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아씨들 :: 네 자매의 성장을 통해 확인한 꿈과 사랑, 그리고 삶

영화 <작은 아씨들>을 관람하기 전, 예습을 위해 루이자 메이 올컷이 집필한 동명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네 자매의 이름과 어릴 때 벌어진 에피소드 몇 가지가 머리 속에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는 걸 제외한다면, 모든 내용이 다 새롭게 느껴져 책 속에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개봉을 기념하며 최근에는 1권과 2권을 한데 묶은 완역본이 출시됨으로써 청소년기를 지나며 멋진 성인으로 자란 네 사람의 인생을 만나보는 것이 가능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손에서 재탄생된 영화 <작은 아씨들>은 원작을 중심으로 추가된 디테일한 감성이 생생하게 살아나 보는 즐거움이 상당했다. 그리고 확실히, 원작을 접하고 난 이후라서 스토리 전개를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해져 큰 도움이 됐다. 



감독 : 그레타 거윅

[CAST]

조 마치 : 시얼샤 로넌

메그 마치 : 엠마 왓슨

에이미 와치 : 플로렌스 퓨

베스 마치 : 엘리자 스캔런

로리 로렌스 : 티모시 샬라메

대고모 : 메릴 스트립

엄마 : 로라 던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며 펼쳐지는 네 자매의 이야기는 장면의 매끄러운 교차로 인하여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 어렵지 않았고, 각기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가는 자매들의 모습에서 확연한 개성이 드러나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더불어 고전극에 걸맞는 의상이 몰입감을 더했다. 올해 진행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에서 의상상을 수상한 이유를 작품 속에서 직접 확인하게 돼 이 또한 즐거웠다. 



1860년대에 출간된 고전소설이 현대적으로 탈바꿈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내용만 압축시켜 영화로 가져온 점도 매우 훌륭했다. 소설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종교적인 부분을 덜어내고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성장에 보다 주목한 점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이와 함께 동화적인 색채가 묻어나는 따뜻한 영상미와 캐릭터의 매력이 부각되며 기대 이상의 감동을 자아냈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임이 분명해 보였다. 

 


아버지를 전쟁터로 떠나 보낸 뒤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던 네 자매가 이웃집 소년 로리를 알게 되며 오랜 인연을 쌓아 온 과거와 7년이 흘러 맞닥뜨리게 된 현재의 삶이 잔잔하게 펼쳐지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매끼리 돈독한 우애를 다져 나가는 과정 속에서 잦은 말다툼과 격한 몸싸움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 또한 필요한 일이었기에 그들을 지켜보는 시간이 더 즐겁게 느껴졌다. 용서와 화해를 통하여 한 뼘씩 커가는 모습이 눈부셨기 때문에. 형제, 자매, 남매 사이에 싸우지 않고 자라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아주 잘 알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그리하여 배우를 꿈꾸는 첫째 메그, 작가가 되기 위해 글쓰기에 매진하는 둘째 조, 피아노 연주를 즐기며 음악가의 꿈을 키워나가던 셋째 베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화가가 되기를 원하던 넷째 에이미의 변화하는 삶을 지켜보는 일 역시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메그는 아름다운 외모와 온화한 성품을 지닌 캐릭터이면서 연기에 관심이 많아 배우를 꿈꾸었으나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아가며 평범한 인생을 영위하는 일에 만족하는 인물이었다. 조, 베스, 에이미와 달리 예술적 재능을 타고나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우리 곁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인간상을 마주하게 하며 공감대 형성을 도왔다.


그런 의미에서 조를 향해 던진 메그의 말이 명대사로 자리잡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네 꿈과 내 꿈이 다르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이 한 마디가 선사한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다만 메그의 단점으로 언급된 허영심의 경우, 작품이 쓰여진 시기에 따른 청교도 특유의 엄격한 금욕주의가 반영된 것으로 보여짐에 따라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별다른 감흥을 전해주지 못했음을 밝힌다. 그렇긴 하지만, 사교 파티에서 지인이 빌려 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다른 이름으로 잠시 불려진 순간과 친구의 권유에 못 이겨 옷이 아닌 비싼 옷감을 샀을 때 죄책감을 겪으며 반성하는 메그를 통해 미처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분위기를 읽어나갈 수 있어 눈여겨 볼만 했다.



