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 율제병원 99즈의 일과 사랑, 그리고 음악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서울대 의대 99학번 동기 5인방이 율제병원에 모여 함께 일하게 됨으로써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내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인간의 생로병사 속 삶과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마주해야만 했던 희로애락의 교차가 다양한 에피소드로 보여짐에 따라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감동과 은은한 여운을 남긴 작품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의로 완벽한 캐릭터 싱크로율을 확인하게 해준 다섯 배우의 열연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학창시절부터 비롯된 99즈의 우정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줘서 만족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밴드 재결성을 통해 선보인 악기 연주와 노래 실력도 기대 이상으로 보고 듣는 즐거움 역시도 상당했다.  



[CAST]

이익준 : 조정석 

안정원 : 유연석 

김준완 : 정경호 

양석형 : 김대명 

 채송화 : 전미도 


간담췌외과 이익준, 소아외과 안정원, 흉부외과 김준완, 산부인과 양석형, 신경외과 채송화는 20년지기 친구들다운 훈훈한 케미에 더해 의사이자 교수로 탁월한 실력을 뽐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과 같이 일하는 치프, 레지던트, 펠로우, 간호사, 코디네이터는 물론이고 실습생과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이야기 또한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전했다.


이와 함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게 야구선수의 이름을 부여한 점도 흥미로웠다. 과마다 각기 다른 대한민국 프로야구팀을 설정, 그 야구단에 소속된 선수들의 이름을 차용하여 자칫하면 헷갈릴 수 있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한 점도 눈여겨 볼만 했다. 작가와 연출이 실제로 야구팬이라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겠지만 말이다.


tvN에서 매주 목요일 밤 9시에 주1회 방영을 통해 총 12회로 마무리된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시즌제를 염두하고 제작된 만큼, 시즌2를 기다리게 만들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대한 연결고리에 집착한 나머지, 다소 석연치 않은 결말을 경험하게 해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마디로, 깔끔함이 덜했다. 


또한 99즈와 병원 직원들, 환자들과 주변 인물들이 얽히고 설키며 보여주는 얘기 속에서 의사들을 미화한 장면이 생각보다 많이 보여져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는 순간도 꽤 있었다. 우리가 병원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뛰어넘는 친절과 배려가 그래서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이때 만큼은 슬의를 시청하면서 잠시나마 판타지에 빠져들게 되기도 했다. 



덧붙여,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본격적인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메디컬 휴먼 로맨스임을 깨닫게 된 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슬의가 슬기로운 의사들의 연애생활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다고 본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풀어나가고 싶었다는 기획 의도와 달리 99즈의 우정과 병원 생활보다는 주인공들의 연애사로 초점이 맞춰지는 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중에서도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상시킨 채송화의 남편찾기는, 당사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로 자신의 감정만을 앞세우던 안치홍(김준한)과 진실게임 속 이익준의 대립으로 당혹스러움을 맞닥뜨리게 도왔다. 이로 인해 슬의 11회는 최악의 회차로 남을 수 밖에 없었음을 밝히는 바다. 생일선물로 갑자기 반말을 하며 송화의 어깨에 손을 올리던 안치홍의 건방짐은 지금껏 봐왔던 모습과 전혀 달라서 실망했다. 


주연 배우 다섯 외에도 용석민(문태유)과 허선빈(하윤경)까지 연애를 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여기서도 좀 놀랐지만, 그래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둘 사이를 암시하는 복선이 드러난 상태였으므로 충격까지는 아니었으나 시즌1 마지막회에 이용당한 느낌이 없지 않아서 조금 씁쓸하긴 했다.


대한민국 의학 드라마는 연애를 곁들이지 않고는 존재하기 힘든 장르가 되어버린 게 좀 아쉽긴 한데, 밴드로 의기투합해 추악의 음악 속 향수를 불러 일으킨 점에서 슬의만의 차별성이 두드러져 이 점은 마음에 들었다. 




