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로빈 :: 우주로부터 전송된,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뮤지컬 <로빈>은 우주로부터 전송된,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게 해준 따뜻한 공연이었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도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부녀 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화해로 나아가며 감동을 선사하는 이야기가 놀라운 여운을 남겼다. 


이로 인해 막이 오르자마자 무대 위에 펼쳐진 우주 행성 위의 벙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에피소드가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간이었음을 밝힌다. 



천재 과학자 로빈은 방사선 피폭을 피하고자 가족들과 우주로 떠나와 생활하고 있다. 낭만을 꿈꾸는 딸 루나, 그들을 보필하는 임무를 맡은 구형 로봇 레온과 함께. 


행성 위에 자리잡은 벙커 안에서 셋의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10년만에 드디어 애타게 기다려 온 지구로부터의 귀환 신호를 받게 되지만 로빈은 일주일 후에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하고야 만다. 



하지만 절망도 잠시, 로빈은 사랑하는 딸 루나를 위하여 우주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을 준비하며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CAST]

로빈 : 김종구

루나 : 임찬민

레온 : 최석진


삼성역에 위치한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만날 수 있었던 뮤지컬 <로빈>은 환한 빛으로 가득한, 그야말로 눈부신 공연의 결정체였다. 무대 위에 설치된 우주 벙커의 내부는 장면과 잘 어울리는 조명의 활용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 전개와 넘버의 어우러짐 역시도 뭉클함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종구 로빈, 찬민 루나, 석진 레온, 세 배우 모두 본인이 맡은 캐릭터에 충실함으로 인하여 탄탄하고도 밀도 높은 열연으로 채워진 3인극을 마주하게 돼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종구 로빈은 딸을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 특유의 초조한 모습이 두드러져 인상적이었다. 이와 함께 눈에서 떨어져 내린 눈물이 바닥으로 방울방울 쏟아져 내리던 찰나마저 포착돼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우주복을 착용한 로빈이 고깔모자를 머리에 쓰던 순간도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고, '웃으며 안녕'을 부를 때 입가에 지어진 미소와 달리 눈가에 맺힌 눈물을 어쩌지 못하는 장면도 울컥함을 자아냈다. 


오랜만에 봐도 예전과 다름없이 시원한 가창력을 뽐내던 종구 로빈은 과학자로의 다재다능함을 뛰어넘어 아버지로의 책임을 다하고자 고군분투하며 나를 포함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찬민 루나는 열여섯이라는 나이에 따라오는 10대 청소년 특유의 방황으로 다져진 면모를 연기를 통해 실감나게 선보이며 관심을 집중시켰다. 넘버 소화력까지 탁월해서 눈과 귀가 즐거웠으며, 로빈이 결심한 눈부신 일과 맞닿은 루나의 소설 "섬에 갇힌 아이 솔라"도 감명깊었음은 물론이다. 


덧붙여, 종구 로빈이 왼손잡이라서 찬민 루나 역시 왼손으로 연필을 쥐고 글을 써내려가는 디테일이 놀라움을 경험하게 했다. 뮤지컬 <해적>의 찬민 루이스가 오른손잡이였던 걸 본 적이 있는 관계로 공연 속 배우만의 섬세한 설정이 감탄을 불러 일으켜 무릎을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사춘기로 불리는 나이대에 접어들기까지, 오직 소설만이 유일한 친구인 채로 10대가 되어버린 찬민 루나의 이유 있는 반항은 때때로 귀여움을 맞닥뜨리게 해줘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석진 레온은 로봇이지만 사람의 감정을 루나와 로빈보다 더 명확히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기에, 고립된 환경 속에서 팽팽하게 의견 충돌을 보이는 부녀 사이를 중재하며 벙커 생활이 평화롭게 유지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로빈의 마음을 루나에게, 루나의 마음을 로빈에게, 고립된 환경 속에서 미처 꺼내놓지 못한 부녀의 진심이 서로를 향하도록 만들어준 일등공신이었다.


로빈이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이자 조력자인 동시에 외로워하는 루나를 보듬어주는, 아버지와는 또다른 보호자로 자리한 구형 로봇의 따스함이 석진 레온으로 인해 더 빛났다. 어색함 없는 로봇 연기가 참 좋았다. 



로빈과 루나의 부녀 케미 못지 않게 로빈과 레온, 루나와 레온의 케미 또한 인간과 로봇을 초월해서 더아름다웠다. 끊임없이 투닥거리다가도 결국에는 아빠를 찾던 루나와 그런 딸을 꼬옥 안아주던 로빈의 모습은 특히나 눈물샘을 자극했다. 종구 로빈에게 안긴 찬민 루나의 귀여움은 최고였고, '초콜릿케이크'는 유쾌한 멜로디로 이루어진 넘버의 매력과 더불어 보여지는 장면까지 앙증 맞았으며, 우주의 유일한 낭만은 연필이라는 대사도 마음에 깊이 남았다.   


기억과 망각에 대한 내용도 의미심장했다. 인간을 이루고 있는 기억과 인간의 장점이 망각임을 얘기하는 부분이었는데 생각나는 건 이 정도 뿐이지만 흥미로웠다.  


쉽게 예상할 수 없었던 반전의 연속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내려야 했던 결정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다. 그런 이유로, 집에서 창 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던 루나와 로빈의 대화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오래 전에 알아차린 진실을 재확인하게 해준 둘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눈부셨다. 


뮤지컬 <셜록홈즈 : 사라진 아이들> 이후 3개월만에 찾은 공연장에서 뮤지컬을 관람하게 돼 감회가 새로웠던 뮤지컬 <로빈>이었다. 예정대로였다면 3월 말에 봤어야 하는 거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한 공연 연기로 두 달이 지나서야 겨우 조우할 수 있어 반갑고도 다행스러웠다. 좌석 간 거리두기가 적용됨에 따라 한 칸씩 띄어 앉아 봤는데, 덕분에 오히려 더 쾌적하게 관람이 가능해 만족스러웠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봐야 돼서 눈물 콧물이 쏟아지는 얼굴을 주체하지 못해 조금 힘들었지만, 기대 이상의 공연을 보여준 배우들을 위해 기립 박수를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메시지가 만나보게 해준 빛에 대한 이야기는 가족 간의 사랑을 마주하게 해주며 온기를 전했다. SF 휴머니즘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공연답게 공상 과학적 소재에 인간적인 스토리를 버무려 공감대를 형성하게 해준 좋은 공연이었다. 


다음 관극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날을 기대하며 뮤지컬 <로빈>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마친다. 공연 리뷰도 굉장히 오래간만에 써보는 거라 두근두근, 설렜던 한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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