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와 힙합의 음악적 어우러짐이 돋보인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시조와 힙합의 음악적 어우러짐이 매우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그리하여, 시조를 국가 이념으로 하는 가상의 조선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만날 수 있었던 흥겨운 멜로디와 역동적인 움직임이 작품에 스며들어 신명나는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했다.
백성들에게 시조란 삶의 힘겨움을 견디게 해줬던 버팀목과 다름 없었는데, 역모 사건으로 인하여 나라 전체에 시조 활동이 금지되자 자유를 억압당한 이들에게 남은 건 절망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조선시조자랑이 15년 만에 열린다는 소식이 퍼지고, 비밀시조단 골빈당은 이를 계기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실질적으로 조선을 지배하고 있던 시조대판서 홍국 앞에서 골빈당이 펼쳐낸 시조 가락은 백성들 뿐만 아니라 왕의 눈을 뜨게 만드는 계기가 됨으로써 희망의 빛을 선물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과정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보여지는 인물들의 관계와 서사 역시도 흥미로웠다.
가장 좋았던 건, 시조의 운율 안에 극의 메시지를 멋지게 담아낸 넘버의 매력이었다. 속도감 있는 랩을 연상시키는 읊조림이 불러 일으킨 힙합 스웩과 더불어 국악기의 절절한 감성이 귀를 사로잡는 곡을 포함하여 다채로운 음악의 향연이 경험하게 해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조화로움이 인상깊었다. 특히, '이것이 양반놀음'의 중독성이 어마어마했던 관계로 "오에오!"가 입에 착 감겼다. 음악에 곁들여지는 안무 또한 환상적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조석 수액은 정말 최고였다. 덧붙여,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색다르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도 포인트.
앞서 언급한 대로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풍성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스토리는 꽤나 허술했고, 패러디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부분이 없지 않아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중에서도 절정으로 치달아 고조됐던 갈등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해결되는 점, 과도한 패러디에 겹쳐진 유머코드 또한 아쉬움을 남겼다. 만화 원피스의 캐릭터 중 하나인 롤로노아 조로가 룰루랄라 조노로 등장하는 걸 보고 제작진의 사심이 담긴 캐릭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애매했는데, 여기에 희화화 개그까지 더해지니 좀 충격적이었다. 그러니 이 부분은 좀 더 고민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싶다.
조선시조자랑이 열리기에 앞서 전국노래자랑의 분위기를 뿜어내는 BGM과 함께 등장한 엄씨가 손에 든 마이크는 조롱박으로 만들어져 시선을 집중시켰고, 각기 다른 개성으로 가득한 시조가 무대 위에서 울려퍼지던 장면은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임금 옆에 선 홍국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불호 팻말을 들어올리는 순간도 웃겼다.
형형색색의 조명은 유치찬란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 공연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내 준다는 점에서 은근히 잘 어울렸다. 소품 중에선 부채의 활용이 눈에 쏙 들어왔다. 배우들이 사용하는 부채 외에 조명에서도 부채 모양을 만나게 돼 이 점은 감탄스러웠다.
[CAST]
단 : 양희준
진 : 김수하
홍국 : 최민철
십주 : 이경수
호로쇠 : 장재웅
기선 : 정선기
순수 : 정아영
임금 : 주민우
조노 : 이동수
엄씨 : 김승용
앙상블 : 김재형 노현창 황자영
문장미 김혜미 임상희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시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단, 정체를 감춘 채로 정의를 위해 발걸음을 내딛으며 운명을 극복하려 애쓰던 진, 십주를 중심으로 비밀시조단의 임무를 실행해 나가던 호로쇠, 기선, 순수 삼인방의 활약이 특히나 돋보였다. 악의 세력으로 자리잡은 홍국의 카리스마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앙상블 배우들을 포함해 출연진 모두가 누구 하나 구멍 없이 완벽한 호흡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점이 볼만 했다.
배우들은 전부 다 잘해서 칭찬 외에는 딱히 해줄 말이 없다. 다들 몸도 잘 쓰고 노래도 잘 불러서 기립 박수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희준단과 수하진은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으로 처음 만났는데 간만에 눈에 띄는 신예 배우들을 맞닥뜨리게 돼 즐거웠다.