이번에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위하여 결성된 밴드의 이름은 '미도와 파라솔'로, 밴드명에서도 그들만의 재치가 드러나 흥미진진했다. 참고로 '미도와 파라솔' 멤버는 보컬과 퍼스트 기타의 이익준(조정석), 세컨드 기타 김준완(정경호), 베이스 채송화(전미도), 피아노 양석형(김대명), 드럼 안정원(유연선)으로 구성되었다. 


다섯 친구들의 특징은 응급의학과 조교수 봉광현(최영준)이 봉쌤 살롱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송화는 단점이 없고, 준완은 싸가지가 없고, 석형은 사회성이 없으며, 익준은 열등감과 선입견과 콤플렉스가 없고, 정원은 물욕이 없다는 말. 다섯에게서 이러한 능력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눈에 띌 정도로 없는 건 맞기에 99즈를 표현하는 가장 완벽한 얘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번 회차 말미에 만나는 게 가능했던 밴드의 연주와 노래로 이루어진 음악 중에서 좋았던 곡은 "캐논",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었다. "캐논"은 연주곡으로 다섯 멤버의 악기 연주 속 조화로움이 돋보였고,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는 예전에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을 때의 아련함이 떠올라 감명깊었으며,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은 99즈 모두가 열창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줘 시즌1의 마지막 곡으로도 최고였다.


그리고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배우는 김대명 뿐이었는데, 슬의의 양석형으로 분하여 노래 한 소절을 고운 미성에 담아 소화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되니 감탄이 절로 났다. 이로 인해 다음에는 다른 멤버들의 솔로곡도 OST에 한 곡씩 넣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아직 끝나지 않음으로 인해 계속해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인싸 천재 이익준, 부처 키다리아저씨 안정원, 싸가지 츤데레 김준완, 자발적 아웃사이더 친절닥터 양석형, 야망뱁새 캠핑족 채송화가 선사할 99즈의 남은 이야기도 계속 기대해 본다. 



슬의 시즌1에서 주연 배우들 말고도 눈에 띄는 인물들이 여럿 있었다. 일할 때 만큼은 곰 같은 우직함으로 신뢰감을 주었고, 짝사랑하는 석형을 향한 직진 고백 역시 당당하게 해내던 산부인과 레지던트 2년차 추민하(안은진)의 반전 매력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눈부시게 빛났다. 교수에게도 할 말은 다 하고야 마는 솔직함이 뒤끝 없는 시원한 성격으로 표출돼 눈길을 잡아 끌었다.


석형과 민하는 곰 같은 분위기가 닮아 있어 많은 시청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석형의 전처였던 윤신혜와의 관계가 매듭지어지지 않는 이상은 가망성은 희박하지 않을까 싶다. 허나 율제병원은 사랑이 꽃피는 의사생활로 가득한 공간이라 마냥 슬퍼할 필요는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일단은, 시즌2에서도 추민하 선생의 멋진 활약을 기다린다. 



장겨울(신현빈)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급부상한 라이징 스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GS 전공의로 외과 레지던트 3년차인데,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외과 교수들이 겨울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대다수다. 극 초반에는 냉정하고 시크한 이미지의 캐릭터인 줄 알았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성격이 무뚝뚝해서 차갑게 보이는 것일 뿐, 환자를 보살피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마음이 절로 갔다.


음식을 맛있게 많이 잘 먹는다. 온몸을 내던진 맨발 투혼으로 아동학대범을 잡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정원이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태도를 주의깊게 살펴본 뒤, 무심했던 지난 날을 반성하며 스스로 고쳐야 할 점을 파악해 보완함으로써 그림을 그려가며 이해하기 쉽도록 질문에 대한 답(수술 경과에 대한 내용)을 설명해 소통을 이어 나가던 장면도 흡족함을 더했다. 겨울이 처음으로 수술을 집도하던 순간도 마찬가지.



조금씩 천천히, 본인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장겨울은 슬의를 대표하는 성장 캐릭터로 눈도장을 찍었다. 정원을 향하던 애틋한 짝사랑의 결실과 익준과 죽이 척척 잘 맞아 떨어지던 유쾌한 찰나도 잊지 못할 것이다.


