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무극] 나빌레라 :: 발레와 함께 날아오른 덕출의 꿈을 만나게 해준 웹툰 원작 뮤지컬
뮤지컬 <나빌레라>는 웹툰을 원작으로 재탄생된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이다. 올해 무대 위에서 첫선을 보이게 된 신작이며, 일흔의 나이로 발레의 꿈에 도전한 할아버지 심덕출과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방황하는 스물 셋 청년 이채록의 이야기를 다뤘다.
다음에서 연재된 원작 웹툰은 이미 완결이 난 상태였고, 관람 전에 무료 회차만 읽고 갔는데 공연에서 마주하지 못한 숨겨진 이야기를 보다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뿐만 아니라 가장 큰 반전이라고 여겨지는 에피소드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에 차이가 존재함으로써 색다른 분위기를 경험하게 돼 흥미로웠다.
회전무대를 활용해 덕출의 집, 채록의 방, 발레학원, 공원, 동네 거리 등을 보여주는 점은 발레의 회전 동작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인상적이었으나 외관이 전부 다 색채 없는 회색 건물의 형상을 갖춤에 따라 단조로움이 느껴지는 부분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와 함께 발레가 중심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발레의 묘미를 확실하게 일깨워주는 장면이 거의 없고, 설사 있다 해도 대부분 돋보이지 않아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로 인하여 객원으로 참여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더 시선이 갔다.
서울예술단이 자랑하던 창작가무극의 절도 넘치는 군무는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췄고, 새로운 레퍼토리 발굴에 힘쓰고 있긴 하나 요즘은 서울예술단 단원이 아닌 객원 배우들의 캐스팅과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들을 위주로 흥행에만 힘을 기울이는 듯 해서 슬펐다.
좋은 창작물을 보다 많은 관객들에게 알리는 일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예술단만의 색깔을 잃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CAST]
덕출 : 최정수
채록 : 이찬동
이날 공연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주인공은 70대 노인 심덕출 역의 최정수 배우였다. 서울예술단 단원의 저력과 존재감을 뽐낸 인물이라서 보는 내내 안심이 됐다. 이제 막 발레를 배우기 시작해 어설픈 모습을 선보이는 와중에도 고운 춤선과 몸의 움직임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해줘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수 덕출의 연기와 노래도 최고였다.
여기에 "난 그냥 늙었다는 것, 겨우 그거 하나 뿐"이라는 덕출의 이야기가 음악으로 울려퍼질 때의 감동이 마음을 울렸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채록을 향해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취미라면서, 아깝고 성질나고 분하고 화가 나는 건 꿈이라서 그런 거라던 진심 어린 조언도 심장을 쿵하고 내려앉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끝없는 고민 속에 살아가는 건가 싶었고, 발레의 꿈을 향하여 힘차게 비상하는 덕출을 보며 새삼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채록 역의 이찬동 배우는 처음 봤지만 보컬 그룹 브로맨스 멤버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드라마 슈츠 OST를 좋아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데, 그 브로맨스의 멤버 중 한 명이라라고 해서 신기함이 앞섰다.
찬동 채록은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예쁘고 고왔다. 대사를 칠 때나 노래를 부를 때의 음색이 매력적이라서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점도 괜찮았다. 다만, 넘버를 소화할 때 음을 이끌어나가는 과정에서 들려오던 소리의 떨림이 불안정해서 보완이 필요해 보였음을 밝힌다. 안정된 비브라토를 완성한다면 본인의 장점인 음색과 잘 어울리는 넘버 소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의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음 지를 때도 조금 더 확 질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작고 소중했던 찬동 채록은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20대 치기어린 청년 특유의 개성이 전해져 와서 이 또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발레에 재능이 있는 청년이라기엔 부족함이 많이 표출돼서 고개를 갸우뚱해야 될 때가 없지 않았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발레 연습은 좀 더 하는 걸로!
덕출 아내 역으로 열연한 정유희 배우도 눈에 쏙 들어왔고, 덕출의 딸 심성숙 역 이혜수 배우의 엉뚱발랄한 발레 동작과 더불어 시원한 성격도 감명깊었다. 덕출의 작은 아들 심성관 역 신상언 배우는 캐릭터를 위하여 수염을 길러 예전 작품들과 전혀 다른 비주얼을 선사했는데, 캐릭터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마주하게 해줘서 감탄했다. 연기도 그렇고, 노래도 일취월장한 실력을 확인하게 해줘서 흡족했다.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문경국 발레단장으로 활약한 금승훈 배우가 웹툰 캐릭터와 가장 일치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발레단 단원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그들을 향한 애정이 고루 느껴져 멋졌다.
넘버 중에선 '매일이 새롭다'와 성관과 덕출이 같이 부르던 듀엣곡이 귀를 집중시켰다. 가족들이 모두 반대할 때 작은 아들 만큼은 덕출의 편이 되어서,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장면이 극대화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불씬은 귀여웠고.
창작 초연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맞닥뜨리게 해준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나빌레라>였다. 창작가무극이라는 말보다 뮤지컬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공연이기도 했으니까.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이해 만나보는 것이 가능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호평이 상당한 만큼 재연도 올라올 것 같긴 한데, 그때의 공연은 분명 지금과 같으면 안될 거다. 뮤지컬 <나빌레라>의 작곡가가 뮤지컬 호프 넘버를 책임졌던 김효은 작곡가라는 점도 머리 속에 저장해 둔다.
튀튀를 입은 소녀가 덕출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는 데다가 커튼콜에서도 의미를 부여해서 이 점도 좋았다. 원작 웹툰엔 없는 장면이라고 들었고, 그로 인해 연출적으로 공을 많이 들였음을 깨닫게 돼 마음에 쏙 들었다.
덧붙여,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수 덕출 최고! 진짜 최고였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린이로 불릴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어른이날이라 명명하며 셀프 선물로 뮤지컬 <나빌레라> 공연을 관람하러 다녀 온 하루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꿈의 끝에 아무것도 없더라도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누구나 삶을 시작함으로써 결국에는 죽음에 다다르게 되므로, 청춘을 넘어서 노년의 시간을 상상해 보는 일 또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노인의 삶을 담아낸 공연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길 수 있어 뜻깊었다.
앞으로는, 발레와 함께 날아오른 덕출의 꿈이 선물해 준 인생의 메시지와 늙어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교훈 삼아 살아가 보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훨씬 더 완성도 있는 뮤지컬 <나빌레라> 재연도 볼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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