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트레드밀 ::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너와 나 (반정모, 유태율 / 정동화, 김준영)
뮤지컬 <트레드밀>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갇힌 A와 B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었다. 그러나 창작 초연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서사의 개연성이 현저히 떨어졌던 관계로, 배우들의 능력에 기대어 모든 것을 맡겨버린 분위기가 감지되어 관람하는 동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게 되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공연의 줄거리는 이렇다. A가 일하고 있는 프리미엄 손세차장은 차주가 라운지에서 상황을 지켜보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빨간 버튼을 누르면 주급이 삭감되는 걸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차를 시작하기 전부터 빨간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는 레게머리 손님의 행동에 A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데, 바로 그때 B가 등장하며 두 사람은 놀라운 사건으로 빠져든다.
뜻밖의 만남 속에서 갑작스럽지만 솔깃한 B의 제안을 받아들인 A로 말미암아 펼쳐지는 스토리가 귀를 즐겁게 만드는 락뮤지컬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공연의 묘미와 다름 없었다. 베이스, 기타, 드럼으로 구성된 라이브 밴드의 매력이 대단했다. 이와 함께 모자란 내용을 채워주는 배우들의 열연과 노래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CAST]
A : 반정모
B : 유태율
A와 B의 관계 및 정체에 대한 반전보다는 둘이 함께 할수록 유대감, 애증, 연민 등의 감정이 폭발하며 진실을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이 인상깊게 와닿았다. 그 속에서 B가 A를 단장해 주던 장면은 배우들의 애드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분위기 전환을 도왔는데, 보는 내내 트유의 오디션씬이 떠올랐다. 덧붙여 폴라로이드 사진을 꽤 많이 찍던데, 이걸 어디다 쓸지 그 용도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가장 유력한 건 관객 이벤트용이겠지만 확실친 않다.
반정모A에게 있어 유태율B는 자신을 알아주는 유일한 존재, 유태율B에게 있어 반정모A는 힘을 북돋아줌과 동시에 위로를 건네고 싶은 친구 그 이상으로 보여져 이 부분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손세차장에 들어서자마자 아무 말 없이 A를 꽉 안아주던 B에게서 다정함을 느끼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해 보였고, 조금씩 B에게 의지하며 마음을 내어주던 A의 해맑은 표정에도 눈길이 절로 갔다.
그리고 뮤지컬 <트레드밀> 넘버 중에서는 반정모A가 부르던 '악취'와 유태율B가 들려준 '왜 내 말이 틀려?'가 강렬함을 안겨주었다. 노래를 열창할 때마다 락사운드에 최적화된 가창력을 확인하게 해줘서 듣는 내내 귀가 즐거웠다. 게다가 안정감 있는 연기를 바탕으로 맞닥뜨리게 해준 둘의 케미도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해서 무대 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세차장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모습을 감춘 B를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가면서 객석을 향해 길을 묻던 반정모A의 순진무구한 면모도 기억에 남았다.
[CAST]
A : 정동화
B : 김준영
또다른 날 뮤지컬 <트레드밀>을 통해 마주하게 된 정동화A는 캐릭터 컷으로 공개된 사진 속 퐁실퐁실한 헤어스타일로 나타나 시선을 사로잡으며 흥미로움을 전했다. 특히 본인이 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차주가 맡긴 자동차에 대한 정보까지 자세하게 풀어놓던 모습이 눈여겨 볼만 했고, '라일라'에서 버블건으로 비누방울을 예쁘게 쏘아대며 동경하는 맘을 표현해 내던 장면이 한 폭의 그림같은 찰나를 완성시켜 탄성을 내뱉게 되고야 말았다.
