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옹기테마공원과 봉화산 정상 아차산 봉수대, 그리고 벚꽃

 

서울 중랑구 옹기테마공원은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 입구 4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장소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봉화산 옹기테마공원이며, 봉화산 둘레길로 향하는 도중에 위치하고 있어 겸사겸사 방문해 둘러 보기에도 괜찮다. 나는 중랑천 벚꽃길을 보러 가기 전, 봉화산 정상으로 오르기에 앞서 잠깐 시간을 보내고자 걸음을 옮겼다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돼 즐거웠다. 

 

 

봉화산 둘레길은 서울시 테마산책길 중의 하나로 다양한 수종들의 고른 분포와 각양각색의 야생동물들이 서식함은 물론이고 생태적으로 풍부한 지역이자 누구나 쉽게 걷도록 구성된 코스라고 하니, 이 점 또한 기억해 두면 좋겠다. 이와 관련된 설명이 빼곡하게 쓰여진 안내판도 근처에 자리잡고 있어서 눈여겨 볼만 했다. 

 

콩쥐와 팥쥐
우렁각시

얼마 걷지 않아 눈에 띈 봉화산 옹기테마공원은 이름에 걸맞는 볼거리를 제공함에 따라 흥미로움을 더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인 '콩쥐와 팥쥐', '우렁각시'를 통해 동화 속 옹기 이야기를 풀어내며 작품에 등장하는 중심 캐릭터와 더불어 여러 개의 항아리를 만나볼 수 있도록 신경 쓴 점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옹기테마공원은 봉화산 자락에 조성됨으로써 자연경관과 멋스러운 조화를 이루어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냈다. 봄을 알리는 따뜻한 계절의 색감이 훈훈함을 전해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고 한다. 

 

여기는 원래 봉화산 화약고로 불리며 도화선과 폭약, 불꽃류를 포함해 약 10톤의 화약류가 6개 동 건물에 저장되어 있어 인근 주민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고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장소였다. 그러다 2014년 10월에 봉화산 화약고 이전이 완료됐고 과거 신내동 일대에 8개나 되는 옹기 가마가 존재하여 옹기제작이 번창했다는 점에 착안, 2017년 3월 서울시 최초로 옹기공원이 조성된 것이 특징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독 짓는 늙은이

옹기는 선사시대의 사용해 오던 질그릇이 발전과 변화를 거치며 탄생된 용기다. 잿물을 입히지 않고 구워 낸 질그릇과 잿물을 입혀 1200도가 넘는 고온에서 구워내 윤기가 흐르고 강도가 있는 오지그릇을 총칭하는 단어로 옹기는 질그릇, 오시, 반오지, 푸레독, 항아리로도 지칭된다. 다만 근대 이후에는 질그릇을 사용하는 일이 점차적으로 감소하면서 오지그릇을 옹기로 명명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플라스틱 제품 이용이 늘어나고 생활환경이 달라지며 번창했던 옹기점이 위기를 맞고 있는 추세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로 인해 삼국시대부터 만들어 써온 옹기가 세계에서 우리 한민족만이 보유한 독특한 음식 저장용기임을 잊지 않으면서,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한 역사적 증거물로 가치의 재발견과 육성이 필요하다는 안내판 속 설명이 마음을 울렸다. 

 

옹기테마공원에선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 말고 직접 체험을 통하여 옹기에 대해 알아갈 수 있도록 구성된 공간도 마련돼 관심을 집중시켰다. 공원 한가운데에 설치된 옹기가마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목공예체험장, 오른쪽에는 옹기체험장이 존재해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체험은 예정에 없었으므로 이렇게 멀리서 체험장을 바라보다 정해놓은 목적지로 움직였다.  