이와 함께 엠마 왓슨의 열연이 이목을 집중시켰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역 중 한 명인 헤르미온느로 아역 시절부터 봐와서 그런지 몰라도, 마치 가의 첫째인 메그 마치로 영화 <작은 아씨들>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흘러나왔을 때부터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아쉽게도 메그의 비중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마 왓슨으로 인하여 캐릭터가 빛났다. 훌륭하게 자란 아역 배우의 본보기로 성인 연기도 멋지게 해냈다. 그리하여 동생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포용력이 돋보이는 메그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베스는 셋째로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선한 마음씨가 도드라짐으로써 뭉클한 에피소드를 여럿 만나게 해줘 남다른 여운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로리 할아버지인 로렌스 씨와의 우정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로렌스 씨는 자신의 집 거실에 마련된 그랜드 피아노를 베스가 원하는대로, 아무도 없을 때 와서 조용히 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이어 피아노 선물까지 보내며 훈훈함을 전했다. 베스 역시도 로렌스 씨를 위해 제비꽃 무늬의 실내화를 직접 만들어 보답하며 친손녀와 친할아버지를 뛰어넘는 케미를 뽐내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졌다.


이러한 이유로, 몸이 약해서 재능을 꽃피울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슬프게만 느껴지는 베스의 생이었다. 조와 베스가 바닷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던 장면에서 마음이 아파왔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여려 보이는 것과 달리 단단한 심성을 보유했던 베스와 엘리자 스캔런의 싱크로율도 완벽해서 눈길이 갔다. 



에이미는 네 자매 중 막내로 철부지 같았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난 이후 대고모의 눈에 들어 유럽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안 화가로의 재능을 갈고 닦아 보지만, 이를 통하여 뛰어난 천재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고 결국에는 현실과 타협하며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둘째 조와 넷째 에이미는 자매들 중에서도 성장하는 내내 끊임없이 대립하며 애증을 나눈 관계였는데, 그들이 원하던 꿈과 사랑의 방향에 따라 운명이 달라져서 이로 인한 호기심을 충족해 나갈수록 영화의 재미가 커졌다. 특히 에이미는 자신이 특별할 것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하기에 이르는데, 이로써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 합리적인 면모로 예상을 뛰어넘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써 여자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설사 돈을 번다고 하더라고 결혼을 하게 되면 손에 쥔 모든 것들을 포함해 내가 낳은 아이는 물론이고 자신마저 남편의 소유물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은 경제적 제안임이 분명하다는 에이미의 대사가 깊이 와닿았다. 이는 영화 <작은 아씨들> 속에 여성들이 견뎌내야 했던 참담한 시대적 현실을 녹여낸 명대사로이자 원작에서 만나볼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명장면이기도 했다. 덧붙여 에이미가 결혼을 잘해서 안정적인 삶을 살고자 애쓴 이유 역시 명확하게 표출돼 더더욱 감명깊었다. 그러니까 에이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 것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작소설과 함께 떠올리는 인물로 조 마치가 가장 유력할 테지만, 이 영화로 말미암아 에이미 마치를 생각하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 정도로 굉장히 멋있게 잘 자랐다. 덕분에 에이미 마치를 재발견하게 만들었던 영화가 바로 <작은 아씨들>이었음을 인정한다. 


게다가 에이미 마치를 입체적으로 잘 표현한 플로렌스 퓨의 활약 역시도 정말 대단했다. 청소년 시절의 에이미와 어른이 된 에이미의 온도차가 뚜렷하게 두드러지는 배우의 열연을 보면서, 속으로 탄성을 자아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덧붙여, 원작과 명백한 차이점을 보여준 캐릭터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마치 대고모를 꼽을 수 있겠다. 독신의 돈 많은 부자로 강렬한 포스를 발산했는데, 여자는 결혼을 잘 해야 된다는 조언에 고모님도 독신이 아니냐고 얘기를 꺼내자 나는 부자라며 당당함을 선보이는 순간이 인상깊었다.


마치 가의 여자들에게 가시 돋힌 말을 서슴지 않을 때조차 자신의 부유한 처지를 피력하는 마치 대고모는 매력적이었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명대사까지 남겼기에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임을 확신했다. 


꽤 오래도록 마치 대고모의 집을 방문해 시중을 들었던 건 조였지만, 베스가 성홍열에 시달릴 때 잠시 머물렀던 에이미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유럽의 동행으로 선택하면서 두 자매의 인생에 변곡점이 찾아온 에피소드도 재밌었다. 