김준영B는 와인 컬러를 머금은 수트핏의 완벽한 자태를 선보이며 공연 내내 잘생김을 뿜어냄으로써 이목을 집중시켰다. 매번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A를 리드하기 바빴는데, 환복 후 헤어살롱이 진행되는 순간에 있어선 한 발자국 떨어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져 웃음을 자아냈다. 왜냐하면 다른 건 몰라도, 정동화A가 스스로 새로운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선사하는 과정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이때 만큼은 오히려 B가 A가 배워야 할 게 많아 보였다. 대신, '트레드밀' 넘버를 소화할 때 표출되던 위압감과 카리스마가 멋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배우들은 정말 잘했다. 공연 회차가 거듭될수록 군데군데 비어있는 대본에 저마다의 애드립과 디테일을 부여함으로써 허술한 스토리에 살을 붙여나가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상대 배역과 합을 맞춰 보다 완벽한 스토리 구축에 힘쓰는 모습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 때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뼈대가 엉성한 상태라서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절절히 실감하게 돼 안타까웠다. 보는 내내 예전에 본 여러 공연들이 머리에 떠올라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공연 자체가 작품의 타이틀처럼 거대한 트레드밀과 같아서 비슷한 에피소드와 음악의 반복도 묘한 늘어짐을 전했다. 장면과 장면이 어색하게 연결될 땐 배우 찬스로 위기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렇듯 배우들의 의존도가 높은 공연일수록 제작진 역량의 한계가 전해져 와서 씁쓸함이 밀려올 때가 상당한데, 뮤지컬 <트레드밀>이 그랬다. 충분히 예상가능한 내용을 뻔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재관람이 이어질수록 보는 공연을 보는 내가 더 괜히 자괴감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원래 전캐를 찍으려고 결심했던 생각마저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호불호가 어마어마하게 갈리는 작품으로 정평이 났는데, 현재 좌석 상황은 매진에 가깝다. 막공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인지라 배우들의 활약과 스페셜 커튼콜 등의 이벤트가 시너지를 발휘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창작진들은 이걸 본인들의 공으로 돌려서는 안될 것이다. 촘촘한 2인극이길 바랐건만, 예상을 너무나도 많이 빗나간 작품을 만나게 돼서 슬펐다. 앞으로는 그래서 뚜껑이 열리지 않은 창작 공연 예매는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궁금해서 아예 안 볼 수는 없으니, 오픈이 되고 난 뒤에 잡던가 해야겠다.
어쨌거나 이날은 커튼콜 데이라서 정동화A와 김준영B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 기뻤다. A와 B를 맡은 배우들이 일깨워주는 캐릭터의 결이 전혀 달라서 이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에필로그에서 프리미엄 손세차장 워싱존의 직원이 된 김준영B의 색다른 면모도 눈에 쏙 들어왔다. 일을 열심히 하느라 피곤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정동화A와 김준영B는 정반대의 성격을 갖춘 인물로 대립하는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라일라의 차에 스크래치를 낸 A가 소환해 낸 B로 인해 벌어진 얘기의 결말은 허무함을 불러 일으켰지만 말이다. 과거에 발생한 방화사건과 더불어 좀 더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을 만났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와 B가 서로를 마주하며 손을 맞잡던 장면은 흐뭇함을 경험하게 했다. 이 와중에 오른쪽에 자리잡은 이동용 뷰티박스 위로 헤어살롱 에피소드에서 B가 찍어준 A의 폴라로이드가 놓여 있는 게 보여서 웃음이 빵 터졌다.
어쨌거나 애배가 있어 안 보고 넘어갈 순 없는 공연이었으므로, 나는 최선을 다했다. 배우들이 극을 잘 살려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뮤지컬 <트레드밀> 넘버 리스트를 남긴다.
연주곡이 곳곳에 배치된 건 배우들이 무대를 활보할 때를 포함하여 환복에 따른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혜화역에 위치한 CJ 아지트 대학로점 공연장이 작아서 2층에 앉아서도 잘 볼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 시야 방해가 적게끔 동선이 꾸려져 안심이었다. 무대석과 시야제한석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1층 R석과 2층 S석은 괜찮았다. 2층 2열도 나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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