내 기억 속 신현빈은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 최종회에 특별출연했던 모습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슬의의 장겨울로, 주연 못지 않은 조연의 든든한 존재감으로 남게 될 것임을 확신하게 돼 흐뭇했다. 러브라인도 러브라인이지만, 슬의의 성장캐로도 계속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흉부외과 치프 레지던트 도재학(정문성)은 밝은 미소 속에서 긍정적 에너지를 내뿜는 짠돌이 의사로 뚜렷한 캐릭터적 정체성을 자랑했다. 준완으로 인해 다소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흉부외과를 환기시켜주는 인물로, 둘의 조합이 선사하는 남다른 케미도 환상적이었다. 


의사로의 사명감은 투철하지만 그로 인한 불안감을 주체할 수 없어 준완에게 기대면서 은근히 조력자로 제몫을 다하는 모습이 훌륭했다. 전세사기 에피소드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으니, 이제는 행복한 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송화와 같이 고군분투하는 신경외과(NS) 슴슴이들도 나는 참 좋았다. 피곤에 쩔어 다크써클이 무릎 밑까지 내려올 것만 같았던 용석민을 필두로 허선빈, 안치홍으로 완성되는 팀원의 구성에 이목이 쏠렸다. 자극적이지 않아 다소 싱거운 면이 존재하는 것까지 교수를 닮아 있어 그 교수에 그 제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 마디로, 율제병원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팀이 바로 채송화의 신경외과였다. 교수님이 어렵긴 해도 불편하진 않다는 석민에게 나도 니가 짜증나긴 하는데 불편하진 않다고 받아치던 송화를 보고, 허물없는 관계의 깊은 마음 씀씀이가 전해져 와 미소가 지어졌다. 



율제병원 사람들을 제외하면 익준의 동생 익순(곽선영)과 아들 우주(김준)의 등장이 매우 반가웠다. 익순과 준완의 관계를 아직 모르는 익준이 시즌2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귀염뽀짝한 우주와 익준의 투샷은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슬의에 대한민국 공연계에서 활약하던 배우들이 대거 총출동해서 화제성을 입증했는데, 방구석 1열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반가워서 기분이 즐거워졌다. 익순 역의 곽선영도 파이팅! 준완이랑 평생 연애했으면. 둘이 매우 잘 어울린다. 



아무래도 99즈가 의사라서 직업적 특성상 병원에서의 이야기가 메인으로 다뤄지고 있었지만, 내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가장 재밌게 또 유심히 지켜보게 된 장면은 다섯의 먹방이 진행되는 때였다. 


슬의 2회에서는 99즈가 칼국수집에 방문해 식사를 즐겼는데,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웃음이 빵 터졌다. 정원이 친구들에게 칼국수를 덜어서 건네주는 사이, 송화와 준완은 이미 그릇에 얼굴을 박고 면치기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재빠르게 칼국수를 다 먹어치운 준완과 송화는 밥을 2개만 볶자 그러고, 칼국수를 많이 못 먹은 정원은 화를 내며 5개를 볶아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는데 석형은 그 속에서 3.5개를 외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익준이 나름대로 중재를 하려 했으나 될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많은 먹방 끝에 제시된 해결책은 바로 이거였다. 준완과 송화를 위한 테이블을 따로 마련하는 것. 게다가 두 사람이 주문한 메뉴는 짜장떡볶이! 즉석떡볶이로 요리해 먹는 음식점이었고, 인터뷰에서 익준과 정원과 준완이 맛있었다고 얘기한 가게라서 기회가 되면 직접 방문하고 싶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알아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8회 속 떡볶이집은, 일산 마두역 근처에 자리잡은 오병가즉석떡볶이다. 정원이 산다고 했지만 석형이 쏘는 것으로 변경됐고, 떡볶이에 사리 추가와 음료까지 알차게 시켜 먹는 99즈 5인방의 모습이 눈에 쏙 들어왔던 시간이었다.


아직 익지도 않은 면을 포크로 집어먹는 송화의 속도감과 그걸 보고 놀란 준완의 표정에서 의미심장함이 전달됐던 순간이기도 했다. 위로 오빠가 셋이라며 급하게 음식을 흡입하며 내뱉던 송화의 변명도 들을수록 귀여웠다. 



