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비클래스(B CLASS) :: 비겁해도 괜찮아, 그때의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연극 <비클래스>가 다시 시작됨으로 인해 사립 봉선 예술 학원의 문이 활짝 열렸다. 올해로 삼연째인데 초연은 봤고, 재연은 건너 뛰어서 정말 오래간만의 관람이 아닐 수 없었다.
같은 학원 안에서도 학생들 사이에 등급이 매겨짐에 따라 우열반이 나누어졌고, 이로 인하여 우등반과 열등반이 각각 A CLASS와 B CLASS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연극 <비클래스>에서는 열등반으로 칭해지는 비클래스에 모여 졸업공연을 준비하게 된 네 친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이미 지나버린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부분이 많았던 연극 <비클래스>였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도 우열반이 존재했기에 더더욱. 그때도 지금도 의미없는 제도라는 생각이 드는 건 변함이 없고, 선의의 경쟁만으로도 충분한 친구들 사이에 차별행위가 덧입혀짐으로써 경험해야만 하는 마음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연을 보는 내내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을 눈앞에 두고 갈등하던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 속 꿈과 인생, 예술을 향한 방황과 갈망이 가슴 절절하게 다가왔던 한때였다. 막이 오르고 태진의 내레이션이 들려오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공연 1시간 전엔 매표소에서 티켓을 수령하고 재관람 카드를 만들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는데, 공연장 입구부터 사립 봉선 예술 학원의 로고가 눈에 띄어서 흥미로웠다.
참고로, 사진 속 문은 입장시간이 되지 않아 닫혀 있던 객석입구였다. 매번 열린 상태만 봐서 이 모습이 굉장히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설렜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는 포토존. 무대 위에 놓여 있는 책상과 의자가 로비에도 비치돼 관객들이 사진 찍기 좋아 보였다. 붐비지 않은 시간대에 방문한 기념으로 이곳 사진도 남겼다.
일찍 도착했더니, 세상 여유로웠던 하루!
[CAST]
윤태진 : 강연정
이윤희 : 정다희
카에데 : 임유
김율 : 손은호
최정우 : 김민성
툭 까놓고 말해서, 연극 <비클래스> 자체가 선호하는 공연 취향과 맞아 떨어지는 극은 아니었다. 초연은 몇 번 봤지만 재연을 관람하지 않고 넘어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삼연은 꼭 봐야 했다. 왜냐하면, 여배우 버전으로 새롭게 만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남배우 버전으로 출발했지만 여배우 버전 또한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여배우 버전을 통하여 공감대 형성이 확실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기대를 져버리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과거 학창시절, 교복을 입고 학교를 누볐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지며 아련한 공기가 주변을 감쌌다.
이렇듯,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대한민국 공연계를 맞닥뜨리게 돼서 좋았던 연극 <비클래스> 삼연이었다. 남학생 버전으로 스타트를 끊어서 여학생 버전이 뒤늦게 공연된 거긴 하지만, 앞으로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줬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싶었다.
작곡 전공 윤태진, 보컬 전공 이윤희, 현대무용 전공 카에데, 피아노 전공 김율. 네 친구가 끊임없이 대립하며 날을 세우다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순간들이 아름다웠다.
세 친구를 독려해 나가며 졸업공연을 위해 온 힘을 쏟았던 악바리 태진,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여린 내면을 지녀 따뜻한 면모가 돋보였던 카리스마 윤희, 툭툭 내뱉는 말에 위로를 담아낼 줄 알던 장난꾸러기 카에데, 뛰어난 재능과 더불어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비클래스의 실질적 리더 율. 무대 위에서 네 사람의 찬란한 시간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바라볼 수 있어 즐거웠다.
연정 태진은 살아 남아야 했으므로 비겁해질 수 밖에 없었던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하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래서였을까? 졸업공연에 매진하던 처음과 달리, 비클래스를 벗어나고자 친구들을 배신하는 장면에서 마냥 미워하는 게 힘들었다. 오히려 태진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수긍이 돼 착잡했다. 이 결정이 나중에는 세 사람이 아닌 스스로에게 독이 될 것임을, 크나큰 죄책감으로 남아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아서 더 그랬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친구들에게 힘을 북돋아주었던 태진이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내며 악에 받힌 소리를 꺼내놓아야 했던 찰나가 뇌리에 콕 박혔고, 보는 내내 따라 울게 됐다. 연극 <비클래스>가 태진의 기억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배우의 힘이 컸다고 생각된다. 다만, 사투리 연기는 좀 많이 어색했다.
다희 윤희는 보컬 전공 답게 시원시원한 가창력이 감탄사를 절로 내뱉게 만들었다. 학생 중에서 유일하게 교복치마가 아닌 교복바지를 입고 당당하게 학원을 오가는 모습도 멋졌다. 친해지기 힘들지만, 막상 친해지면 가감없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줄 아는 털털함도 눈에 쏙 들어왔다.
