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 :: 흠잡을 데 없는 음악과 비판 받아 마땅한 이야기의 공존

영화 <위대한 쇼맨>은 쇼 비지니즈를 업으로 삼아 지상 최대의 엔터테인먼트를 성공시킴에 따라 서커스의 창시자로 불리는 P.T. 바넘(피니어스 테일러 바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귀를 사로잡는 음악의 매력이 상당해서 뮤지컬 영화이자 음악 영화로 관객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tvN에서 방영한 뮤지컬 앙상블 배우들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더블 캐스팅>의 역할이 컸다. 더캐 참가자들이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영화 <위대한 쇼맨>의 OST 수록곡이 다수 활용돼 절로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2018년 8월에는 뮤지컬 <바넘 : 위대한 쇼맨>이라는 제목으로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 공연이 올라온 적 있으나 관람은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더더욱 영화가 궁금해졌다. 안 그래도 때마침 영화 <위대한 쇼맨>이 재개봉하게 된 만큼, 좋은 기회였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뮤지컬은 영화보다 37년이나 먼저 무대에서 막을 올리게 된 공연이었다는 점에서, 2017년에 개봉이 이루어진 영화와는 차이점이 존재함을 밝힌다. 



[CAST]

P.T. 바넘 : 휴 잭맨

필립 칼라일 : 잭 에프론

채리티 바넘 : 미셸 윌리엄스

제니 린드 : 레베카 퍼거슨

앤 휠러 : 젠데이아 콜먼

캐롤라인 바넘 : 오스틴 존슨

헬렌 바넘 : 카메론 실리

레티 러츠 : 케알라 세틀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바넘과 부유한 집안의 딸로 성장한 채리티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어 두 딸 캐롤라인, 헬렌과 함께 넉넉하진 않지만 행복한 가족의 삶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실직 상태를 맞이하게 된 바넘이 자신이 다녔던 해운회사 고용주의 잃어버린 배와 관련된 문서를 은행에 내밀고,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신기한 볼거리로 가득한 박물관을 개관하며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된다.


박물관을 설립한 초창기에는 수입이 전무했지만, 딸들의 대화를 통하여 아이디어를 얻은 바넘이 남다른 신체적 특징 및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인물들을 모집해 서커스를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그렇게 바넘의 쇼는 연일 매진에 힘입어 큰 성공을 이루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극작가 필립 칼라일 영입과 스웨덴 출신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의 미국 순회 공연까지 기획해 수완가로의 면모를 공고히 다지기에 이른다. 



어린 시절부터 놀라운 상상력을 가졌던 바넘은 사업가와 사기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나가는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묘한 이중성을 지닌 인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오래 전 가라앉은 배들의 존재감을 유일하게 증명하는 낡은 종이 한 장으로 빚을 내는 대담함과 독특하긴 하지만 이목을 잡아끌기에는 부족한 서커스 단원들의 개성에 속임수를 더해 대중들의 환호를 자아내는 장면에선 역대급 거짓말쟁이의 탁월함이 두드러져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는 와중에도 자신을 장사꾼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했던 바넘은 상류층으로의 신분 상승과 더불어 명예를 얻고자 서커스에서 점점 멀어져만 가고, 이로 인하여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고야 만다. 일과 사랑, 전부 다. 



쇼 비지니스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바넘의 일대기 중에서도 서커스에 초점을 맞춰 가볍게, 오락성을 중심으로 제작한 영화가 <위대한 쇼맨>이었다. 대신 적당한 볼거리에 뛰어난 음악을 덧입혀서 이로 인한 재미가 도드라졌다. 


어린 바넘과 채리티가 만나 결혼한 이후에도 여전히 꿈을 꾸며 즐겁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득 담긴 'A Million Dreams'를 보고 듣는 내내 달콤한 사탕을 먹는 기분이었다. 철도회사에 다닐 때도, 해고된 이후에 박물관이 잘 되지 않을 때도 꿈을 놓지 않던 바넘과 그를 향한 사랑으로 그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던 채리티의 진심이 듀엣곡으로 완벽하게 표현돼 눈이 부셨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음악 속에서 직업을 잃고 집에 돌아왔음에도 환한 미소로 아이들에게 소원을 이루어주는 기계를 만들었다며, 옥상 위에 널린 빨래 사이로 은은한 조명이 회전하며 빛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도 예뻤다. 서로의 소원을 얘기하며 여전히 꿈을 그리던 모습, 캐롤라인과 헬렌이 고운 목소리로 부르던 몇 소절의 노래도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흘러가는 이야기 안에서 맞닥뜨려야만 했던, 발레는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단 캐롤라인의 말 또한 바넘의 쇼와 대비되는 메시지와 생각할 거리를 남겨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증명된 순간이었음은 물론이다. 




