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쉽지 않아 살아 볼 만한, 그것이 인생

김초희 작가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쉽지 않아서 살아 볼 만한 인생의 여정을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표현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주인공 이찬실씨는, 시작부터 강렬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삶의 한가운데에 놓여져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제작을 앞두고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지 감독으로 인해 백수가 된 찬실의 이야기는 담담한 감성 속에서 은근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며 마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비정한 현실이 경험하게 만든 차디찬 세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래서 더 멋져 보였다.

감독 : 김초희

[CAST]

이찬실 : 강말금

복실 : 윤여정

장국영 : 김영민

소피 : 윤승아

김영 : 배유람

지감독 : 서상원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포스터에 담긴 내용이 전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 프로듀서로 이제 좀 살만해 지겠구나 싶었던 상황에서 들이닥친 비극은, 오직 영화만을 생각하며 버텨낸 지난 날을 돌아보게 만들며 40대가 된 현재에 절망을 불어넣었다.

그리하여 친한 동생이자 여배우인 소피의 집에서 가사 도우미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불어 선생님인 연하남 김영을 만나면서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여기에 최근 이사한 산동네 마을의 집주인 할머니 복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장국영의 등장은, 타고난 인복을 겸비한 찬실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해주며 흥미로움 그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다.

영화일이 틀어지고 난 뒤 머무르게 된 하숙집의 방은 반지하도, 사각형도 아닌 오묘한 생김새를 지님에 따라 찬실이 처한 입장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되어 호기심을 더했다. 복실이 출입을 금지시켰던 의문의 방에서 출몰하게 된 장국영의 존재도 마찬가지였음은 물론이다.

소피의 후배로 불어 공부를 도와주는 일 외에 단편영화 감독이라는 점에서 영화인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 데다가 대화 또한 잘 통해서 잠시나마 영과의 로맨스를 바랐던 찬실은, 모든 게 혼자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다시금 냉혹한 순간을 마주해야 했지만 이로 인하여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스 야스지로의 영화를 좋아하는 찬실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좋아하는 영의 관계는 서로 다른 영화 취향처럼 해피엔딩으로 나아가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번에 끊어져버릴 인연도 아니었으니,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몰랐다. 

오늘 하고 싶은 일만 애써서 하며 살아가던 복실은 한글을 배워 나가는 동안 찬실의 도움을 받으며 깊은 유대감을 쌓아간다. 맞춤법은 실수투성이였지만, 한 줄의 시가 맞닥뜨리게 해준 감동은 기대 이상이었다. 찬실과 같이 눈물이 터져 버렸고, 명대사로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라는 시 한 구절을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 쓰며 담아낸 복실의 진심이 엿보여 뭉클함이 밀려왔다. 조근조근 털어놓던 인생사와 닫힌 방으로의 출입을 허락하며 찬실에게 내보인 복실의 속내도 따뜻함을 전했다. 

장국영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유일하게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일깨워주는 인물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하얀 속옷 차림으로 찬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장국영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잠시 손을 놓은 채로 방치해 둔 영화를 향한 열정을 다시금 꺼내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왜 장국영인 걸까 싶었는데 김영민 배우가 연기하는 장국영이 정말로 장국영 같아서 깜짝 놀랐고,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확인하는 게 가능해서 보는 내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꿈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요정으로써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그 와중에도 옷은 좀 입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졌고, 다행스럽게도 마침내 제대로 된 의상을 갖춰입은 장면을 만날 수 있어 안심이 됐다.  

찬실이가 드디어 계절에 맞는 옷을 착용한 장국영 앞에서 선보인 아코디언 연주도 영화 <찬실이는 복이 많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 중의 하나였다. 아코디언 특유의 구슬픈 소리와 울림이 순탄치 않은 생의 시간을 지나 앞으로 맞이할 또다른 날들로 향하는 주인공을 위해 위로와 힘을 전달함과 더불어 이야기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감명깊었다. 

아코디언을 직접 해낸 강말금 배우의 연주 실력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주연으로의 존재감 역시도 탁월했다. 구수한 부산 사투리와 클로즈업이 될 때마다 마주치게 되는 섬세한 표정을 포함한 움직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도왔다. 대사에 스며든 감정의 밀도마저 풍부해서 웃고 울기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이찬실이 강말금이었고 강말금이 이찬실이었다!

프랑스 이름 같지만 알고 보면 '근심 소'에 '피할 피'라는 한자어를 사용하는 여배우 소피는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 부지런함이 돋보였다. 영화에서 중요한 캐릭터를 맡았다고 여겼는데 편집으로 인해 분량이 줄어들자 실망하지만 그럼에도 근심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배우로 눈도장을 찍었다. 찬실이 써내려가던 시나리오에 지루하다는 혹평을 늘어놨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 다시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법. 

영화에서 만나게 된 인물들 모두가 고된 시간을 겪어나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일구어 나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찬실이가 으뜸이었지만, 찬실이는 정말로 복도 많은 사람임을 확실히 깨닫게 돼 그리 슬프지 않았다. 

사실, 영화 중반까진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반어법으로 쓰이는 게 당연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모일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찬실이었고, 내가 진짜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향해 뛰어드는 사람도 찬실이었으므로 제목에 담긴 의미가 더 뜻깊게 다가왔다.

덧붙여 울퉁불퉁하게 생긴 노란 모과가 나무에 매달린 모양을 바라보던 찬실과 어두운 밤길을 내려가는 동료들을 위하여 손전등으로 길을 비춰주며 함께 걷던 찬실의 모습은 특히나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박대표 역의 최화정과 여배우 역의 이영진이 특별출연한 것을 포함,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탄생된 친근한 영화 한 편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요즘이다. 그래서, 녹록치 않은 삶의 발걸음을 천천히 떼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와닿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이름처럼, 빛나는 열매가 되어 꿈을 이루어 나갈 찬실을 응원한다. 엔딩 크레딧을 통해 귀를 기울이게 했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OST인 소리꾼 이희문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여전히 귀에 맴돌아서 가끔씩 흥얼거리고 있다. 멜로디와 가사가 적절한 타령 스타일의 곡이 전해주는 중독성이 실로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