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등산로 걷기 :: 범바위 올라 정상 찍고 창의문으로 내려오는 코스

인왕삼거리의 호랑이상 

인왕산은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 홍제동의 경계에 자리잡은 산이다. 특히, 지난 번에 다녀 온 안산과 무악재 하늘다리로 연결됐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으나 즉흥적으로 행동하기엔 다소 무리한 일정이라고 여겨져 다음을 기약하게 됐는데, 그래도 3월을 넘기지 않고 다녀올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이날 내가 선택한 등산 코스는 이렇다. 경복궁역 1번 출구로 나와 걸으며 종로도서관과 황학정을 지나 인왕삼거리의 호랑이상 왼쪽에 존재하는 인왕산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때 인왕산에 오르기 앞서 설치된 마지막 화장실은 호랑이상 도착 전에 만나볼 수 있으니, 이 점을 기억해 두기를 바란다. 내부가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던 곳이었다. 

 

인왕산 등산로 입구

인왕산 등산로 입구를 알리는 계단 옆으로는 안내도와 주의사항이 기록된 안내판이 마련되어 있어 꼼꼼하게 읽은 뒤에 목적지를 향하여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속에서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샛노란 개나리와 푸르른 소나무의 모습 역시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살표가 안내하는 방향에 따라 이동하는 경로가 달라지므로 이 점도 참고를 해야겠다. 나는 등산을 위해 온 것이었으므로, 인왕산 자락길이 아닌 인왕산 정상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이건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가 알게 된 건데, 선생님을 따라 옹기종기 줄을 맞춰 걷고 있던 유치원생들의 뒷모습이 담겨진 게 포착돼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초록과 노랑의 어우러짐이 반가움을 더했던 인왕산 등산로 초입이었다. 이때는 길이 험하지 않고, 인파가 몰리지 않아서 한적함을 친구 삼아 느긋하게 걸을 수 있어 여유가 넘쳤다. 

 

인왕산 성곽길

그렇게 조금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인왕산 등산로로 드넓게 펼쳐진 성곽길이 눈에 들어와서 이러한 광경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와 함께 '인왕산 성곽초소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1968년 북한의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사태 이후에 1970년부터 2006년까지 북악산(백악산)과 인왕산 등에 청와대의 경비를 목적으로 30개소 이상의 경계시설물(경계초소, 소초 등)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이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3년 인왕산 탐방로의 제한적 개방을 시작으로 2002년 성벽 주변의 철조망 등을 철거하면서 개방의 폭을 서서히 넓혀나갔고, 그러다 2018년에 전면개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돼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인왕산을 시민의 품으로 환원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전 구역에 대한 경계시설물(경계초소, 고가초소, 철조망, 실내사격연습장 등)을 대대적으로 정비함으로써 한양도성 성벽의 경계초소 20개소 중 17개소는 철거되었고, 성벽 복원 공사는 2019년 10월에 마무리가 되었단다. 여기서 3개소(52T, 63-1T, 64-2T)는 훼철과 복원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스토리텔링을 위해 남겨둔 것이 특징이라고. 

 

 

덕분에 현재 인왕산은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명성이 자자할 뿐더러 등산 초보들을 위한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으므로 한 번쯤 정상에 올라가 특유의 정취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나 역시도 이제서야 처음으로 오르게 됐는데, 기대 이상으로 흡족함을 확인할 수 있어 행복했다. 

 

성곽길을 따라 놓인 계단을 걷다가 고개를 돌리면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하게 되는 찰나가 다반사였다. 등산 당일의 날씨마저 좋았기에 몸도 마음도 한층 가벼웠고 말이다.  

 

눈 앞의 계단을 성큼성큼 밟아 나가다가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렸더니,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발견돼 살짝 샛길로 빠졌다. 그랬더니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서 기뻤다. 

 

인왕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이러한 장소가 적지 않았는데,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경치를 즐기기에도 제격이라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상당했다. 포토존으로의 역할도 포함해서. 

 

덧붙여,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계단의 경사가 가팔라지기 때문에 주의해서 등산하는 일도 필요하겠다. 계단이라고 마냥 편하게 산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예전과 달리 마스크 착용이 더해짐에 따라 숨도 더욱 차오르기 마련이니, 호흡을 조절하며 본인의 페이스에 맞춰 걸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겠다. 나 역시도 욕심내지 않고 쉬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데 집중했다. 

