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워 바디 :: 달리기로부터 시작된 우리 몸을 향한 탐닉과 욕망의 보고서

영화 <아워 바디>를 봤다. 영화관에서 상영이 시작되기 전까진, 달리기로부터 비롯된 몸의 변화가 건강한 삶으로 이어짐에 따라 주인공의 시간을 보다 경쾌하게 그려낸 이야기를 만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리하여, 볼수록 예상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러한 이유로, 이날 마주하게 된 영화 <아워 바디>는 달리기로부터 시작된 우리 몸을 향한 탐닉과 욕망의 보고서라는 한 문장이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8년 동안 행정고시생으로 살아왔던 자영이 공부를 포함한 현재의 삶에 지쳐 있을 때, 달리는 여자 현주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그녀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달리기에 빠져든다. 이를 계기로 행시를 포기한 이후, 낮에는 친구 민지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뛰는 일에 집중하다가 현주가 속한 달리기 동호회에 합류하면서 자영은 동경했던 이와 친구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이 영화는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여성의 몸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달리기를 통하여 정직하게 바뀌어 나가는 신체를 거울에 비춰보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우리의 몸을 제대로 맞닥뜨리도록 돕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 몸을 향한 욕망까지 거침없이 쏟아내는 방식으로 놀라움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자영 스스로가 본인의 몸을 받아들이고 탐닉하게 됨으로써 완성되는 결말은 영화 <아워 바디>가 전하고픈 메시지 속 희망을 담아냈다고 여겨졌으나 그 순간을 제외한 인생의 남은 부분들은 여전히 절망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돼 오히려 슬펐다.  


영화의 장르 역시도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미스터리적 요소가 결합돼 이로 인한 음울한 기운이 작품 내에 진하게 깔려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 했다. 덕택에 밝은 분위기를 기대했던 나의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작품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결론적으로는 안타깝지만, 영화 <아워 바디>에 대한 나의 관람평은 호보단 불호에 가까울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내용이라는 걸 어느 정도 인지하고 봤더라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을 텐데, 짧게 요약된 시놉시스에는 어떠한 암시도 존재하지 않았기으므로 절정에 치달을수록 혼란스러움이 가중됐다.


설마 했던 장면이 실제로 스크린 속에서 펼쳐졌을 때는 특히나 충격을 금치 못했다. 게다가 15세 관람가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19금 장면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등장하는 점도 좀 아쉬웠다. 은유적으로 표현했더라도 괜찮았을 것 같아서.


손에 잡을 수 없는 이상을 선물하는 대신,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서글픔이 깃든 영화 <아워 바디> 속 청춘의 자화상은 생각할수록 마음을 아리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곱씹어 봤을 때, 녹록치 않은 청춘의 찰나를 살아가던 자영과 현주에게 달리기는 일종의 구원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인공 못지 않게 위태로워 보였던 현주의 선택으로 인해 바뀌어버린 자영의 삶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진 모르겠으나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위험한 줄다리기를 이어갈 듯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와중에 윤자영 역을 맡은 최희서의 연기는 최고였다. 이 영화로 처음 보게 됐는데 볼 때마다 얼굴이 달라지고 표정을 통해 섬세한 감정이 드러나서 감명깊었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내부에 자리잡은 극장 아트하우스 모모를 방문했다. 조조 영화의 경우에는 6천원만 내면 되는 데다가 인터파크 영화 페이지를 통해 예매했더니 모아 둔 아이포인트까지 사용할 수 있어 생각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보게 돼 즐거웠다. 수수료 500원이 붙긴 했지만.


아트하우스 모모 매표소는 영화 상영 10분~15분 전 쯤에 열렸다. 무인 티켓 발권기가 따로 없어서 매표소가 문을 열어야 티켓 수령이 가능했다. 종이 티켓은 꽤 오랜만이라 반가웠는데 하필이면, 매표소 내 티켓 발권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수기 티켓을 받았고 이것은 레어템이 되었다고 한다.



티켓과 함께 받은 쿠폰에 도장 10개를 모으면 영화 1편 무료 관람이 가능한 점도 좋았다. 영화관 내부도 깔끔하고 단차 또한 괜찮았다. 다만, 생수를 제외한 음식물 반입은 허용되지 않으니 이 점은 꼭 기억을 해두어야 하겠다. 


종이 티켓을 수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독립영화를 애정하는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전해 주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의 시간이 나쁘지 않았기에, 기회 되면 다음에 또 가봐야겠다. 영화 <아워 바디> 상영관이 많지 않아서 처음으로 발걸음을 하게 됐는데 장점이 많은 걸 알게 됐으니 재방문을 하게 될 듯 하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작품인 건 맞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새로운 관점으로 우리 몸에 대해 접근해서 신선하게 다가왔던 영화가 <아워 바디>였다는 건 인정하고 넘어간다. 그렇다고 불호가 호가 되는 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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