네 자매의 성장 안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꿈 다음으로 눈에 들어왔던 이야기는 사랑이었는데 이중에서도 로리, 조, 에이미의 삼각 관계는 당황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그치만 조와 로리가 친구로 남게 된 이유와 에이미와 로리가 결혼을 하게 된 이유를 어느 정도는 알 것 같기도 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닌 그런 관계였다고나 할까?


에이미라면, 로리 로렌스를 착실히 이끌어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게 가능해 보였다. 조와 로리는 너무나도 비슷한 성향과 기질을 타고나서 의외로 위험해 보이는 순간들이 포착되기도 했다. 소설과 영화로 추측해 본 나의 의견은 대체로 이랬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위기 상황 속에선 하나가 되어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마치 가의 네 자매였다. 그렇게 현명한 엄마의 보살핌 아래서 무럭무럭 자라난 넷이 만나게 해준 자매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는 포근함을 전해준 한때였다. 


원작소설을 토대로 새로이 쓰여진 각본이 따스함을 경험하게 만들어준 영화 <작은 아씨들>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달라진 시대의 가치관을 통해 의미있는 변화를 일깨워줘서 더욱 뜻깊은 작품으로 남았다. 



조, 메그, 베스, 에이미, 넷이 함께 무대를 직접 만들어 연극을 선보이던 장면도 멋졌다. 참고로 이 공연의 극본을 조가 직접 썼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재능을 키워나갔음을 알게 되니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서 문장으로만 읽고 끝내기에는 아쉬웠던 연극을 영화 속에서 제대로 만날 수 있어 설레고 또 신났던 시간이기도 했다.  



조 마치는 영화 <작은 아씨들>을 이끌어가는 중심 인물이었다. 네 자매 중에서 가장 큰 서사를 책임짐과 동시에 루이자 메이 올컷의 분신으로 작가가 되고자 계속해서 글을 써내려가며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독보적이었다. 현실주의자로 지금을 받아들이며 최선의 결정을 통해 나은 삶을 살기로 마음 먹은 에이미와 달리, 끊임없이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며 자신의 글을 통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길 바랐던 조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을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고집 센 사고뭉치로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것을 잊게 만드는 꿈을 향한 열망과 뚝심이 남달랐기에, 배울 점이 적지 않은 캐릭터였다. 다락방에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바닥에 펼쳐 나가며 자신의 글을 살펴 나가던 조의 집중력 가득한 눈빛과 공간의 분위기도 신비롭기 그지 없었다. 



영화의 원작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자전 소설로써 작가는 조를 자신처럼 독신으로 남겨두고 싶었으나 출판사의 요구로 인해 결혼시켰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도 로리를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게 여겨졌다. 또 지금이라면 앞서 언급된 부당한 강요를 거부하는 일이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괜시리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도 재치있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좋은 작품을 완성시켰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명작으로 회자된다는 점에서 가치를 부여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상상을 초월하는 조의 결혼과 관련된 비하인드를 확인하게 돼 충격적이었지만 과거의 시대상을 짐작해 보게 해줬으므로 아주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감독 그레타 거윅으로 인해 빛을 보게 된 영화 <작은 아씨들>은 소설과 다른 결말로도 짜릿함을 전해 주었다. 책의 엔딩을 출판사의 의견에 맞춰 바꾸는 대신, 조가 본인이 의지대로 인세 협상을 유도하며 판권을 지켜내는 장면은 더없이 소중했다. 이에 더해 소설이 인쇄되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만나보는 게 가능해 만족스러웠다. 


이와 더불어 조 마치로 열연한 시얼샤 로넌에게도 푹 빠졌다. 푸른 눈동자에 담긴 조의 세계가 파도처럼 밀려와 그 속에서 넓디 넓은 바다를 창조해 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알게 된 건,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이 출판되고 난 뒤 1917년 영국을 시작으로 꾸준하게 리메이크가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이 영화 <작은 아씨들>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고전 명작의 힘을 이어가기를 바라며, 시대의 변화와 잘 어울리는 동명의 리메이크작을 다시 또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날 만난 2019년 최신작은 네 자매의 성장을 통해 확인한 꿈과 사랑, 그리고 삶이 출연진들의 탁월한 연기와 리메이크의 위대함을 알려주기에 그야말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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