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해적 :: 루이스와 함께, 해적을 따라 바다로 모험을 떠나다
뮤지컬 <해적>은 바다로 떠난 해적들과 소년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만날 수 있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극에 등장하는 잭, 앤, 메리의 경우엔 실존인물을 중심으로 재탄생된 캐릭터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동해 공연 관람을 마치고 검색을 해보는 재미까지 쏠쏠했다.
해적이었던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항구마을에서 홀로 살아가던 루이스에게 캡틴 잭이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보물섬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명사수 앤과 검투사 메리가 합류함으로써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이 계속돼 눈을 뗄 수 없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던 모험의 세계는 아름다운 만큼 위험했고, 감추어져 있던 비밀이 보물처럼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의 감동은 찬란하게 빛났다. 불가사리 신작답게 혼란스러움이 느껴질 때가 없지 않았으나 기존에 봐왔던 다른 작품들에 비하여 이해하며 받아들이기가 조금 쉬웠기에 그것만은 다행스러웠다.
2인극이지만 2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그보다 많았다. 비중적으로만 따지자면 루이스와 잭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이 사실이나 앤과 메리의 존재감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뮤지컬 <해적>이 젠더프리 캐스팅을 선포한 바, 남남/여여/남녀의 다양한 조합으로 만나보는 것이 가능한 점 역시도 재밌게 느껴졌다.
다만, 앤과 메리의 서사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절정을 향해 달려가던 스토리 전개는 아쉬움을 남겼다. 임팩트는 강렬했으나 오로지 그것만이 전부인 양,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갇혀버린 둘의 사연이 갈증을 불러 일으켰다. 메리와 앤의 관계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굳이 사랑이 아니었더라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진한 우정으로 다져진 해적들의 끈끈한 의리만으로도 긴장감은 차고 넘쳤을 것이기 때문에.
공연의 줄기를 이루는 잭과 루이스의 이야기 안에 앤과 메리 외에도 하워드, 케일럽의 에피소드까지 만나봄으로써 해적들의 색다른 삶을 마주하게 돼 좋았다. 이와 함께, 스토리적으로 부족하다 여겨지는 부분을 넘버가 채워주는 것 역시도 훌륭했다.
하지만, 배우들이 의상을 바꿔 입어야 할 때가 다가와 맞닥뜨렸던 뮤지컬 <해적>의 자체 인터미션은 생각했던 것보다 당황스러웠다. 이 순간에 흘러나오는 넘버 제목 또한 '인터미션'이었는데, 스크린 속 영상과 함께 앵무새 빅토리아의 목소리로 들려오는 노래마저 좀 유치했고, 뭐 그랬다. 씬 스틸러로 활약하는 캐릭터로 빅토리아를 꼽지 않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인터미션이 이런 식으로 보여질 줄은 몰랐어서 뜬금없게 느껴졌다. 그래도, 좁은 좌석 사이에서 지친 몸을 위해 기지개를 켤 시간이 주어진 건 고마웠고, 그 와중에 '인터미션' 율동을 하는 관객들의 뒷모습은 귀여웠다.
그리고 '인터미션' 전에 부르는 넘버 '가만 안 둬'의 가사도 귀를 의심하게 했다. "이 노래를 부르기 전에......", "감사", "매우 감사"등의 문장과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메리와 앤이 대립하는 장면으로 분위기는 매우 진지하고도 비장한데 가사는 웃겨 가지고......아직 불가사리 극에 적응하려면 멀었구나 싶었다.
프리뷰 티켓 예매에 실패하고 조금 나중에 보려다가 인터파크에서 퍼플라벨 이벤트로 타임세일이 진행돼서 생각보다 일찍 관람하게 됐는데, 무대를 바라보는 내내 호와 불호를 계속해서 오고 가는 작품이었어서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불가능했던 뮤지컬 <해적>이었다.
그래도 마음을 잡아끄는 부분이 적지 않았어서 몇 번은 더 볼 예정이다. 이미 잡아둔 표가 있으므로, 재관람하면서 심경의 변화가 생기게 될지, 이 점은 좀 지켜봐야겠다.
[CAST]
루이스/앤 : 김순택
잭/메리 : 랑연
내가 뮤지컬 <해적>으로 처음 만난 주인공들은 바로 배우 김순택, 랑연 페어였다. 본페어는 아니고 혼성 크로스페어로 자첫을 하게 됐는데, 이로 인해 성별의 경계가 무너짐에 따라 확인할 수 있었던 공연의 재미가 기대 이상이라 매우 흡족했다.