임유 카에데는 연극 <비클래스>에서 발견한 최고의 보물이었다. 재일교포로 한국말은 아직 서툴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세 친구를 보듬어주는 포용력과 인생의 진리를 보다 일찍 깨우친 듯한 어른스러움이 온기를 전했다. 그리고, 윤희가 말한 모태댄서를 잘못 이해하고 화를 내는 장면에선 웃음이 빵 터졌다. 여기에 더해 태진이 말할 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다 윤희의 가방에서 왕사탕이 나오는 걸 보고 그제서야 활짝 웃던 카에데의 천진난만함도 기억에 남았다.
연기 못지 않게 현대무용을 전공한 학생다운 움직임이 황홀함을 선사한 임유 카에데였다. 음악에 녹아든 카에데의 몸짓에 반했다. 아이를 연상시키는 순수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프로페셔널한 무용수로 무대 정중앙에서 존재감을 발산하는 카에데의 공연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강렬한 눈빛과 몸의 움직임이 음악 안에서 하나됨으로써 공연장에 가득 퍼지던 압도감이 환상적이었다.
은호 율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외톨이적 캐릭터가 두드러졌다. 비클래스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다가 천천히 마음을 여는 모습이 그래서 더 울컥함을 자아냈다. 윤희에게 지지 않으려고 허리춤에 두 손을 갖다대고 나름대로 매서운 포즈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참 귀여웠다.
천재로 불리워지다 비클래스로 왔기에 이로 인한 상실감이 클 법도 한데, 오히려 이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새로운 길로 걸어나가려 노력하는 장면들이 기특하게 여겨졌다.
위의 사진 순서는 왼쪽부터 차례대로 카에데, 윤희, 태진, 율. 공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 순서로 편집해 봤다. 참고로, 카에데는 단풍나무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태진의 내레이션을 통하여 "나의 단풍나무"라는 말이 들려왔을 때, 진한 울림이 퍼져 나가며 마음을 울렸음은 물론이다.
연극 <비클래스>에서 만난 네 청춘들의 삶은 생각보다 많이 무거웠다. 에이클래스가 아닌 비클래스로 떨어졌다는 부담감과 함께 그들이 처한 상황까지 껴안고 가야 했으니 모든 걸 감당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거다.
이러한 이유로 태진은 비겁한 선택을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학생의 시간을 지나 나이를 먹어 어른에 가까워지니 10대의 태진이 마냥 비겁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게 아닐까.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을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편해지기를 소망할 수 밖에.
학생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킴과 동시에 치열했던 10대의 나날들을 돌아보게 해주는 점은 괜찮았으나 마냥 가볍게 보기에는 힘든 극이었다. 어쩜 그렇게 네 사람 다 사연이 구구절절한지, 그 얘길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연 시간이 금방 흘러가 버릴 정도였다. 덕분에 교실 내부에서 졸업공연으로 인해 심화되는 갈등이 아니라 이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위험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단점으로 부각될 때가 많았다.
비클래스 친구들의 졸업공연은 클라이막스답게 훌륭했지만, 이것만으로 재관람을 하기에는 아쉬운 부분들이 상당함을 부정하기가 힘들었다.
만약 여배우 버전이 탄생되지 않았더라면, 연극 <비클래스> 삼연 또한 관람하지 않고 넘어갔을 것이다. 여배우들이 똘똘 뭉쳐 공연하니 시너지가 정말 어마어마하던데, 왜 여태껏 보기가 힘들었던 건지 되짚어보게 만든 시간이었다. 공연을 올리는 건 관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제작진들 역시도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극 안에선 자주 붙지 않던 태진과 율이 커튼콜에서 서로를 안아주며 웃는 걸 보니 콧잔등이 찡해졌다.
학생들 외에 선생님으로 등장한 최정우 역의 김민성 배우는 목소리가 참 좋았다. 목소리는 매우 인상적이었으나 연기할 때마다 어색함이 묻어나와서 이 점은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할 때 연기적으로 밀리니까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커튼콜 사진은 따숩구나. 이때는 프리뷰 기간이었으니, 지금은 더 나아졌기를 바란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펼쳐졌을 때, 마이크 앞에서 울먹거리던 윤희의 표정이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이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 바로 이때였다. 기립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자유극장의 단차는 여전했다는 점. 내가 앉은 H열 중블 앞의 네 자리가 보유석이었는지 비어서 그나마 편하게 볼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다. 하지만 기립해서 커튼콜 촬영하니, 관객들의 머리가 배우들을 가려서 사진을 찍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여배우들을 투입한 연극 <비클래스>의 새로운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태진의 선택에 복받침이 몰려와 울었고, 비클래스의 졸업공연이 멋져서 또 눈물이 났다. 배우들의 열연에 마음껏 박수 갈채를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지금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지만, 답은 정해졌기에 후회는 없다. 이 공연을 봤던 날의 감동 또한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갈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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