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뮤지컬] 어린왕자 :: 생텍쥐베리의 명작을 무대 위에서 만나다

낭독뮤지컬 <어린왕자>는 생텍쥐베리의 명작을 무대 위에 옮겨 놓은 작품이다. 이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생텍쥐베리가 쓴 이야기가 아이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로 인하여 오래간만에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냥 뮤지컬이 아니라 낭독뮤지컬인 만큼 원작 소설의 문장들을 세 배우의 목소리로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여기에 공연만을 위한 상상력이 더해져 색다른 시간을 만나보게 돼 흥미로웠다.



예스24스테이지 1관 개관작으로 선정된 낭독뮤지컬 <어린왕자>는 잊고 있던 순수함에 대해 말하며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했다. 어릴 때 읽으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들이 이제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라 이 점도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원작이 워낙 훌륭해서 무대를 통해 구현된 어린왕자를 색다르게 마주할 수 있던 점은 나쁘지 않았으나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잔잔하게 흘러가서 때때로 지루함이 몰려왔음을 부정하기는 힘들겠다. 그런 의미에서 익숙한 이야기를 새로이 바라보도록 도우며 몰입시키는 일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해준 공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다다라 감동을 전해받을 수 있었으니, 관람하고 넘어가게 돼 다행이구나 싶었다. 뿐만 아니라 개관작으로도 딱 안성맞춤이었다. 



[CAST]

생텍쥐베리 : 정동화

어린왕자 : 박정원

코러스 : 김환희


정동화 배우의 딕션이 워낙 출중해서 생텍쥐베리의 낭독이 귀를 사로잡았던 낭독뮤지컬 <어린왕자>였다. 허영쟁이를 연기할 땐 춤으로 허세를 부렸고 주정뱅이를 만나서는 안주를 많이 먹은 것 같다며 눈살을 찌푸렸는데, 이러한 디테일이 재밌어서 웃음이 났다. 넘버 역시도 잘 어울려서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박정원 배우의 어린왕자는 어림을 연기하는 대신, 내면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어린왕자 캐릭터를 꺼내놓으며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게 이정표를 제시함으로써 방향을 잡아나감에 따라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래서 눈물을 보일 때 더 마음이 아려왔다. 


김환희 배우의 코러스는 멀티 캐릭터로 다재다능함을 선보여서 역시나 눈에 들어왔다. 노래할 때의 목소리가 맑아서 자꾸 듣고 싶어질 정도였다. 과거의 생텍쥐베리를 포함한 여러가지 배역 중에선 여우가 되어 나타났을 때의 열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여우는 목각인형이었는데 얼굴과 몸이 분리가 돼서 깜짝 놀랐다. 



2층에서 바라 본 낭독뮤지컬 <어린왕자>의 무대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이와 함께, 오른쪽에 자리잡은 3인조 밴드가 들려주는 라이브 연주의 매력 또한 극의 묘미를 더했다. 미러볼은 살짝 아이러니함을 전했지만, 이색적이긴 하더라.



커튼콜에서 정동화 배우가 어린왕자 의상을 입고 나오는데, 무대 바닥에 거의 닿을 정도의 길이감을 지닌 것이 포착됐다. 근데 그게 또 굉장히 어린왕자 같은 비주얼이라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반면에 박정원 배우의 의상이 오히려 생텍쥐베리를 연상시켜서 이 점을 곱씹어 보게 되었다. 목에 두른 스카프 깃이 바짝 서 있는 게 포인트였다고나 할까? 코러스 역의 김환희 배우가 착용한 비행사 복장과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여기서도 의미를 찾는 게 가능했다. 우리 곁에 존재하는 어린왕자의 발견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세 사람 모두가 어린왕자와 다를 바가 없었고, 이로 인한 메시지가 전해져 와서 심금을 울렸다. 우리 마음 속 한 켠에 자리잡은 어린왕자의 모습을 이 공연을 통해 다시금 맞닥뜨리게 돼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커튼콜과 그 순간에 울러퍼졌던 노래가 여전히 귀에 맴도는 것만으로도, 낭독뮤지컬 <어린왕자>의 만남이 계속해서 큰 힘이 되어주고 있음을 확신했다. 세 배우가 사라진 자리에 남아 반짝이던 별들과 소행성 B-612의 찬란한 빛도 잊지 못할 거다. 


세 배우의 화음도 조화로웠는데 커튼콜의 마지막에 다다라 감상하게 된 노랫말도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어.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거야."



낭독공연이라 러닝타임이 길지 않은 점도 만족스러웠다. 다른 때보다 여유롭게 집으로 향할 수 있어서 이 또한 어린왕자의 선물 같았다.


그렇게 생텍쥐베리의 명작을 오랜 시간이 지나 무대 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 즐거웠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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