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 사랑의 힘으로 탄생된 위대한 발명품을 만나다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는 1808년, 이탈리아 발명가 펠레그리노 투리가 여자친구를 위해 만든 타자기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공연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글을 쓸 수 있게 해주고팠던,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 완성시킨 위대한 발명품을 만나보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펼쳐져 이로 인한 감동의 여운이 인상깊게 남았다.
이탈리아의 작은 바닷가 마을인 마나롤라를 배경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이야기는 캐롤, 투리, 도미니코, 세 사람의 사랑과 우정이 깊어짐에 따라 잔잔하게 빛을 뿜어내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나롤라에서 기이한 발명품을 만들며 살아가던 투리에게 작가 지망생 캐롤리나와 유명작가 도미니코의 등장은 규칙적으로 유지됐던 생활에 파문을 일으키며 예상치 못한 변화를 선사했고, 이로 인하여 본격적으로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의 서막이 열렸다.
일단 공연을 관람하기에 앞서 객석에 앉자마자 눈에 들어온 아기자기한 무대가 예뻤고, 3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 또한 매력적이었다. 덥케 스타일을 벗어난 의외의 힐링극 분위기가 처음엔 좀 낯설었지만, 공연 제작사 특유의 스타일에 환기를 경험하게 해줘서 괜찮았다. 오히려 좋았다고나 할까?
다만, 서사가 빈약한 편이라서 이 부분을 배우들의 열연으로 채워나가야 했던 점은 아쉽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 아니었다면 뻔하디 뻔했을 로맨스물에 그치고 말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익숙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새롭게 마주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장치가 존재하길 바랐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스토리 전개의 허술함을 잊게 만들어줄 넘버 역시 만나지 못했기에 임팩트마저 부족하게 느껴졌다. 공연을 볼 때는 작품과 조화로운 음악이라고 확신했건만, 머리 속에 남을 만큼은 아니었나 보다. 해맑음이 돋보이는 따뜻한 극이긴 했지만, 별다른 사건이나 갈등이 눈에 띄지 않아 심심했다.
[CAST]
투리 : 강필석
캐롤리나 : 이정화
도미니코 : 정상윤
그 와중에 배우들의 활약은 도드라졌다. 이러한 이유로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 역시도 배우들이 이끌어가는 공연임이 분명해 보였다.
필석 투리는 지금껏 발명에만 모든 신경을 쏟아부은 채로 살아온 만큼, 외골수적인 성향을 뚜렷하게 선보이는 캐릭터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은근히 눈에 띄던 귀여운 면과 위기에 직면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따스함이 인상적이었고, 필석 투리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주는 넘버에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됐다. 캐롤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된 이후로 달라지던 눈빛은 특히나 압권이었다.
상윤 도미닉은 작가로 성공했으나 여전히 글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캐롤과 함께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내려가면서 마음을 드러내던 장면도 도미닉다웠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1800년대를 재현한 의상이 색다르게 다가왔는데, 셋 중에서 도미니코가 입은 옷과 부츠가 가장 강렬했다.
여기에 필석 투리와 상윤 도미닉의 브로맨스 케미가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의 묘미를 더해주었음을 밝힌다. 캐롤 모르게 투닥거리며 질투하던 것도 잠시, 캐롤의 행복을 위하여 아이디어를 짜내며 의기투합하는 투샷이 예쁘고 기특해서 미소가 지어졌다. 참고로 두 사람이 힘을 모으기 전, 도미닉이 도와달라며 투리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자마자 벌어진 상황은 정말 웃겼다. 투리가 기겁하면서 손을 확 빼내는 찰나에서 정말 싫어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이 공연의 일등 공신은 정화 캐롤이었다. 꾀꼬리를 연상시키는 고운 목소리에 묻어나던 캐릭터의 감정이 보는 내내 캐롤의 희로애락을 맞닥뜨리게 해줘 시선을 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자 서슴없이 발길질을 하며 카리스마를 발휘하던 장면을 시작으로, 눈이 멀어감에 따라 어둠과 빛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애처로음을 자아내 안타까웠다.
밝고 씩씩한 데다가 소설에 대한 재능도 없지 않았기에 조금씩 절망에 빠져드는 캐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 그중에서도 소나기를 주제로 쓴 캐롤의 이야기가 감명깊었는데 본인의 삶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절절함이 더해져 슬펐다.
완성된 발명품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 투리와 캐롤의 한때는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의 결말에 다다라 마주할 수 있었던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스토리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해소시켜주는 부분이기도 해서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랑의 힘으로 탄생된 위대한 발명품에 감춰져 있던 이야기를 공연을 통하여 만나게 돼 즐거웠다. 세 배우들의 합이 완벽했던 극이라는 점과 실화의 힘을 입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꽤 오래 머리 속에 남을 뮤지컬이 아닐까 싶다.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관계로 자극없이 볼 수 있어 나름의 의미를 지녔던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심해서 의외였지만 그래서 마음 편히 공연을 보는 것이 가능했기에 공연장을 나와서도 먹먹함이 꽤 오래 갔음을 인정한다. 공연 실황 생중계로 한 번 더 만나고 났더니 딱 적당하더라.
'문화인의 하루 > 공연의 모든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뮤지컬] 그리스 :: 귀를 파고드는 음악과 화려한 무대가 매력적이었던 청춘물 (0) | 2019.08.11 |
|---|---|
| [뮤지컬] 난설 :: 붓으로 써내려간 초희의 삶과 시 (0) | 2019.08.03 |
| [뮤지컬] 리틀잭 :: 여름날의 소나기 같았던 첫사랑 이야기 (0) | 2019.07.27 |
| 시조와 힙합의 음악적 어우러짐이 돋보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0) | 2019.07.26 |
| [뮤지컬] 테레즈 라캥 :: 음울한 집에 스며든 욕망과 파멸의 공기 (0) | 2019.07.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