다부진 먹성으로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들었던 송화와 준완의 음식 먹방에 있어 최고의 명장면으로 기억될 순간은 11회에서 펼쳐졌다. 바로바로, 하남돼지집의 배달삼겹 먹방! 딱 봐도 먹음직스러운 삼겹살에 명이나물을 포함한 각종 채소를 넣어 쌈을 싸서 한 입, 돼지고기 김치찌개도 한 숟가락, 그렇게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음식들을 보며 배가 고파졌다. 


구운 김치가 있는 걸 알고 있었냐며 송화의 입에 넣어주던 준완, 고기부터 먹으라는 준완에게 밥도 같이 먹어야 한다며 김치볶음밥을 입으로 가져가던 송화의 먹방은 보고만 있어도 행복감을 전해 주기에 충분했다. 교수실로 음식을 받아 온 음식이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대비해 정원과 먼저 식사를 즐기던 때, 문 밖에서 투명한 유리 사이로 먹거리를 바라보는 준완과 송화의 애절한 눈빛도 웃음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어쩌면, 아마도 떡볶이집보다 하남돼지집에 먼저 방문해 고기를 먹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9회에서 하남돼지집 매장을 방문해 고기 구워 먹는 모습이 먼저 나온 뒤였는데도 절로 빠져들게 됐다. 아무래도 슬의 협찬사라서 PPL을 위한 장면 삽입이라고 보여졌지만, 진짜로 맛있어 보였고 배우들도 잘 먹어서 꼭 한 번은 가볼 생각이다. 안 그래도 삼겹살 안 먹은 지 좀 됐으니까. 


아, 에그드랍도 슬의 덕택에 처음 가봤다. 역시, 광고 홍보의 힘이란 대단한 거구나 싶다. 



슬의는 배우들로 인해 입소문이 자자해진 드라마인 만큼, 그들의 연기로 인한 몰입도가 엄청났다. 특히, 99즈 5인방 멤버 중에서도 전미도가 연기한 채송화는 나만의 최애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병원, 환자, 논문으로 채워진 삶으로 인해 '귀신'이란 별명이 붙은 송화에게 남은 건 목디스크와 식탐 뿐이지만 언제든 홀로 즐길 수 있는 캠핑의 낙이 존재함에 따라 살아갈 이유는 충분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를 위한 즐거움을 잊지 않는 송화는 프로페셔널함 그 자체였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캠핑 도구를 사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은 응급상황을 제외한 모든 순간에서 기쁨과 여유를 선사하며 송화의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슬의 6회에서 캠핑도구가 담긴 택배 박스 여러 개를 한꺼번에 뜯어 물건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신나하며 교수실을 캠핑지로 탈바꿈시키던 송화. 아이처럼 환하게 미소 지은 채로 두 발을 구르며 좋아하던 모습에 나 역시도 웃음이 났다.  


언젠가는 캠핑카를 사서 전국을 누비는 송화의 작은 꿈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99즈와 전공의들을 아우르는 리더십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지주로도 명성이 자자한 율제병원 신경외과 부교수 채송화를 보며 시청자들이 지어준 별명은 야망뱁새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는 스타일의 캐릭터와 걸맞아 고개를 절로 끄덕거리게 만들었다.


음치이지만 목이 쉬어서 그렇지, 실제로 노래를 잘 부른다며 밴드의 보컬로 99즈에 당당히 입성하게 된 에피소드도 재밌었다. 채송화 역의 전미도는 사실 연극과 뮤지컬을 종횡무진하는 대한민국 공연계의 명품배우로 연기와 노래 모두 훌륭한데, 음치 역할을 맡아서 일부러 노래를 못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게 의외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공연계에선 유명하지만 매체 쪽에선 아무래도 신인에 가깝다 보니, 캐스팅 비화 역시 운명적으로 들렸다. 오디션을 보고 마음에 들었음에도 모험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민할 수 밖에 없다던 제작진에게 조정석과 유연석의 말 한 마디가 신의 한수로 작용했으니, 이거야말로 대단하다 싶었다. 사적인 친분 없이 그저 출연하는 공연을 본 배우들의 추천이 드라마적으로도 놀라운 시너지를 몰고 왔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제작진들이여, 부디 신인을 작품에 기용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뜻밖의 모험이 가져다 줄 깜짝 선물을 기대하며 도전이 몰고 올 엄청날 행운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게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아닐지. 신인 배우들이 실력있는 스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작진의 용기 또한 필요한 일임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전미도의 채송화는 다른 두 배우의 얘기가 도움이 됐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충분히 해볼만 한 선택이었음을 이제는 확실히 알았을 거다. 


