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듣는 을의 삶을 견뎌내는 중이라 매일이 서럽다. 


그러나 주눅들지 않은 성격으로 눈치가 없어 속은 편한 것이 장점이며, 할 말은 다 하고 나이 어린 주리를 언니라고 칭하며 빈대 붙을 줄 아는 처세술에 능해서 어디에서 일해도 먹고 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보여 눈길이 갔다. 


단, 그래도 욕 만큼은 앞이 아닌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어서 웃음이 났다. 상인이 애타게 찾던 도희재의 "서쪽 마녀의 살인" 마지막 원고에 욕심은 없었지만, 그동안 계속 자신을 부려먹은 대표가 고통받는 모습을 즐기고픈 마음에 잠깐 숨겨둘 생각을 하던 장면도 통쾌함을 전했다. 


박진주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유승재에게 생동감을 불어넣어서 좋았다. 



남주리는 괜찮은 정신병원의 7년 차 간호사로 강태가 다시 성진시로 발을 들이게 만든 장본인이다. 강태를 좋아하지만 초등학교 동창 문영이 나타남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캐릭터였는데, 술을 마시기 전과 후의 모습이 지킬 앤 하이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평소에는 소심하지만 몸에 알콜이 들어가면 이성의 끈을 놓게 됨에 따라 유창한 욕설이 튀어나오는 반전미가 독보적이었던 주리였다. 일할 때는 야무짐이 폭발했지만, 사랑 앞에선 다채로운 감정의 포효를 주체하지 못하는 주리의 모습에 정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질투에 눈이 먼 상태로 자동차 옆자리에 앉은 엄마를 째려보며 엄마만 아니었어도, 라는 속마음을 들려주던 장면에선 그야말로 웃음이 빵 터졌다. 방 안에서 엄마에게 속상함을 토로하며 울던 주리의 모습도 인상깊었다. 


드라마 초반에는 의뭉스러움이 엿보일 때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문영과 강태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상인의 마음을 빼앗은 인물로 존재감을 뽐내서 만족스러웠다. 주리와 문영이 지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나볼 수 있어 궁금증이 해소되었고, 여태껏 쌓인 오해가 풀리며 비로소 진정한 절친이 되는 과정도 멋졌다.


지킬 앤 하이드는 음주 전후로 나누어졌지만, 평상시에도 욕을 제외하면 매서운 눈빛을 통해 솔직한 감정 표현을 읽을 수 있었던 주리가 밉지 않았다. 남주리 역의 박규영이 연기를 참 잘해서 더 그랬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것 같아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다려졌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에서 양면성의 정점을 찍은 최고의 캐릭터는 고문영이었다고 확신한다. 오로지 동화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며 외로운 삶을 담담히 버텨 내고 있었던 문영은 대담한 겉모습과 달리, 여린 속내를 가져 보는 내내 마음이 아려왔다.


와일드한 입담과 거침없는 애정표현으로 강태를 포함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던 문영의 대담함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오죽하면, 어두운 밤길의 도로 위에서 대치한 고라니가 꼬리를 내렸을까 싶다. 덕분에 차 앞을 막고 선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따라하며 남다른 발성을 자랑하던 장면도 잊을 수 없겠다. 고라니의 연이은 목소리 출연도. 


그런 의미에서 표현해내기 쉽지 않았을 고문영 캐릭터를 맛깔나게 연기한 서예지의 공이 가장 컸다. 서예지가 보유한 매력적인 저음의 저력도 빛을 발했고, 다소 난해해 보이는 옷마저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패션 센스도 대단했다. 



동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재해석으로 귀를 기울이게 했던 장면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동화란 현실세계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역설적으로 그린 잔인한 판타지이며, 꿈을 심어주는 환각제가 아니라 현실을 일깨워주는 각성제란 말이 뜻깊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교훈이 속병이 안 나려면 뒷담화를 까라는 설명 역시도 고개를 끄덕이게 도왔다. 다른 동화와 관련된 내용도 많았으나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수긍이 갔다.


동화 속 공주들의 삶은 다 힘든데 엔딩만 좋다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문영이었지만 엔딩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에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그 얘기가 꽤 마음에 들었구나 싶었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16회에 고문영의 글과 문상태의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진짜 진짜 얼굴을 찾아서"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거쳐 온 세 사람의 고단한 여정에 행복한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만 같아 안심이 됐다. 글 못지 않게 그림과 색채까지 흡족함을 전해줘서 동화에 푹 빠져들었다.


이외에 속물근성이 넘치지만 문영을 위하는 마음은 진짜, 여기에 주리에게 반한 상상이상의 대표 이상인 역의 김주헌, 강태의 절친으로 형제가 향하는 곳 어디든지 함께 하며 자영업자로 먹고 살아가는 조재수 역의 강기둥도 눈여겨 볼만 했다. 두 사람이 각각 문영과 강태의 곁에 있어 다행스러웠다. 


괜찮은 정신병원의 원장인 오지왕 역의 김창완과 주리의 엄마이자 병원 조리장으로 강순덕 역의 김미경도 본받을 만한 어른으로 따뜻함을 전해줘서 집중력을 더해주었다. 괜찮은 정신병원 환자들의 사연도.




문강태 역의 김수현, 고문영 역의 서예지, 문상태 역의 오정세는 세 사람이 같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둘씩 함께 할 때의 케미도 흡족함을 전했다. 그저 눈에 보여지는 조화로움을 뛰어넘어 연기적으로도 잘 맞아서 웃고 울며 시청하게 되었던 드라마가 바로 <사이코지만 괜찮아>였다.


드라마 초반보다 후반에서 강력한 힘을 선보이며 흡입력을 높여줘서 즐거웠다. 



1회에서 프롤로그로 만나 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마지막회에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해주는 모습도 따뜻했다. 문강태, 고문영, 문상태, 세 사람의 얽히고 설킨 인연이 생각보다 더 깊어서 이를 파고드는 재미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랑에 관한 조금 상한 로맨틱 미디'가 드라마 제목의 사이코를 뜻한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선 무릎을 탁 쳤다. 사이코의 의미를 정말 다양하게 활용했다 싶어 감탄했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사에 쓰인 'ㅅ(시옷)'이 뒤집어진 상태인 점도 마찬가지. 




문상태, 문강태, 고문영은 이름에 전부 '문'이라는 글자를 담고 있어 이 역시도 흥미진진했다. 각자가 다다른 문을 열고 나감으로써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며 원하는 걸음을 계속 내딛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됐다. 셋이 캠핑카를 타고 하루하루를 만끽하던 와중에 상태가 강태, 문영의 여행을 응원하며 일에 매진하기 위해 상인의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이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게 마음을 두드렸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완전 무결한 인간은 없고 세상에는 환자복을 입지 않은 환자들이 많다는 명대사도 다시금 되새겨 보게 해준 한때였다. 더불어 독특한 설정과 시선을 집중시키는 연출 및 OST 속 이수현이 부른 '아직 너의 시간에 살아'도 가끔씩 머리 속에 떠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결론적으로, 시작보다 끝이 좋아서 후회없이 보내줄 수 있었던 드라마였다. 날카로운 펜촉을 보유한 만년필과 두꺼운 책이 작가의 능력을 펼치게 만드는 도구이자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장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도 의미가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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