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앤하이드 :: 명불허전 홍광호,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까발리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두 번째 관람의 날이 밝았고, 그리하여 또다시 배우들이 선사하는 공연의 세계로 푹 빠져들었다. 이와 함께, 작품을 마주하는 내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선과 악에 대한 호기심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영원토록 계속될 거란 예감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이중인격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 지킬과 하이드를 통하여 인격의 다중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은 공연계는 물론이고 여러 장르에서 이중인격을 포함해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어 낯설다고 보긴 힘들지만,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지킬과 하이드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집필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원작으로 재탄생된 뮤지컬의 매력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관객들을 끌어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공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뒤따르르는 화제성과 매진 행렬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CAST]

지킬 & 하이드 : 홍광호

루시 : 윤공주

엠마 : 이정화

어터슨 : 김도형


아무래도 첫 관람이 아니다 보니 주연 배우들과 앙상블 배우들의 조화로움이 공연 전체를 아우르는 시너지로 크게 와닿아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개개인의 역량은 물론이고 떼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역시도 완벽했다. 


헨리 지킬의 친구이자 변호사인 어터슨에게선 언제나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는 따뜻함이 물씬 풍겼지만, 클럽으로 이끄는 장본인이기도 했기에 역시나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인상깊었다. 참고로 어터슨 역은 더블 캐스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난 번엔 이희정 배우로, 이번엔 김도형 배우로 보게 돼 유일하게 전캐스트를 확인한 캐릭터로 남았다. 



이정화 배우의 엠마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현명함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의 표본으로 제격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주었다. 넘버 중에선 루시와의 듀엣인 'In his eyes(그의 눈에서)'를 통해 들려오던 청량한 목소리가 눈부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킬을 사랑하고 믿었던 진심으로 인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것도 사실이다.  


윤공주 배우의 루시는 연기 뿐만 아니라 넘버 소화에서의 뛰어난 밸런스가 돋보였고, 'A New Life(시작해 새 인생)'에서 맞닥뜨렸던 감정의 희로애락이 깊은 몰입을 도왔다. 무대 장악력이 뛰어나서 절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 장점! 


그리고 비콘스필드와 기네비어 역의 홍금단 배우, 스트라이드와 스파이더 역의 이용진 배우는 지체 높은 귀족과 클럽 관계자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만의 메시지와 더불어 그들만의 개성을 뽐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공연 하나만으로 1,000회를 넘긴 김봉환 배우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내가 본 건 999회였지만, 이 또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는 바다. 커튼콜에서의 손가락 하트도 멋지셨음! 



공연 초반에 화려한 무대 위를 수놓던 넘버 'Facade(파사드)'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메시지를 관통함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서막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귀를 파고들던 "가면 속의 허상"이란 단어가 흥미로움 그 이상의 긴장감과 전율을 전해주었다. 


매 순간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중성을 표현한 넘버라는 점에서 주의깊게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지킬이 탄생시킨 하이드는 그저, 선함에 감춰둔 악의 욕망이 극대화돼 나타난 것일 뿐. 덧붙여 인간이란 절대선이나 절대악으로 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상기시켜 주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번 공연은 순전히 홍광호 배우의 지킬과 하이드를 만나기 위해 예매했던 것이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이날의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보고 난 감상평은 한 마디로, 명불허전. 명불허전, 홍광호!


'Lost in the darkness(그대 향한 길)'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선과 악의 분리를 실험하기 위한 굳은 결의를 동시에 표출한 지킬이 'This is the moment(지금 이 순간)'으로 말미암아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향해 발걸음을 떼며 보여주던 환희가 놀라움을 경험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지금 이 순간'은 시상식 영상으로 봤을 때부터 반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직접 보니 훨씬 더 감동적이라 벅차오름이 더했다. 


멋진 소품들로 무대에 구현해 낸 실험실의 비주얼도 어마어마했는데, 그곳에서 실험에 열중하던 홍지킬의 모습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직접 자신의 팔에 주사를 놓은 뒤 연구일지에 이로 인한 변화를 기록하면서 그 느낌을 "마약?"이라고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씩 웃던 모습이 귀여웠다. 그러다 순식간에 돌변해 에드워드 하이드가 되었을 때의 충격은 상당했다.