드라마 속 음치 캐릭터에서 벗어나 노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한 전미도의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역시도 음원차트 1위를 꽤 오래도록 수성해 더 뿌듯하다. 야망뱁새인 만큼, 노래도 연습할 시간이 좀 더 생긴다면 일취월장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엔 좀 바쁘시죠......교수님? 그런 거라면, 슬의 OST만으로도 괜찮다. 


더불어 슬의 시즌2에서는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송화의 얘기와 속마음을 자세히 만나볼 수 있게 될 거라고 믿는다. 오빠 셋, 익준과 치홍 사이에서의 갈등을 포함한 또다른 비밀까지도. 그리고, 송화 못지 않게 베일에 쌓인 준완이에 대해서도.  



어쩌다 보니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의사들의 슬기로운 연애생활이라는 부제가 따라 붙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이 되어버렸지만, 의외로 99즈가 결혼에는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아서 그건 또 그것대로 신기했다. 전처의 애정 공세로부터 비롯된 결혼이 같은 방식으로 이혼을 이끌어내 우주와 둘만 남은 익준, 본인이 아닌 부모님의 뜻대로 결혼했다가 이혼의 길을 걷게 된 석형, 겨울을 좋아하기 전에는 하나님만을 바라봤던 정원, 연애도 결혼도 별 생각이 없는 송화, 익순을 만나 결혼을 고민하게 된 준완 외에는 꽤나 성향이 비슷한 99즈였다. 그래서 절친이구나 싶긴 하지만. 준완도 익순과 연애하기 전까진 넷과 비슷했고. 


남아 있는 시즌 동안 결혼은 몰라도 연애로 가는 애정 전선은 누구나 열려 있기에, 99즈의 사랑도 원하는 자리를 잘 찾아갔으면 좋겠다. 진짜로 마음이 향하는 운명을 만난다면.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때는 그저, 당신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에 밴드로의 음악적 성장과 율제병원에서 새로이 맞닥뜨리게 될 또다른 에피소드도 기다려진다. 각양각색 환자들의 사연과 그에 대처하는 의사들의 모습은, 시즌1에서도 디테일이 도드라져 눈을 뗄 수 없었으니 시즌2은 더 기대해 봐도 될 것이라고 본다. 


딸에게 간이식을 해주기 위해 다이어트에 성공한 아버지의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초음파 진료 후 뱃 속 아기의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결과를 듣고 오열하기 시작한 환자와 실컷 울도록 내버려 두던 석형이 존재하는 진료실, 그 바깥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촉하지 않고 잔잔한 침묵 속에서 기다림을 선택하며 조용히 눈물을 보이던 산모들의 모습도 눈물을 터뜨리게 했다. 


나, 그리고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과 건강까지 곱씹어 보며 인생을 돌아보게 해준 드라마로 뜻깊은 시간을 보내게 해주었음은 물론이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로 이소라의 "바람이 부네요"가 울러펴지던 순간도 장면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극대화시키며 귀를 사로잡았다.  


여러모로 율제병원 99즈의 일과 사랑, 그리고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시즌제 드라마의 산뜻한 출발을 알린 슬의였다. 내년인 2021년에 시즌2 방영 예정이라고 하니, 좋은 이야기로 다시 만나길 고대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코로나19를 포함해 매 순간 발생하는 각종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가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다. 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시청하다 보니,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아마도, 의학 드라마의 순기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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