양희준 배우는 트렌디한 시조꾼으로 단이라면 분명 세상을 뒤집을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장발이 잘 어울리는 데다가 연기, 노래, 몸놀림 전부 다 최고였는데 솔로 넘버에서 자신의 심정을 속사포처럼 끊임없이 쏟아낼 때 들려오는 가사들이 귀에 콕콕 박히는 게 감명깊었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마저 홍단 그 자체였다.
평범치 않은 신분으로 태어났기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아픔도 내 길이므로 운명을 바꾸겠다며 '나의 길'을 통해 진의 확고한 신념을 표출하던 장면이 압권이었다. 그렇게 주체적인 캐릭터의 대명사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김수하 배우의 진도 대단했다.
이경수 배우의 십주는 골빈당의 리더로 따뜻하게 멤버들을 감싸며 목표를 향해 걸어나가는 모습이 멋졌다. 안무 실력은 꿀렁거림이 대부분인 허당에 가까웠지만 연기와 노래로 좌중을 휘어잡았으니 그거면 됐다. 떼창에서 뚫고 나오는 가창력만으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다고 본다.
최민철 배우의 홍국은 악역으로 무게감을 잘 잡아줘서 극 속의 위기감이 극대화되었다. 진과 홍국이 같이 열창하는 듀엣곡도 귀에 남았고, 커튼콜에서 하이킥을 날리는 장면은 극중 캐릭터를 잠시 잊게 도와 재미를 선사했다.
골빈당 삼인방도 굿, 룰루랄라 조노의 캐릭터는 수정이 좀 됐으면 싶지만 이동수 배우의 열연은 마음에 쏙 들었기에 머리 속에 저장! 김혜미 배우도 풍월주 이후에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반가웠다.
사실상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은 관객과 배우가 하나되어 즐기자는 취지에서 만든 극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의외로 뼈에 사무치는 메시지가 담겨 여운이 남았다. 백성이 두렵다는 홍국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와닿았는데, 두렵다고 해서 피할 것이 아니라 귀를 기울이며 나라를 위한 길을 가는 것이 임금과 임금을 따르는 신하들의 역할임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씨가 조선시조자랑의 시작을 알리며 "숙녀 신사 여러분!"을 외치던 찰나도 인상적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만 익숙하게 들어왔기에 나름대로 파격적인 대사였다고 볼 수도 있겠다. 관객들의 환호에 신나서 춤을 추던 김승용 배우의 엄씨도 잘하더라. 진행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창작 뮤지컬 초연이라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감정을 갖고 볼까 말까 하던 찰나에 위메프 할인이 떴고, 그래도 갈까 말까 고민하다 보니 원하는 날 티켓이 딱 1장만 남게 돼 결국은 결제하고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로 향했던 어느 날이었다.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지연할 뻔 했지만 무사히 캐스팅 보드 촬영까지 완료하고 자리에 앉을 수 있어 다행이었던 하루이기도 했고.
자리는 연강홀 2층 3열 중앙 블럭을 받았는데 전체적으로 잘 보여서 흡족했다. 배우들이 무대에 있다가 객석으로 난입해 함께 하며 부채를 나눠주는 장면만은 생생하게 지켜볼 수 없었지만 그걸 제외한다면 괜찮은 좌석에서 저렴하게 관람하기에 딱이었다.
한복을 재구성한 의상도 취향이었던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이었다. 우리 고유의 전통과 특성을 멋스럽게 살린 작품이었던 만큼, 잘 다듬어져서 재연도 만나보길 희망한다.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초연이었는데, 쇼케이스 공연은 또 달랐다고 해서 궁금하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스웩 넘치는 가상의 조선을 만나보고 싶다면,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이 공연 중인 두산아트센트 연강홀로 발걸음을 옮기기를 바란다. 공연 관람으로 그치지 않고 넘버부르기에 동참하고 싶다면, 싱어롱 데이 관람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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