 

장 담그는 날(옹기와 관련된 전통문화)

이와 함께 우리나라의 장 담그는 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탁월함을 자랑하며, 선조들은 정성껏 담근 장을 옹기에 보관했음을 설명하는 조형물도 눈에 쏙 들어왔다. 덕분에 장 담그기의 대표적인 한 장면인 물 긷기, 메주 넣기, 간 보기 등을 함축시킨 네 사람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 보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봉화산 옹기가마 

그리고, 여기서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하는 봉화산 옹기가마의 위엄은 실로 대단해서 보자마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전통옹기가마는 신내동에 거주하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0호 옹기장 배요섭씨(1926년생)의 자문을 받아 복원된 것으로, 중부지역의 특징인 용가마 형태를 갖춘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비주얼을 지녔던 만큼, 좀 더 자세히 마주하고자 왼쪽의 계단을 오르며 앞쪽에서 보이지 않는 옹기가마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이외에도 공원이 생기기 전에 자리잡고 있던 화약고 흔적의 터도 만날 수 있으니, 이 또한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공원 곳곳을 살펴보다 위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옹기종기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모습도 포착되었다. 그리고, 수양벚꽃(능수벚꽃)으로 추정되는 벚나무가 보여 탄성을 절로 내뱉게 됐다.

 

요 벚나무 아래로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그곳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이들도 만나보는 일이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옹기테마공원 최고의 포토존은 수양벚나무 아래 벤치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머리 위에서 살랑이던 수양버들가지와 벚꽃의 일렁임도 매력적이었다. 옅은 분홍빛을 머금고 인사를 건네는 듯한 움직임 역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해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던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옹기테마공원 위에서 이곳만의 경치를 누리다가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으로 올라가면 봉화산 정상에 닿는다는 안내판이 보여서 그 길로 향하게 되었다. 봉화산 둘레길을 거치지 않더라도, 옹기테마공원에서 정상으로 갈 수 있으니 이 역시도 기억해 두면 도움이 되겠다. 

 

벚꽃은 만개했으나 나무와 꽃은 이제 막 자신만의 빛깔을 뽐내기 위해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래서 조금 휑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산길이 험한 편이 아니라 조금 편하게 등산할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오르다가 이런 모양의 돌탑이 보이면 거의 다 온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봉화산도당굿보존위원회가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옥 건물에는 비봉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건, 봉화산 도당굿이 400년의 전통과 역사를 보유한 서울의 대표적인 마을 굿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2005년에는 봉화산 도당굿의 전통성과 역사성을 인정받음으로써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다. 이와 더불어 봉화산 도당굿은 매년 삼짇날인 음력 3월 3일에 봉화산 자락에 자리잡은 6개 마을의 평안과 주민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고자 진행된단다. 

 

경관조망장소에서 바라 본 모습
경관조망장소에서 내려다 본 서울

비봉각을 만난 뒤에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중랑구에서 선정한 경관조망장소가 나타난다. 대모산, 관악산, 응봉, 남산, 중랑천, 초안산까지 조망이 가능한 장소인데 여기는 야경 명소로 유명하다고 하니, 밤에 와도 나쁘지 않겠다. 나는 초보 등산러인 관계로, 야간 등산은 계획이 없다는 게 함정. 

 

 

맑은 날에 광합성하며 산길 걷는 게 훨씬 즐겁다. 코로나로 인해 집콕 생활을 오래 해왔던 만큼, 날씨 좋을 땐 등산으로 몸과 마음을 깨우고 신체와 정신 모두 건강하게 유지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하여 봉화산 전망대 아래로 펼쳐진 광경을 보며 등산에 성공한 기쁨을 즐겼다. 

 

전망대를 벗어나 이제는 봉화산의 정상에 존재하는 아차산 봉수대를 마주할 차례다. 몇 개의 계단을 금방 올라가면 아차산 봉수대 터와 봉화제도당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요 주변에 벤치가 여럿 존재함으로 인하여 앉아서 쉴 수 있으니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괜찮다. 벤치 중에서도 푸르른 소나무 아래로 그늘이 만들어진 자리가 명당이다. 

 

봉수대 옆의 봉화제도당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1992년 여름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소실되어 새로 지은 것이 현재의 건물이라고 한다. 

