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뭐하니 31회 유케스트라 ::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 녹아든 유르페우스의 하프 연주

매주 토요일 밤 6시 30분에 방영되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는 개그맨 유재석과 김태호 피디가 무한도전이 종영된 이후, 새롭게 의기투합함으로써 탄생되었다. 지난 주까지 총 32회가 방송되었는데, 그동안의 내용을 대략적으로 쭉 훑어보니 이 프로그램은 '유재석의 무한도전'이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여겨져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 방송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2020년 2월 29일에 방송된 <놀면 뭐하니?> 31회를 통해서였다. 유케스트라로 이름 붙여진 회차에선 유재석이 스승의 가르침을 토대로 연습에 매진하며 성장하는 과정에 이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객원 단원으로 무대에서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지인들의 얘기를 허투루 듣지 않는 김태호 피디로 인해 탄생된 유재석의 부캐는 그리하여 유르페우스로 정해졌다. 유고스타, 유산슬, 라섹에 이어 네 번째였는데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흘러가다 보면, 유재석은 아마도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이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미 개그맨과 MC를 뛰어넘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참고로, 유르페우스는 유희열의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놀면 뭐하니?> 31회 게스트로 유희열이 초대된 점도 재밌었다. 여기에 이적과 피아니스트 김광민, 손열음이 함께 하며 클래식 공연에 대한 정보와 재미를 선사해서 보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국립예술단체 연습동에서 이루어진 하프 레슨은 윤혜순 하피스트가 맡아 웃음과 감동을 전했다. 말이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최고의 선생님으로, 제자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하프 실력이 늘어날 수 있는 다양한 꿀팁까지 전수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손이 아파서 연습 못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미리 반창고를 붙이게 만드는 철저함도 최고였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진행된 공연에서 세컨드 하프인 유재석을 리드하면서 퍼스트 하프로도 뛰어난 연주를 확인하게 해줘서 이 또한 감탄을 자아냈다.  



이 장면은 구도가 마음에 들어서 담아 보았다. <놀면 뭐하니?> 31회는 하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돼 뜻깊은 방송이기도 했는데,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있어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연주자의 능력이 필요함을 깨닫게 돼 경이로움이 밀려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하프의 구조가 훨씬 더 복잡했고, 그리하여 연주를 위해선 상당한 스킬이 요구되는 악기임을 일깨워줬기 때문에. 


하프 특유의 영롱한 소리는 현장에서 직접 듣는 라이브 연주 속에서 특히나 빛을 발하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립발레단 공연 보러 갔을 때 오케스트라를 통해 하프 연주를 직접 들었던 가장 최근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고, 방송을 시청하는 동안 문득 떠올랐음을 밝힌다.



하프 편곡 악보가 나오자마자 윤혜순 하피스트가 써준 계명과 함께 외워서 연주를 이어갔다는 유재석의 능력치도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는 장본인임과 동시에 타고난 감각이 존재하는 인물임을 알려주는 시간이라 시선을 뗄 수 없는 방송이기도 했다.



특히, 글리산도 연주에 매우 탁월했다. 글리산도(glissando)는 비교적 넓은 음역을 빠르게 미끄러지듯 소리를 내는 주법의 하나로써 하프의 맑은 소리가 물 흐르듯이 귀에 전달되게 도와서 들을 때마다 강렬함이 남았다. 참고로, 위의 이미지 속에서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부분이 글리산도다. 이때 확인할 수 있는 손의 움직임도 아름다웠다. 





하프는 서로 다른 길이를 가진 현들이 삼각형의 틀에 끼워짐으로써 구성된 발현악기다. 그러나 손으로 현을 잡아 음을 내는 것 외에 발로 페달을 밟아 음계를 맞춰줘야 한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악기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유르페우스 덕택에 하프를 배워보고 싶어지면서 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한꺼번에 찾아와 혼자서 마음 속으로 고민하던 순간이 없지 않았다. 



연습 중간에 하프와 관련된 신화를 만나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음유시인 오르페우스는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뱀에 물려 죽었음에도 잊지 못하고 저승에서 데려오고 싶어했다. 그래서 하데스 왕 앞에서 하프를 연주하며 죽은 아내를 데려가게 해달라 간청했다. 오르페우스의 연주에 감동 받은 하데스 왕은 청을 들어주는 대신, 저승을 벗어날 때까지 뒤돌아 봐선 안 된다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그리하여 저승 출구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했으나 오르페우스는 그곳에서 뒤를 보고 말았고, 에우리디케는 이로 인해 먼지처럼 사라졌다. 



