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 30대 직장여성의 애달픈 삶과 연애담이 여기에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종영했다. 신예 정해인과 멜로퀸 손예진의 동반 출연으로 기대감을 자아냈던 작품은, 연상연하 커플의 진짜 연애를 보여주기 위해 판타지보다는 현실적인 감각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감성적인 OST와 배우들의 열연이 시선을 사로잡았던 JTBC 금토 드라마이기도 했는데 막상 16회까지 시청하고 나니 결과적으로는, 후련함을 넘어선 아쉬움이 가득해 뜻밖일 수 밖에 없었다.
슬픈 예감의 적중률은 놀랍도록 정확해 마음을 뒤흔들고야 만다. 사실, 드라마의 제목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품어야 했다. 어째서 이런 단어를 굳이 한꺼번에 사용해야 했을까 하는.
설명을 전해 들었음에도 단순히 재밌다고 여겨지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직설적인 표현이 더 깊이 와닿아서 안타까웠다. 스토리가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새로움을 확인할 수 있겠다 싶었던 생각도 오래 전에 접은 지 오래다.
윤진아(손예진)의 삶은 일도, 사랑도 험난함 그 자체였다. 남자친구 규민이 둘의 관계를 곤약으로 규정지으며 이별을 선언한 것과 동시에 재직중이던 커피회사에서 운영하는 가맹점이 말썽을 일으켜 이를 수습하느라 예전보다 더 바빠졌다. 별명은 윤탬버린. 회사 내 남성 상사들의 무분별한 언행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스킨십을 받아줌으로써 분위기 맞추기에 힘쓰는 그녀는 집에서도 부모를 거역하지 않는 착한 딸로 살며 현재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사랑하는 남녀의 연애를 중심으로 보여주는 드라마겠거니 싶었는데, 의외로 30대 직장여성이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깊이 파고들어 공감대를 형성하게 돕는 점이 인상깊었다. 특히, 현실 속 미투 운동을 연상시키는 진아의 사내 성추행 고발 에피소드는 긴장감을 경험하도록 하며 앞으로의 진행 방향이 궁금해지게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돈독해지던 여성 동료들 간의 연대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내던 진아의 모든 변화는 준희를 만나고,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면서 시작된다.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 못지 않은 유대감을 쌓으며 절친한 관계를 맺어온, 경선(장소연)의 하나 뿐인 남동생과의 사랑은 당사자인 둘을 제외하고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기에 이로 인한 갈등이 고조될수록 현실감 또한 극에 치달았는데 엄마 미연(길해연)의 욕심으로 인해 진아가 막다른 길로 향할 때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연기를 너무 잘해주시는 바람에, 이로 인한 분노가 더 솟구치기도 했다. 동생 승호(위하준)의, 우리 엄마는 져주는 엄마 아니라던 대사 또한 제대로 각인시킬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진아에게 준희는 남자친구 그 이상의 존재였고, 사랑받게 됨으로써 보다 단단한 내면을 가꾸어 나가고 있었으니. 사랑을 받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주고자 벅차오르는 진심을 서슴지 않고 표현하는 장면들이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반면, 데이트 폭력이라는 민감한 소재는 너무 쉽게 건드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 남자친구의 집착이 스토킹으로 이어져 진아를 위협할 때마다 섬뜩함이 느껴졌는데, 이때마다 준희가 구원투수마냥 등장하는 모습은 때때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화를 이기지 못한 준희의 충동적인 행동이 오히려 규민을 도발하게 하고 그 사이에 자리잡은 진아를 곤란하게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도움을 줬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데이트 폭력을 향한 경고 메시지를 담아냈다고 볼 수도 없는, 그저 위험한 상황을 연애의 불안 요소로 표출한 장면에 대해서는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서준희(정해인)의 존재는 윤진아에게는 현실일지 몰라도,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판타지와 다름 없었다. 친한 친구 남동생과의 로맨스, 혹은 남동생의 친구와의 연애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진아니까 가능했던 일이라고나 할까?
준희는 진아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둘 사이의 수많은 장애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힘껏 사랑하며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버릴 줄 아는 마법사 같았다. 연상녀들이 꿈꾸는 연하남을 제대로 보여주며 설렘을 마주하기 위해 탄생된 캐릭터임을 증명했다.
그런 이유로, 진아와 준희의 로맨스는 진한 멜로는 물론이고 예상 밖의 스릴러를 포함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기상천외한 알콩달콩함의 끝을 보여줬다. 진짜 연애를 표방하는 만큼 두 주인공의 열연은, 실제로 둘이 열애 중이라는 기사가 뜬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완벽했다.