 

봉화산 정상의 아차산 봉수대는 계단 몇 개를 오르면 금방 눈에 들어와 반가움을 안겨주었다. 아차산 봉수대 터는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던 자리로 봉화산으로 불리며, 평지에 돌출된 구릉이지만 크게 봤을 때 아차산에 포함된다고 했다. 그로 인해 아차산 봉수대는 아차산 주능선에 존재했다고 여겼으나 대동여지도엔 이곳이 아차산 봉수대지로 표시되었다. 

 

조선시대 전국을 잇는 5개 주요 봉수로 중 첫 번째 봉수로의 마지막 봉수대였던 게 바로 아차산 봉수다.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돼 강원도와 포천을 거쳐 이어지는 봉수를 받아서 목멱산(남산)으로 연결하는 곳이었다. 단, 봉수대가 자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정상부의 불을 피우던 연대가 없어지고 대부분 파괴되었기에 이를 정비해 1994년 모형을 설치한 게 현재의 아차산 봉수대다.  

 

정상부 평탄면 바깥쪽 경사면에 250m 내외의 둘레를 구축된 석축이 두르고 있어 봉수대 관련시설로 보기는 하지만, 6세기 전반 고구려가 제작한 보루의 흔적으로 예상된다고 기록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아차산 봉수대는 연기나 불을 사용해서 긴급한 변경의 사정을 중앙 조정과 주변 백성들에게 알리려 만들어진 조선시대 주요 경보시설의 하나임을 명시하며 관련 설명이 마무리가 됐다.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됐음을 알리며.

 

 

봉화산 정상에서 아차산 봉수대를 만나기 전에 안산 봉수대 정상을 보고 와서 그런지 몰라도, 각기 다른 생김새를 지닌 봉수대와의 만남이 뜻깊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특히, 아차산 봉수대는 2층 구조로 돌을 쌓아 만들어진 점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석축이 둘러싸고 있는 봉수대를 계단을 내려와 아래에서 보면 이렇다. 봉화산 정상의 아차산 봉수대를 볼 만큼 보고, 이번에는 올라온 쪽과 다른 길로 하산했다. 

 

천천히 올라가 쉬다가 내려왔더니 넉넉히 1시간 정도가 걸렸다. 해발 160m의 산으로 난이도는 쉬운 편. 

 

텅 빈 산스장

요즘은 코로나로 헬스장 대신 산스장이 인기라고 하던데, 하산하던 도중에 만난 산스장에는 아무도 없어서 신기했다. 그래서 기념으로 찍어본 것. 

 

소나무가 양옆으로 우거짐과 동시에 계단이 잘 되어 있어 좋았던 길 위에서 잊지 않고 사진 한 장. 한적하기 그지 없었던 봉화산 둘레길 코스였다. 

 

용바위 

용바위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바람에 깎이면서 지금의 형상을 갖추게 된 거란다. 은근한 볼거리를 선사한 용머리였다. 

 

용바위를 보고 내려갈 땐 완만한 바위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소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맞이하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또다른 산스장은, 나뭇가지에 걸린 훌라후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알록달록 동그란 모양새의 훌라후프, 안녕! 

 

봉화산 정상의 아차산 봉수대를 오를 땐 옹기테마공원, 내려올 땐 중화역 방면의 둘레길을 골라 걸었다. 그랬더니 새하얀 벚꽃들이 봄의 전령답게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인사를 건네서 기분이 좋아졌다. 

 

중랑천 벚꽃길 가기 전부터 아름다운 자태를 겸비한 벚꽃들이 행복을 충전시켜줘서 설렜던 찰나였다. 서울 중랑구 옹기테마공원과 봉화산 정상 아차산 봉수대, 그리고 벚꽃까지 보러 오길 잘했다.

 

등산을 야무지게 마쳤으니, 이제는 산책을 즐기러 갈 시간이다! 중랑천 주변에서 맞닥뜨린 벚꽃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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