젠더프리 캐스팅에 더해 혼성 크로스 페어까지 접할 수 있는 공연은 처음이었기에 이로 인한 수확이 엄청났던 하루였다.
이날의 가장 큰 수확은 랑연 배우였다. 2인극으로 만나니 랑연 배우의 역량과 에너지가 압도적으로 뿜어져 나와 오감을 자극했다. 투철한 책임감으로 무장한 선장이긴 하나 어딘지 모르게 빈틈이 엿보이던 잭과 검투사로의 자신감과 당당함을 앞세운 검투사 메리의 카리스마가 시선을 집중시켰다.
특히, 헤어스타일의 변화로 캐릭터를 달리 선보이는 순간이 인상적이었다. 잭일 때는 아래로 묶은 포니테일, 메리일 때는 머리카락을 풀어내림과 동시에 돌변하는 눈빛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밧줄춤 장면에서 대사를 버벅였던 찰나를 제외한다면, 전체적으로 기대에 부응하는 잭과 메리를 보여줬기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커튼콜에서 기립한 관객들도 눈에 여럿 눈에 띄었는데, 그 모습에 울컥하던 모습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랑연 메리가 열창한 '우리 모두의 기억나지 않는 꿈'은 압권이었다. 이 노래가 끝나던 때에 들려오던 박수 소리 또한 잊지 못한다. 연기도 좋았지만 노래는 더 좋았던 랑잭, 랑메리였다.
김순택 배우의 루이스는 열일곱 소년 그 자체였고, 앤으로 분했을 때는 목소리의 가녀림을 잊게 하는 명사수의 기운이 표출됨으로써 강한 몰입감을 선사해 눈을 떼지 못했다. 자꾸 나에게 비밀을 말하지 말라며 수줍어하던 소년, 순택 루이스의 청량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인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진짜 귀여웠다.
그리고,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넘버는 '스텔라 마리스'였다. 순택 앤이 별올 쏘겠다 말하고, 별을 쏜다고 노래하면서 별을 향해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펼쳐지던 무대와 객석의 반짝이던 조명은 반짝이는 별의 물결을 눈으로 접하게 만들며 눈물을 쏟아내게 하는 명장면으로 자리잡았다.
순택 앤의 찰진 대사 전달력과 매끄러운 넘버 소화력의 이어짐이 가사와 조명의 완벽한 조화에 닿아 멋진 장면을 이루어냈음을 발견하게 돼 감탄하며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커튼콜에서 잊지 않고 빅토리아 2세의 인사까지 야무지게 해내던 순택 루이스의 찰나를 카메라로 잘 잡아내서 이 사진 역시도 마음에 쏙 든다.
택랑 페어의 뮤지컬 <해적>이 허술한 스토리와 갑작스러운 단어가 연속되는 가사에 개연성을 부여해줬던 공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 마냥 좋다고도, 싫다고도 할 수 없는 무대와의 한때였다는 것이 첫 관람의 간단한 감상평이자 결론이 되겠다.
덧붙여 무대도 무대지만, 의상도 좀......부실한 감이 없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 본다.
스페셜 커튼콜은 '가만 안 둬 rep'였고, 랑메리가 노래 부르면서 "앤, 이리 와." 라면서 앤을 찾았으나 그곳에는 앤 대신에 고개를 가로젓던 빅토리아 2세를 쓰다듬는 순택 루이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무대 조명에 카메라 맞추기가 힘들었어서 사진은 그나마 잘 나온 것으로 한 장만 남겨본다.
지금까지 알지 못한, 실재했던 여성 해적들이 무대 위에 생생하게 살아났고, 열일곱 소년과 아버지의 친구였던 해적 선장이 로즈 아일랜드로 로즈 사파이어를 찾기 위해 함께 했던 순간들이 간접적으로나마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어드벤처물이 색다르게 다가와 즐거웠다.
불가사리 극 답게 첫 관람에 모든 내용을 파악해 받아들이는 게 어려웠지만, 조금씩 곱씹으며 알아가고 있으니 두 번째 관람은 이날보다 훨씬 더 많은 걸 가지고 갈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루이스와 함께 해적을 따라 바다로 모험을 떠났던 시간들의 가치를 기억하며, 뮤지컬 <해적>과 또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려 본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루이스와 해적들의 삶을 접하기 위해 다시 해적선에 탑승할 준비 완료!
그때는 아마 빅토리아 2세와도, 조금 더 친해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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