서커스는 성공적이었으나 처참한 언론의 평가와 사람들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없던 바넘은 상류사회 편입에 필수적인 가교 역할을 해줄 인물로 필립을 점찍고 그와 술을 마시며 동업을 제안한다.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바넘과 그로 인해 고민하는 필립의 모습이 역동적인 안무를 중심으로 잘 짜여진 움직임 안에서 빛을 발하는 'The Other Side'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함의 절정을 이루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바넘과 필립, 그리고 바텐더까지 3인이 칵테일 바에서 합을 맞춰 이루어낸 장면의 쫀쫀함이 좋았고, 술잔을 포함한 다양한 소품과 공간의 활용 또한 알차서 기억에 많이 남는 장면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니 린드가 선사한 'Never Enough'의 절절함 또한 기대 이상이었는데, 다른 넘버들과 달리 이 곡은 제니 린드 역의 레베카 퍼거슨이 아닌 가수 로렌 알렌드가 불렀다고 한다. 비록 립싱크였긴 하지만 그래도, 멋진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몸짓과 표정까지 환상적으로 선보여서 역시나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이날 만난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곡은 'This Is Me'였다. 레티 러츠 역으로 등장한 케알라 세틀의 독창에서 앙상블들의 합창으로 조화를 이끌어낸 음악의 중독성이 강렬한 멜로디와 가사로 전달되며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턱수염이 풍성한 여인으로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지만 남다른 가창력을 지닌 레티의 넘버 소화력은 최고였고, 그래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똘똘 뭉친 단원들의 당당함만이 돋보였을 뿐.


기립 박수로 마무리된 제니 린드의 첫 공연 이후에 열린 뒤풀이 파티를 가로막은 바넘으로 인해 좌절하던 서커스 단원들이 앞문을 열고 당당하게 입장했고, 광장으로 나와 스스로의 존재감을 표출하며 열창을 이어나갔으며, 그 뒤 쇼가 열리는 무대 위에서까지 계속되는 장면과 음악의 어우러짐은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 정도로 벅찼다. 덧붙여, 자연스레 이루어지던 공간의 전환도 감탄을 자아냈다. 


시선따윈 두렵지 않다며 노래하고 춤추는 단원들의 모습은 압도적이었고 충분히 반할 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곡은 용기가 없어 겁내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노래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와 함께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없이 좋은 사람 몇 명이면 된다던, 바넘을 향한 채리티의 명대사도 귀에 꽂혔다. 제니 린드의 오페라 공연에서 자신의 서커스 단원들을 입석에 자리잡게 한 것부터 파티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장면까지 보는 내내 본인도 가난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좋지 않은 평판에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었으면서, 바넘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게 해준 장면이라 앞서 이야기한 것과는 또다른 주인공의 이중성을 만나보게 돼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영화 <위대한 쇼맨> OST는 'Rewrite The Stars'로 필립과 앤의 로맨스에 담긴 애틋함을 만나보는 게 가능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신분 차이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둘이었는데, 이들이 함께 하는 노래는 화려한 공중 곡예가 어우러짐으로써 긴장감과 스릴이 더해져 슬프지만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탄생되었다.


잭 에프론과 젠다야의 출중한 노래 솜씨가 만들어낸 화음과 공중 곡예를 통한 호흡까지, 모든 게 척척 잘 들어맞아서 둘의 케미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 전개가 무난한 와중에 음악이 감정으로 작용한 뮤지컬 영화이자 음악 영화가 바로 <위대한 쇼맨>이었다. 다만, 이 작품이 실존 인물인 바넘을 소재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다르게 미화된 부분에만 포커스가 맞춰져서 이러한 내용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바넘이 여성, 장애인, 동물 학대에 일가견이 있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얘길 뒤늦게 알게 되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서커스의 성공을 위해 벌인 비윤리적인 행위와 관련된 일화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제작하는데 있어 실존인물과 실화가 곁들여질 때 미화가 되어지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지만, 이 영화는 오직 주인공의 미화에만 치중한 게 느껴져서 씁쓸했다. 적어도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마주하게 했어야 했을 텐데 그랬더라면 개봉을 못 했으려나 싶고, 여러모로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래도 덕분에, 한 가지 교훈은 제대로 얻었다. 영화는 영화로만 바라보되, 작품에 차용된 인물과 이야기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꼭 이와 연관된 이야기를 확실히 알고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현실과 영화는 전혀 다른 세계이니 그 안에서 균형을 잡아 나만의 가치관을 찾아가는 일이 정말 중요해 보였다.


몹쓸 짓을 참 많이도 한 인물이긴 하지만 서커스 단원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도와준 일등 공신인 데다가 대우 또한 잘해준 것도 맞다고 하니, 역시나 인간이란 아이러니함 그 자체일 수 밖에 없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결론적으로 영화 <위대한 쇼맨>은 흠잡을 데 없는 음악과 비판 받아 마땅한 이야기의 공존이 호불호를 갈리게 하는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단언컨대, 음악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영화 <라라랜드> 작사팀이 작업에 참여한 OST라는 점도 그래서 더 눈여겨 볼만 했다. 당연히 취향의 차이는 확연히 갈리겠지만 말이다. 


배우들이 연기 외에도 훈련으로 다져진 서커스와 황홀한 노래 실력을 자랑해서 보고 들을 거리가 많았지만, 영화 속에 진실이 있는 건 아니므로 작품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실화와 인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며 경계를 두는 일 또한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시선을 통해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키우는 일도 필요함을 일깨워준 영화 <위대한 쇼맨>이었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볼만 한 가치가 있었던 작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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