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틀잭 :: 여름날의 소나기 같았던 첫사랑 이야기
뮤지컬 <리틀잭>은 클럽 마틴에서 펼쳐지는 라이브 콘서트를 통해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여름날의 소나기 같았던 잭 피셔의 첫사랑을.
한국소설 '소나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라서 예정된 결말을 향해 나아가긴 했지만, 공통점보단 차이점이 확연히 존재하는 공연이라 흥미를 갖고 지켜보게 됐다.
1967년 영국 사우스 웨스트의 밤을 수놓은 리틀잭 밴드의 음악은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보컬을 맡은 잭을 중심으로 4인조 라이브 밴드가 환상적인 연주와 더불어 깨알 같은 연기를 선사해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잭 피셔의 과거를 통해 만나보게 된 줄리 해리슨과의 추억은 첫사랑의 아련함을 떠올리게 하며 감상에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첫사랑이기에 가능했던 순간들의 소중함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주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토리 자체의 진부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현재가 아닌 오랜 과거의 일들이라는 점을 참작하고 보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작품의 배경이 1960년대라는 점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대신에 뻔한 내용을 환기시켜주는 음악에 포인트를 두면 상황이 달라지니 이 점을 기억하고 공연을 관람하면 좋다. 뮤지컬 <리틀잭>은 넘버에 강점을 지닌 공연이기 때문에.
[CAST]
잭 피셔 : 황민수
줄리 해리슨 : 이혜수
존 : 김정우 (키보드)
빌리 : 루브 (기타)
닉 : 배상운 (베이스)
벤 : 박종원 (박종원)
내가 뮤지컬 <리틀잭>을 보러 갔던 날의 잭 피셔는 황민수, 줄리 해리슨은 이혜수 배우였다. 공교롭게도 두 배우 모두 첫공을 올리는 날이라 궁금증을 가득 품고 찾아갔던 것이 사실인데, 결론적으로 기대 이상의 만족스러움을 경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
특히 이 공연을 통해 처음 만난 황민수 배우는 미성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삼연을 통해 새롭게 합류한 만큼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캐릭터의 개성이 돋보여 좋았다. 마이크 줄과 기타 줄이 길어서 동선이 살짝 꼬일 때가 있긴 했으나 순발력을 발휘해 무사히 넘어가는 모습을 보니 다행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공연장 내부가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아서 실시간으로 녹아 들어가는 민수 잭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 또한 가능했다. 땀 못지 않게 눈물도 많은 잭 피셔였는데, 이로 인해 첫사랑을 향한 절절한 감성이 전해져 와서 나 또한 울컥했다. 그리고 결국엔 같이 울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My Girl"에서의 감정 표현과 가창력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약간의 변주를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넘버를 소화하는 순간도 인상깊었다. 간주 중에 눈을 감고 줄리를 그리는 듯한 장면도.
아, 근데 휘파람은 연습을 좀 해야겠다 싶었다. 모든 잭이 다 휘파람을 잘 부는 건 아니라서 나름 선방한 편이었지만 그래도ㅋㅋ
혜수 줄리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른 목소리의 변화가 귀에 착 감겼다. 고우면서도 곧게 뻗어나가는 소리의 울림도 훌륭했다. 고음은 듣기에 무리가 없었고, 저음도 나쁘지 않았는데 대체적으로 노랫 소리가 좀 작게 들려서 이 점은 보완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달리, 피아노 앞에 앉아 잭의 모자를 품에 안은 채로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장면은 마음을 아리게 했다.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너에게로 가는 길"이었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에선 조연으로 잠깐 등장하는 걸 보는 게 전부였어서 뮤지컬 <리틀잭>의 캐스팅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고, 내용상 비중은 적은 편이었지만 여주인공의 역할을 멋지게 해냈기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작품에서 자주 만나게 되기를 바랐다.
앞서 언급한 것에 합쳐서 결론을 얘기해 보자면 일단, 민수 잭과 혜수 줄리의 합이 잘 맞아서 흡족했다는 점을 밝힌다. 첫만남 이후에 사랑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서 투닥거리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를 자아냈다. 막내 페어다운 싱그러운 활기가 그리하여 잭과 줄리의 처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느낌이었다.
본공연이 끝나고 이어지던 커튼콜 또한 압권이었다. 민수 잭이 혜수 줄리를 세컨 피아노라고 소개하자 칠 줄 아는 곡이 있다며 피아노를 연주하던 때도 귀여웠다. 분명 아는 곡인데 제목은 기억이 안 나니 패스.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줄리를 보며 따라하던 잭도 앙증 맞았다. 막춤인 것 같은데 흥에 겨워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것 같아 신기했다.
한창 커튼콜이 진행 중일 때 관객들의 더 큰 호응을 원한 민수 잭이 지금 이 상황에 만족하냐고 물었을 때 혜수 줄리가 정말 좋다고 대답하자 갑자기 할 말을 잃어버린 허망한 표정도 웃음을 자아냈다. 반면, 객석에 손키스를 날리는 잭에게 삐져서 퇴장하던 줄리는 명불허전이었다는 점. 그걸 보고 곧바로 줄리에게 다가가던 잭의 모습도 인정. 은근하게 죽이 척척 잘 맞는 둘이었다.
순수함으로 가득했던 두 사람이 함께 불렀던 "Simple"과 "You"에서의 호흡도 귀를 쫑긋 세우게 도왔고, 라이브 밴드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한 마디로, 엄지 척!
극의 내용보다는 넘버와 밴드의 라이브 연주에 집중할수록 깊이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뮤지컬 <리틀잭>이었다. 이날 공연을 보면서 연인들을 잃더라도 사랑은 잃지 않으리라,는 딜런 토마스의 시 구절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덧붙여 다른 건 몰라도, 무더운 여름을 잊게 해줄 시원한 소나기와 같은 공연이라는 점 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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