 

각기 다른 모양와 경사도를 보유한 계단을 무사히 통과하면 밧줄이 연결된 펜스 사이를 지나야 하는데, 그 길을 걷던 도중에 바라다 보이던 장면이 감탄을 자아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미세먼지 때문이었는지 사진이 다소 뿌옇게 촬영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록의 푸르름과 성곽길의 비주얼만은 선명해서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더해 남산타워까지, 볼만한 건 다 보여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한 사람씩 지나가게 만들어진 바위와 펜스 사이의 산길 바닥에는 보도블록 2개가 앞뒤로 자리잡아 웃음을 자아냈다. 이거, 보도블럭 맞는 거겠지? 

 

범바위 

펜스가 둘러쳐진 길을 지나오면 만나볼 수 있는 범바위는 인왕산 최고의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내가 갔던 날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 대신, 바위에 앉아서 전경을 감상하며 쉬어가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여럿 목격되었다. 덕분에 나도 잠시 멈춰 서서 쉬며 다음의 여정을 준비해 나갔다. 

 

 

여기에 더해 내사산(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싼 4개의 산) 중 하나로써 주산인 북악산(백악산), 안산인 남산, 좌청룡 낙산과 더불어 우백호 인왕산으로 불렸다는 사실도 깨닫게 돼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실제로 인왕산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으며, 범바위 또한 호랑이와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인왕산 등산로 입구 근처에 자리한 호랑이상의 생김새를 다시금 떠오르게 만들었던 순간이기도 했음을 밝힌다. 

 

추운 겨울을 지나 따스한 봄의 길목에 들어선 인왕산이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찰나를 만나볼 수 있어 뜻깊은 등산이었다. 안산 이후에 본격적으로 감행한 두 번째 산행이었는데, 운동을 거의 안 한 상태로 나이만 먹어온 세월이 길어서 체력적으로 힘든 때가 종종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갔다와서 이렇게 되돌아보니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다. 

 

여기선 세 군데의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해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맨 왼쪽에는 위험 표지판이 자리잡은 관계로 염두에 두지 않았고, 바로 옆에 계단이 아닌 산길로 구성된 오르막길 역시도 비슷할 것 같아서 오른쪽의 철제계단을 걸으며 발자국을 남겼다. 

 

다만, 철제계단도 경사가 만만한 건 아니라서 손잡이를 꼭 붙잡고 조심스럼게 걸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코스는 바위로 구성된 암릉 구간이었는데, 왼쪽의 밧줄을 부여잡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예상보다 험난했던 코스로 인왕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 중에서 이 부근만 유일하게 붐볐는데, 그 와중에 우리처럼 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한적한 바위 사위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이던 청년의 모습을 발견하게 돼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인왕산 정상을 둘러보고 내려오던 분들이 친구끼리 등산 온 학생들을 보면서 쉽지 않은 길을 왔다며 기특하게 여기는 모습이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켜서 잠시나마 감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친구랑 배낭 하나 둘러메고 등산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살짝 웃음이 났다.  

 

암릉 구간을 지나다가 한자가 쓰여진 바위가 눈에 들어와서 이 또한 사진으로 담아봤다. 그런데 윤용까지만 읽혀가지고, 바위의 정체는 미스터리로 남게 되었다. 나름대로 검색을 해봐도 정보가 없더라고. 

 

산을 오르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새삼 많이도 올라왔구나 싶었다. 등산을 통해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 상쾌함을 자아내서 즐거웠다. 

 

인왕산은 성곽길까지 어우러져서 볼거리가 더 풍성했던 것도 인정. 

 

이거는 성곽을 쌓은 돌이라고 하던데, 소나무 곁에 위치하고 있음으로 인해 남다른 멋스러움이 전해져 와서 기념으로 셔터를 눌러 사진을 남겨 보았다. 주변의 풍광이 꽤 괜찮았다. 

 

잠시 후, 드디어 도착한 인왕산 정상에는 높이 338.2m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우뚝 세워져 있어 등산객들의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 옆으로 서울 한양도성 순성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란히 자리잡아서 같이 사진으로 찰칵! 

 

인왕산 정상은 올라오기 전에 만났던 풍경에 비해 뭐가 없긴 한데, 그래도 가장 높은 곳을 정복했다는 성취감을 경험하게 해주는 곳이라 만족스러웠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 옆으로 마스크 착용 필수임을 공지한 안내문도 현재의 상황을 일깨워줘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인왕산의 정상 왼편으로는 위와 같은 경치가 펼쳐짐에 따라 시원함을 만끽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정상까지 이어진 성곽의 모양새도 이목을 잡아끌었다. 