'Alive 2(얼라이브 2)'에서 근엄하게 "야옹~"을 외치며 등장해서 주교를 불길에 휩싸이게 만들던 때의 카리스마도 엄청났다. 뿐만 아니라 루시와 함께 부르는 'It's dangerous game(나도 몰랐던 나)'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드라졌다. 



그리고 역시나 이 공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Confrontation(대결)'은 브라보! 지킬과 하이드를 동시에 연기하며 노래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아는데, 홍지킬과 홍하이드의 공존 속에서 충돌하는 선과 악의 대립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예의바르고 반듯한 의사로 약혼자 엠마를 향한 사랑과 루시에 대한 연민을 가진 지킬과 악을 악으로 처단하는 살인자 하이드의 분노는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로 공연장을 물들였다. 컨프롱이 진행되는 와중에 들려오던 하이드의 목 긁는 소리는 좋은 의미에서 굉장히 충격적이었기에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맑고 고운 목소리의 지킬과 낮게 깔리면서 긁기에 따른 공포의 울림이 건네는 소름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와중에 재밌었던 건, 지킬과 하이드를 번갈아가며 열연하던 장면 속에서 둘의 존재가 미묘하게 섞임으로써 하나임을 알려주는 찰나를 접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이라는 극과 극에 놓여있었지만 한 인간의 몸 속에 자리잡은 인격이었으므로, 지킬은 곧 하이드였고 하이드는 지킬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 그런 이유로 컨프롱을 통하여 지킬 속의 하이드, 하이드 속의 지킬이 튀어나오는 순간도 눈여겨 볼만 했다. 



홍광호 하면 노래 잘하는 배우로 유명하지만,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를 보면 연기 또한 탁월함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꼭 보고 싶었던 작품 속 캐릭터였는데 기대 이상의 감동과 만족감을 심어주었기에 커튼콜에선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솔직히 이 공연을 보며 울게 될 줄은 몰랐어서, 엔딩에 다다라 터져 나오는 눈물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어리석은 시도였긴 하지만 어터슨의 말처럼, 지킬은 의사이자 혁명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의 도전이 헛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무대 전환이나 음악의 변화가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보여졌던 배우들의 절도있는 손동작도 감명깊었다. 거침없는 손동작과 함께 이루어지는 암전과 공간의 이동도 흥미진진했다. 


이사회 임원들이 자신의 큰 뜻을 몰라주자 시무룩해하던 지킬도 기억에 남는다. 이와 달리, 공연 후 커튼콜에서 엠마와 루시의 손등에 입을 맞추던 홍지킬은 쏘 스윗! 클럽에서 루시의 공연 보면서 방황하던 눈빛과 동공 지진의 흔적,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다 박수를 치던 지킬은 귀여웠다. 약혼식장에서 불려 나가면서도 엠마에게서 눈을 못 떼던 지킬의 눈에서도 꿀이 떨어졌다고 한다. 


마지막 퇴장 역시도 온 몸으로 박력을 드러내서 엄지를 척 치켜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암전마다 쏟아지던 박수와 환호성도 마찬가지. 



요건 재관람 할인 받은 티켓에 찍어주는 확인 도장인데, 생각보다 예뻤다. 마음에 들긴 하는데 크기가 커서 처음 봤을 때 놀라긴 했지만 나름대로 이날을 추억할 수 있는 기념품이 하나 생긴 것 같아 즐겁다. 



공연 보고 나와 샤롯데씨어터에서 잠실역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롯데 호텔을 지나가는데, 그러다 만나게 된 라이언 트리가 시선을 사로잡아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아서 여기저기서 개성이 넘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나볼 수 있는 요즘인데 요 라이언 트리는 진짜 앙증맞았다.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된 산타 눈사람 라이언! 이거 카카오프렌즈샵 가면 구할 수 있는 건가? 처음 보게 된 라이언 신상품이라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덕분에 공연 보고 돌아가는 길도 매우 즐거웠다는 이야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속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중점적으로 까발린 홍광호 배우와의 만남을 끝으로 이 공연과는 작별을 했다. 자둘자막이었지만, 자체 레전으로 끝을 맺었으니 후회는 없다. 다음에 새로운 작품으로 또 볼 수 있을 테니, 그때를 기약해 본다. 홍지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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