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마우스피스 :: 진짜와 가짜, 그 사이의 어떤 것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만난 연극 <마우스피스> 초연은, 예술을 행하는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까지 놀라운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진짜와 가짜, 그 사이의 어떤 것을 파고드는 기묘한 공기의 흐름이 무대 위에 선 배우들로부터 객석의 관객들을 향하여 오롯이 전해짐에 따라 예상을 뛰어넘는 파장을 경험하는 일이 가능했다.  


이로 인해서 연극열전 특유의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에 다시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극에 대한 첫인상은 난해함을 닮아 있었지만, 계속해서 공연을 마주하며 이해와 공감을 통해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연극 <마우스피스>는 솔즈베리 언덕에서 홀로 그림을 그려온 데클란이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나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선 채로 술을 퍼마시는 리비를 구하면서 시작된다. 몇 장의 그림만으로 데클란의 재능을 알아챈 리비가 슬럼프를 벗어나 극작가로 되돌아가며 벌어지는 사건은, 현실과 예술이 교차되는 이야기 속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기며 기대 이상의 여운을 전했다.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엿보게 된 현재와 리비가 써내려가는 극본 안의 스토리 전개는 결말을 앞두고 기상천외한 절정에 다다르며 충격을 안겼다. 한때 촉망받는 극작가로 명성을 날렸던 리비가 양심 대신 선택한 연극의 엔딩과 그것을 거부하는 데클란의 포효가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했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리비의 작품이 극장에서 첫 공연을 올린 뒤, 곧바로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펼쳐진 연출은 환상적이었다. 아트원씨어터 2관의 객석에 불이 켜짐으로써 무대 위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전부가 리비의 작품을 보러 온 관객이 되어버렸고, 그 현장에 존재하는 데클란과 함께 영국에서 막이 오른 연극 <마우스피스>를 관람한 기분마저 들었다.



무대 왼쪽에는 리비가 극본을 집필할 때 사용하는 책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오른쪽에는 데클란의 방으로 동생 시안을 위한 침대가 설치된 것이 특징이었다. 뒷편 한가운데에는 높은 단을 두어 솔즈베리 언덕을 표현했으며, 나머지 위쪽 벽면은 리비의 극본에 담기는 활자들의 움직임을 만나보게 해줘 효과적인 쓰임새가 돋보였다. 데클란이 동생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스크린에 나열되는 글자들이 시안의 목소리를 대신한 점도 탁월했다.


"공연을 본다는 건, 관객들의 심장소리가 맞춰지는 것"이라는 리비의 말에 심장이 쿵쾅거렸고, 2020년에 정신병 약을 먹는 게 뭐가 어떠냐던 데클란의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대변하는 느낌이 들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하여 예상치 못한 명대사와 명연기의 향연이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던 연극 <마우스피스>였다. 



[CAST]

리비 : 김신록

데클란 : 장률


김신록 리비는 강단 있는 성격과 극작가로의 연륜이 눈에 확 들어왔고, 마음 한 켠에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캐릭터까지 놓치지 않으며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뛰어난 발성과 딕션이 만족감을 더하며 극도의 몰입감을 확인하도록 도왔다. 그중에서도 본인이 앓고 있는 감정의 혼란을 녹여낸, 찬물에 대한 묘사가 이뤄지던 장면은 압권이었다. 


여태껏 원치 않았던 예술가로의 길을 걸어가게 됐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자신의 의도대로 데클란을 이용했음에도, 끝까지 잘못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작가의 신념을 이어나가는 모습이 감명깊었다. 


장률 데클란은 불안장애를 지닌 아이의 모습을 절절하게 선보이며 감탄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안정감을 가져보지 못한 이가 맞닥뜨리게 된 구원과 배신의 서사가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어서 응원을 보내게 됐다. 덧붙여, 데클란의 결말 선언 역시도 임팩트가 남달랐다. 


리비로 인해 마주한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며 마음에 어둠이 쌓여나갔지만 그림을 통하여 예술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준 조력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므로, 그로 인해 타오르는 작은 불씨가 데클란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쉬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꼈다. 리비가 혼자 써내려가던 극에 데클란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이러한 내용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덕분에 작품의 결말은 관객의 몫으로 남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감정의 폭발과 변화의 결이 비슷했던 두 배우의 에너지가 흡족한 공연을 관람하게 해주어서 벅차 올랐던 만큼, 커튼콜 내내 진심을 다해서 기립 박수를 보냈다. 


특히, 최근에 한국 문학계를 덮친 논란이 오버랩돼서 더욱 공감하며 바라보게 됐음을 밝힌다. 예술을 위한 창작의 자유를 내세워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폭로하는 일이 자행해서는 안 되거늘, 이러한 상황이 벌어져서 슬프다. 


그런 의미에서 10대 소년의 삶을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멋대로 창작해 나가는 과정에서 40대 중년 극작가가 벌인 참혹한 비극과 같은 일을 부디, 연극이 아닌 현실에서 만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는 와중에, 연극 <마우스피스>의 모든 걸 대변해주는 한 마디가 뇌리에 콕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모두 다 괜찮아지는 일은 없을 거라던 데클란의 외침과 함께.


"마지막 장면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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