여기서 유재석이 유르페우스가 된 이유를 마주하는 것이 가능했다. 덧붙여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 뿐만 아니라 굉장히 여러 이야기에 등장할 정도로 하프 특유의 아름다운 소리는 꾸준히 사랑받았기에, 유르페우스의 탄생 또한 의미가 있었다고 보여졌다.    


은근히 사람을 홀리는 매력을 가진 하프의 울림에 반하지 않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글리산도에 이어 코드(화음) 연주도 스승을 따라 단번에 마스터한 유르페우스의 모습은 하프 영재라는 자막이 잘 어울리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해주었다. 여러 개의 현을 한 번에 튕기는 윤혜순 하피스트를 보고 곧바로 소리를 내던 유르페우스는 유재석의 부캐로 더없이 안성맞춤임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선생님의 칭찬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까지 입증되던 찰나였다.  




선생님의 칭찬은 유르페우스를 웃게 만든다. 광대를 씰룩이며 좋아하던 유르페우스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았던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할 때마다 잘한다고 해주시니, 이에 보답할 수 밖에 없는 거다. 



이와 함께 오케스트라에 사용되는 악기 설명과 무대 배치도를 포함, 하프의 위치까지 상세하게 만나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던 <놀면 뭐하니?> 31회 유케스트라였다.


하프는 다른 악기들에 비해 개성이 남달라서 멀리서도 눈에 쏙 들어와는 장점이 존재했다. 소리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이 장면은, 만화 캐릭터 오르페우스의 신나는 하프 연주와 차로 이동하는 도중에 작은 하프로 연습에 매진하는 유르페우스의 적절한 합성이 재밌어서 기억해 두려고 넣어 봤다. 


하프와 한 몸이 되어 쉬는 틈틈이 연주에 임하던 모습이 아주 조금은, 진중한 음유시인을 연상시켰다. 진정한 유르페우스로 거듭나기 위해선 연습만이 살 길! 




공연이 다가올수록 안정을 찾아가던 유르페우스였다. 어려운 하프 연주는 선생님의 몫이었지만, 현란한 독주의 기회 또한 마련되어 있어 방심은 금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취월장하는 유르페우스 덕택에, 두 대의 하프가 경험하게 해주는 따스한 울림이 점점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유르페우스의 첫 합주곡 "이히 리베 디히"는 웅장함 속에 마음을 울리는 선율이 내재돼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프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게 된, 이제 막 하프에 입문한 초보 연주자 유르페우스의 얼굴 속 긴장감이 역력하긴 했으나 연주 자체는 곧잘 해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주자들을 사로잡는 마에스트라, 지휘자 여자경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최고였다. 악기들의 특성이 잘 살아나는 연주도 훌륭했지만, 모든 악기가 하나 되어 전달하는 감동은 그 이상이었다. 





첫 합주 연습 때 들어갈 타이밍을 놓치는 실수를 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유르페우스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는데, 실전이 아니라 다행스럽기도 했다. 


악보 속 몇 마디를 놓쳤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이끌어줘서 무사히 다시 하프 연주에 임하며 침착함을 찾아가는 모습도 눈여겨 보게 되었다.



합주 후에 따로 찾아와 유르페우스를 지도해 주던 여자경 마에스트라의 모습도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지휘하는 모습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방법으로 음을 표현하며 연주자들을 이끌어가던 장면도 명장면 중의 하나로 남았다.


마에스트라의 인도 하에 연주해 나가던 유르페우스 역시 훌륭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공연 당일이 찾아왔다. 유르페우스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020년 2월 13일 목요일 오전 11시에 진행된 한화생명과 함께하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에 참여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연 속 앙코르 무대에서 베토벤의 "이히 리베 디히"를 함께 연주하면 유케스트라, 미션 완료! 



그리고, 인터파크티켓에서 이 콘서트와 관련된 정보가 궁금해져 검색을 해 보게 됐다. 11시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후원을 받아 매월 목요일 11시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며 티켓은 일반석 25,000원, 3층석 10,000원으로 저렴한 가격에 풍성한 콘서트를 즐길 수 있다고 해서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어졌다. 


