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에곤 실레 :: 콘서트 형식으로 구성된 화가의 일대기 (조성태, 이채민, 김방언)
뮤지컬 <모딜리아니>를 보고 난 후 30분의 휴식시간을 거쳐 화가시리즈라는 타이틀 하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인 또 하나의 작품, 뮤지컬 <에곤 실레>를 같은 공연장인 예스24 스테이지 2관에서 관람했다. 이 공연 같은 경우에는 에곤 실레를 맡은 배우가 해설자가 되어 본인의 입을 통해 지금까지의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스토리 구성이 돋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무나네에서 제작된 뮤지컬 <리틀잭>이 머리 속에 떠오르기도 했다. 콘서트를 연상시키는 흐름을 이어갔기 때문에 더더욱. 그 속에서 무대 위에 설치된 여러 대의 스탠딩 마이크를 활용하여 높낮이를 조절하는 등의 방식으로 상황에 필요한 장치적 설정을 확인하게 해준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CAST]
에곤 실레 : 조성태
발리 : 이채민
싱어 : 김방언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있어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던 에곤은 부푼 꿈을 안고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만, 특유의 보수적이면서도 강압적인 교육 철학을 받아들이지 못해 충돌을 반복한다. 그러다 클림트를 만나며 드디어 에곤만의 예술이 꽃을 피워 나가게 됐음을 확인할 수 있어 눈여겨 볼만 했다.
이와 함께 발리와의 사랑 역시도 에곤의 예술 세계를 한층 더 탄탄하게 구축해 나갈 수 있었던 한때와 다름없어 보여 인상깊었다. 그러나 재판씬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오로지 예술에 대한 억압으로만 여기던 모습은 자기합리화에 치중한 분위기가 전해져 와 불편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 존재했음을 밝힌다. 사실에 입각한 내용인 데다가 에곤 실레를 설명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에서 이 불편함이 의도된 거였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뮤지컬 <에곤 실레>는 서정성이 돋보였던 뮤지컬 <모딜리아니>와 달리 락 사운드의 강렬함이 귀에 콕 박히는 넘버가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3인극이지만 에곤 실레를 맡은 배우의 비중이 압도적이라서 이로 인한 장단점이 극명하게 도드라질 수 밖에 없었다. 성태 에곤은 연기와 노래는 곧잘 해냈으나 뻔뻔함이 부족해서 이 부분은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근데 막상 공연에 돌입하면 진중한 내용이 중심을 이뤘으므로, 앞서 말한 점이 크게 문제가 되는 건 또 아니었다.
반면, 시 읊기 전에 읽어줄 건데 괜찮냐고 물어보던 순간과 지연입장으로 무대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나서 관객들 고개의 건강을 생각해주던 장면은 예상치 못했던지라 웃음이 빵 터졌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의 풋풋함이 느껴져 나쁘지 않았으므로, 활약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멋지게 완성시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봤다. 모딜리아니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면모를 뽐내서 이 점은 놀라움을 전했다. 하루에 1인 2역을 번갈아 맡아 무대에 서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알기에 앞으로가 더 기대됐다.
채민 발리는 '여름을 찾았어'라는 넘버에 걸맞는 산뜻한 캐릭터로 이목을 잡아끌었다. 뮤지컬 <모딜리아니>의 잔과 다른 자유로움과 발랄함이 에곤의 뮤즈에 걸맞아 보여 눈에 쏙 들어왔다. 다만, 다양한 안무 동작 속 무대에 앉거나 눕는 장면이 상당한데 치마를 입고 공연에 임해야 했던 관계로 고개를 내젓게 된 찰나가 없지 않았다. 뮤지컬 <에곤 실레>를 먼저 본 친구의 말에 따르자면 치마 길이가 길어진 거라고 하던데, 이게 최선인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방언 싱어는 에곤의 빈 미술 아카데미 선생님, 클림트, 재판을 맡은 검사 등으로 1인 다역 멀티 캐릭터만의 존재감을 표출해서 보기 좋았다. 그중에서도 자애로움이 느껴지던 클림트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았음을 언급하고 넘어간다.
공연 후에 이어진 커튼콜 위크 기념 이벤트에선 예쁘게 찍어달라며 손하트와 더불어 잔망스러움을 마음껏 발산하던 성태 에곤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무대 바닥에 몸을 밀착시킨 상태로 넘버를 소화하던 장면도 감명깊었더랬다.
그치만 뭐니뭐니 해도 뮤지컬 <에곤 실레>의 백미는 바로 이 장면이 아닐까 싶다. 무대에 마련된 스크린 영상을 통하여 보여지는 에곤 실레의 자화상 속 포즈를 따라하던 성태 에곤. 특유의 각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던 몸짓이 에곤 실레 그 자체였다.
오렌지 재킷을 걸친 비주얼도 화사하니 예뻤는데, 마음에 드는 사진이 없어 따로 남기진 않는다. 눈에 잘 담아왔으니 그걸로 된 거다. 덧붙여 커튼콜에서 불러주던 넘버는 '나는 에곤 실레'였다. 친구가 관객들도 커튼콜 넘버를 같이 불러야 한다며 가사를 보내줬는데, 커튼콜 위크였던지라 사진 및 영상 촬영을 위한 배려 차원에서 무사히 넘어가는 일이 가능해 다행스러웠다.
커튼콜 덕택에 '나는 에곤 실레' 넘버가 여전히 귀에 맴도는 요즘이다. 세 배우가 다같이 포즈를 취하고 신나게 노래 부르며 무대 위를 날아다녀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화가시리즈를 관람한다면 <모딜리아니>, <에곤 실레> 순서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뮤지컬 <에곤 실레>의 독특함이 색다른 시간으로 안내했던 건 맞지만, 화가시리즈 두 작품 중 내 취향은 뮤지컬 <모딜리아니>였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허나 재관람 의사는 없다. 러닝타임도 딱 60분짜리에 적합해서 더 길었더라면 루즈함이 느껴질 뻔 했다.
그래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예술가들의 인생을 만나볼 수 있게 해줬으므로, 이것으로 작품의 가치는 다한 거라고 본다. 새로운 배우들과의 조우도 흡족함을 전했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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