 

인왕산 정상의 삿갓바위 
움푹 패여있는 삿갓바위 

덧붙여, 인왕산 정상 표지석 외에 삿갓바위가 포토존으로 등산객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정상 한가운데에 있어서 삿갓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으면 멋진 인증샷이 완성되는데,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곳이니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그냥 위에 앉아서 쉬는 이들도 없지 않으므로.

 

 

삿갓 모양을 닮은 삿갓바위 표면이 움푹 패여 있는 모양새가 인상깊었다. 인왕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특한 형상을 지닌 유명한 바위들이 많다고 하는데, 다음에는 그런 의미에서 인왕산의 새로운 코스로 모험을 떠나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가지를 더 덧붙여 보자면 인왕산이 등산 초보들을 위한 코스라고는 하지만 암릉을 포함해 중간중간 힘든 구간이 없지 않으니, 이 점을 감안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출발하면 좋겠다. 난이도는 안산보다 조금 높은 편.  

 

경복궁역에서 인왕산 정상까지 잘 올라온 나에게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전하며 어디로 내려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왔던 코스로 되돌아가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접하지 못한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인왕산 하산 코스는 기차바위, 무악재하늘다리(안산), 창의문(자하문),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어졌다. 이중에서 나는 창의문을 골랐고, 힘차게 발걸음을 앞으로 뻗어 나갔다.

 

안산은 다녀온 적이 있고, 기차바위는 인왕산에 온 목적을 완료한 시점이라 다른 곳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양도성 부부소나무

이로 인하여 창의문 방면으로 내려오다가 한양도성 부부소나무를 만났다.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이어짐으로써 한 나무처럼 자라나는 현상을 연리지라고 일컫는데, 이러한 연리지는 한 나무가 죽더라도 다른 나무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살아날 수 있게끔 도와주기 때문에 귀하고 상서로운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연리는 이렇듯 두 몸이 한 몸이 된다고 해서 부부의 영원한 사랑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여진다고. 연리지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있으나 한양도성 부부소나무를 통해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창의문 쪽으로 향하는 길은 인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것보다 힘들지 않아서 사진을 찍기보단 쭉쭉 걸어나가는데 집중한 시간이었다. 걷다 보면 주변에서 샛노란 개나리가 곳곳에서 맞아줌과 동시에 성곽길을 중심으로 펼쳐진 눈 앞의 정경에도 매료될 수 밖에 없던 한때가 존재했다.  

 

이렇게 수많은 계단을 걸어오다가 옛 실내 사격장을 쉼터로 바꾸어놓은 곳을 지나면 거의 다 온 셈이다. 

 

서시정 

출구로 나와서는 길을 건너 다시 또 움직인다. 이동을 계속하는 동안, 눈 앞에 다가온 서시정을 보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시정은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인 '서시'에서 이름을 따옴으로써 만들어진 작은 정자다. 

 

윤동주 문학관 

윤동주 문학관과의 조우도 오랜만이라서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에 부암동 와서 윤동주 문학관, 서시정, 시인의 언덕을 둘러 본 적이 있어서 낯설지 않았다. 

 

등산하다가 다시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기에 기분이 묘했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한 번 더 길을 건너면, 커다란 백목련 나무의 위엄이 고개를 절로 치켜들게 만든다. 덧붙여 거대한 백목련 아래로는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의 동상이 존재하니 이 또한 만나보면 좋겠다. 두 사람 모두 1968년 1·21 사태 시 무장공비와 교전 중 순국함에 따라 동상과 추모비를 세워 드높은 애국 충절을 기리게 되었다고 한다.

 

봄마다 만발하는 백목련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투철한 사명감으로 임무를 완수한 두 사람의 이야기 역시도, 눈여겨 볼만 했다.

 

창의문 입구

그리고, 그 옆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북악산 창의문 코스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내가 인왕산 정상에서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 건, 북악산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이름하여 인왕산 & 북악산 연계산행! 경복궁역에서 범바위 지나 인왕산 정산 찍고 창의문까지 내려오는데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돼 시간적 여유가 넉넉했던 관계로 곧바로 다름 등산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별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한 연계산행이라는 점에서 도전해 볼 가치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북악산 산행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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