이로써 정해인을 향한 세간의 관심은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될 것이라고 짐작된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순애보가 도드라졌던 준희로 인해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 이들도 꽤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까놓고 말해서,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연애가 아니라 인물들이 보여주는 현실적 상황들에 훨씬 더 많은 감정을 이입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연애 드라마였지만 진아와 준희의 사랑보다 더 절절하게 와닿는 진아의 생이 그래서 더 애달프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연애모드인 둘의 모습이 예뻤던 것은 인정한다. 근데 뭐랄까, 비 내리는 날에 빨간 우산으로부터 출발해 초록 우산 다음으로 노란 우산이 이어지는 장면의 반복은 은근히 작위적인 느낌이 풍겨 성에 차지 않았다. 신호등을 떠올리게 하던 장면들이기도 했는데 우산의 색깔이 무언의 암시를 내포하는 것처럼 여겨져 조금 흥미롭긴 했다.
빨간 우산을 함께 쓰고 걸어가던 두 사람은 이제 막 시작될 연인들의 두근거림을 보여줬고, 초록 우산은 행복으로 가득한 둘만의 연애를 아름다운 순간으로 채워주고 있었다. 다만 노란 우산 만큼은 예외로 느껴졌다. 재회한 준희와 진아에게는 일말의 희망은 물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주의를 요하는 것 같아 의미심장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큰 고비를 넘겼으니, 잘 해낼 테지만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진아에게 준희는 사랑의 전부였지만, 보라는 구원이었다. 윤탬버린으로 활약할 당시에 못마땅해 했던 시선을 거두고 달라진 윤대리에게 마음을 열게 됨에 따라 절친으로 관계의 반전을 시도한 우리의 금보라(주민경) 대리. 준희와의 비밀 연애를 응원하고 회사 문제 또한 힘이 되어주겠다며 곁에 머물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이런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열 친구 부러울 이유가 없어진다. 회사 동료가 진정한 친구로 남기란 쉽지 않은데, 금대리는 정말 멋졌다.
사내 성추행 문제가 가시화되자 이로 인한 여파로 진아는 좌천성 승진을 통해 본사가 아닌 물류센터 과장으로 가게 되고, 보라는 제대로 된 승진을 이뤄냈음에도 퇴사를 해 제주도에 카페를 차린 채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한다. 끝까지 버텨보겠다고 결심한 진아 대신 회사에 신물이 난 건 보라였다. 서로 도왔어야 할 여직원들 사이에 파문이 일어 갈라졌던 사건도 그랬고, 이제 겨우 30대임에도 언제까지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겠냐며 오래 머물 수 없음을 인지함으로써 내린 결정은 어쩌면 현명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진아는 거듭되는 성장을 보여줬음에도 결국은 한계를 인정해야만 했다. 회사 대표까지 똘똘 뭉쳐서 큰 문제로 번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수를 쓰며 능력있는 여직원을 쥐구멍으로 몰아가는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영인(서정연) 부장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당사자 혼자 싸워내야 했기에, 진아 역시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투쟁을 마무리하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결말은 분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어째서, 드라마마저 이렇게 피해자를 굴복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진 것이 아니라 이겼음에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몫이었다. 드라마에서라도 정의가 실현됨으로써 희망을 제시하기를 바랐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미국으로 같이 가자는 준희에게 이별을 고한 뒤 미연의 소개로 만난 남자친구와 다시금 불행한 연애를 해 나가는 설정이 3년 뒤의 일이라니? 두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윤진아는 서준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인물일 수 밖에 없는 시나리오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회사 직원으로도, 하나의 인격체로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던 시간에서 퇴보하게 만든 건 왜죠? 앞뒤 꽉 막히는 고구마 전개에도 꿋꿋하게 봐왔던 인내심이 15회와 16회를 통해 무너져 내렸다. 여주인공 캐릭터를 무참히 망가뜨리고 보여준 해피 엔딩엔 웃음 대신, 찝찝함이 남았다. 남녀 연애의 리얼함에 그들의 삶까지 현실적으로 그려내고자 노력했으나 결과는 실패인 걸로. 깔끔하게 회수 못할 밑밥은 깔지 맙시다. 간조차 안 봤으면^_^+
요즘 들어 용두사미 격의 드라마가 자주 출몰해서 슬프다. 좋은 배우들 뽑아놓고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드라마가 끝났음에도 한숨이 나온다. 예진 언니의 드라마 컴백에 행복했는데, 배우가 아깝더라. 멜로퀸임은 입증됐으니 다음에는 여전사 역할도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통쾌한 액션물 주인공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스트레스 확 풀리게!
'문화인의 하루 > 드라마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 슈츠 :: 짜릿하고도 깔끔했던 두 남자의 완벽한 법정 플레이 (0) | 2018.10.23 |
---|---|
[드라마] 청춘시대2 9회 OST :: #강아솔 #나의대답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0) | 2018.10.19 |
[드라마] 검법남녀 :: 검사와 법의관의 완벽한 공조가 볼만했던 작품 (0) | 2018.10.14 |
[드라마] 닥터스 :: 휴먼 메디컬 로맨스의 다정함에 취하다 (0) | 2018.10.09 |
[드라마] 응답하라 1988 :: 쌍문동 오총사가 전한 사랑과 우정, 가족의 소중함 (0) | 2018.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