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 이방인에서 만나 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음악과 삶

JTBC에서 2017년 겨울부터 2018년 봄까지, 새로운 주말 예능으로 선보였던 <이방인>은 용감한 타향살이를 주제로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낯선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흥미로움을 전했다. 프로그램의 제목 자체가 출연진들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완벽한 타이틀을 선사했기에 이로 인한 관심이 첫회부터 집중됐던 게 사실이다


1회의 시작은 텍사스 레인저스의 추추 트레인으로 메이저 리그에서 이름을 날리며 대한민국 최고의 메이저리거로 손꼽히는 야구선수 추신수의 이야기로부터 결혼을 하면서 연예계를 떠나 뉴욕에서 생활 중인 서민정의 일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시선을 잡아끌었다.



다만 <이방인> 출연이 예정됐던 또 한 명,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모습은 1회도 2회도 아닌 3회에 이르러서야 확인을 할 수 있어 이 점이 좀 아쉬웠다. 실제로 프로그램에서의 비중 또한 서민정이 메인, 추신수가 서브, 선우예권이 엑스트라에 가까운 분량을 차지했기에 여러모로 섭섭함이 더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방송이 시작될 당시의 나이 29세, 뮌헨에 거주하는 13년 차 이방인으로 한국인 최다 콩쿠르 우승과 더불어 세계 4대 피아노 콩쿠르 중 하나인 반 클라이번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선우예권. 그는 우승 이후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순회 공연을 펼치는 중이었다. 



클래식 장르의 문외한으로 살아온 나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었지만 그래서 이 만남이 정말 반가웠다. 앞으로 새로운 음악에 빠져들게 만들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피아노 연주할 때는 완벽한 프로, 그 외의 모습들에서는 은근한 허당끼가 전해져 와 이로 인한 매력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 선우예권은 1년에 60개가 넘는 해외 공연 일정을 소화할 준비로 바빴다. 이걸 다 외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듯. 


세계 각국의 이름 몇개를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다 말고 급하게 스케줄을 넘겨 보는 모습이 귀여웠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그로 인해 선택한 꿈. 음악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며 행복을 경험하고 위로를 건네받음으로써 더욱 성장할 피아니스트로의 그 또한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본인 스스로의 목표는 더 높아지지 않았을지.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될 도시, 사람들과의 조우를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 보는 내내 느껴져서 이 또한 훈훈함을 자아냈다. 정말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드러나는 에너지는 이런 것이구나 라는 사실을 눈 앞에서 마주하게 해준 점도 의미있었다. 







이와 함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음악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면서도, 언제나 정해진 분야에 치중했던 나에게 선우예권이 보여주는 앞으로의 모든 이야기가 클래식과 가까워질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확신하게 돼 무척이나 반가웠다. 


음악이란 그런 것이니까. 곁에 있으면서 매 순간마다 행복을 건네주는 비타민과 같은 존재. 이러한 이유로, 회차가 거듭될수록 그의 바람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 클래식이 그들 마음 속에 단단히 뿌리내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지한 얘기를 뒤로 하고 터져 나온 별명, 깐 달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예상치 못한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음으로써 재미를 선사하는 순간도 인상깊었다.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던 요리 실력은 달걀깨기도 쉽지 않은 입문자 수준이었지만, 손재주는 피아노 연주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본인의 입으로 손재주가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얘기를 꺼낸 것은 피아노에 한해서만 인정하면 될 듯 하다. 






6개월 만에 다시 오른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리셉션 파티에서 여성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대화를 이어나가던 예권. 그로 인해 음악이 살아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인사는 정말 최고의 찬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앞서 보게 된 장면으로 입증된 또래가 아닌 누나 팬이 많은 것에 대한 본인의 결론은 이랬다. 귀엽게 생긴 상이라는 거. 어쩜 그리 자기 자신을 잘 아는지, 자화자찬이라기엔 너무나도 사실이라 딱히 부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또래 팬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건 분명하다.  


어찌 됐든, 자막의 임팩트와 단어 설정으로 인해 선우예권은 굉장히 귀엽게 생긴 얼굴을 지닌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로 거듭나게 되었다.  








대학생 시절, 콩쿠르돌로 불리는 것이 섭섭했지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에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상금을 받는다고 해도 집세를 내면 수중에 남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 경쟁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전액 장학금이 있는 커티스로 유학을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 친구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며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이 예뻤다. 






예권은 연주자들을 머물 수 있게 돕는 현지인 가정으로 불리는 호스트 패밀리의 집인 포트워스에서의 생활을 앞으로 보여주게 되었는데, 어머니와 딸은 여행 중인 관계로 아버지와 둘이 남게 된 상황에서 요리에 처음 도전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어나서 처음으로 달걀찜 요리를 위해 손을 걷어부친 그의 엉뚱함은 서툰 실력과 함께 돌아오지 않을 대답을 기대하며 제작진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했다. 사람은 둘 뿐인데 5인분 같은 2인분에 랩을 찾지 못해 대충 윗부분만 덮은 채로 조리에 들어간 달걀찜의 비주얼은 이랬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여행을 오거나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외국에 나가는 컨셉의 방송은 많았으나 타향살이 중인 사람들의 속깊은 사정은 확인할 길이 마땅치 않던 때에 맞닥뜨리게 된 JTBC 예능 <이방인>은 그러한 점에서 역발상으로 신선한 자극과 흥미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 눈에 띄었다. 



꿈을 이룬 메이저리거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도왔고, 오랫동안 방송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던 배우의 현재를 포착해 사랑과 삶의 따스함을 경험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익숙치 않은 클래식계의 재능 넘치는 피아니스트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며 존재감을 발산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을 알게 해준 방송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만, 프로그램의 방송날짜와 시간이 갑자기 변경되며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줬고 예권의 이야기는 추신수와 서민정 가족에 비해 짧게 끝을 맺으며 남은 시간을 다른 이방인들을 접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은 씁쓸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로 인해 용두사미라는 단어가 떠오를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비록 17부작으로 진행된 JTBC <이방인> 속의 방송 분량은 가장 짧았지만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음악과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 좋았다. 피아노 연주할 때의 프로페셔널함과 일상 속 허당스러움이 미소를 짓게 만들었던 주인공이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JTBC에서 이방인 시즌2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즌2는 부디, 시즌1과 같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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