예술의전단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을 몇번 접하긴 했지만 잘 알고 보는 건 아니라서 막상 예매를 하려고 하면 주저하게 될 때가 많았는데, <놀면 뭐하니?> 덕에 조금 더 관심이 생겨서 앞으로는 제대로 문화생활에 포함시켜 볼까 생각 중이다. 




이날 콘서트를 위해 유르페우스는 연미복을 갖춰 입었지만 다른 연주자들은 정장에 넥타이로 다소 편한 차림이었기에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도 재밌었다. 알고 보니, 이것은 콘서트 시간에 따라 의상이 달라지는 걸 몰라서 발생한 에피소드였다. 아니, 정확히는 유르페우스만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유르페우스는 주는대로 입었고, 제작진은 일부러 연미복을 준비했을 테니까. 


기본적으로 낮에 이루어지는 마티네 콘서트에서는 지휘자와 연주자 모두 간단한 정장을 착용해도 괜찮다고 한다. 연미복은 밤 공연을 위해 주로 입는다고. 그치만 연미복이 잘 어울리는 유르페우스가 제작진의 의도대로 시선을 사로잡았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싶다. 




공연에 앞서 오보에의 A(라)음에 맞춰 악기들의 튜닝이 이루어지고, 맨 앞자리의 두 사람은 제1바이올린으로써 연주를 이끄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콘서트 마스트라는 사실도 새로이 깨닫게 돼 즐거웠다. 


이외에, 화려한 사운드의 곡을 강렬하게 표현할 때 심벌즈가 연주된다는 점도 마주할 수 있어 흡족했다. 




유르페우스 등장 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와 여자경 마에스트라의 지휘 또한 방송으로 잠시나마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뿐만 아니라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모습 속에서 클래식을 애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평일 밤이나 주말보단 평일 낮 시간이 아무래도 여유롭게 클래식 즐기기 좋은 시간이라서 이때에 맞춰 열리는 콘서트 역시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그리고 드디어, 무대에 오른 유르페우스의 하프 연주가 공개되었다. 쉴새 없이 손과 발을 움직이며 악보에 맞춰 정확한 음을 내는데 집중하는 모습이 감명깊었다. 특히, 덜덜 떨리는 손에 포커스가 맞춰진 장면에선 나 역시도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프로 글리산도 연주를 할때 가장 빛나던 유르페우스. 제작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흑조의 우아함을 자막이 전해져 오는 장면으로 완성시키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양손과 두 발을 모두 이용하는 악기가 하프인 데다가 지휘자와 악보를 눈으로 번갈아 바라봄과 동시에 귀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까지 캐치해내 자신의 차례가 다가왔을 때 실수 없이 음악을 이어나가야 했는데 무대 위에 존재하는 동안 계속해서 흐트러짐 없는 우아한 자태를 보여줬으므로, 그때 만큼은 정말로 흑조를 보는 듯 했다. 






다만, 하필이면 마지막 한 음을 실수해서 음이탈이 난 것은 아쉬웠다. 그래도 관객들과 단원들이 웃음으로 격려를 해줬기에 마무리까지 나쁘지 않은 공연을 해냈다고 본다. 


게다가 가장 아쉬움이 난 것은 본인일 테니. 







지휘자를 포함해서 이날 공연에서 멋진 연주를 들려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단원의 이름을 화면으로 빼곡하게 만나볼 수 있게 해준 점도 센스있게 느껴졌다. 유르페우스의 스승이자 하피스트 윤혜순과 객원단원 유재석까지 전부.



이날 방송된 <놀면 뭐하니?> 31회 유케스트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클래식을 알리는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재치만점의 에피소드를 결합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한 회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기준 레전드 회차였다. 원래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청하게 만들었을 때부터 이러한 예감이 드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이뤄지는 공연을 참 좋아하는데,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또 방문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니까 또다른 멋짐이 목격되던 예당이었다.


그런데, 유케스트라 1악장이 끝났다는 자막이 심상치 않다.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를 잡았으니 놓칠 리가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인터미션 후 펼쳐질 2악장을 기대해 본다. 그때가 되면 <놀면 뭐하니?>를 다시 또 만나게 될 테니까. 위의 화면 속 하프를 제외한 악기들과 지휘봉을 차례대로 잡게 되려나? 마지막으로, 이날 게스트로 모습을 보인 김광민과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도 잠깐 만나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그러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 녹아든 유르페우스의 하프 연주를 통해 클래식과의 거리감이 한 걸음 좁혀져서 의미있었던 주말을 기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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