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이 흥미로웠던 블랙 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

국내에서 초연 중인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나 역시도 시놉시스와 더불어 캐스팅 확정 소식을 듣게 된 이후로 기대했던 작품인데, 드디어 관람함으로써 호기심을 해결할 수 있어 즐거웠다.


때는 1909년 영국 런던, 가난한 백수의 삶을 연명하고 있던 몬티 나바로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집을 찾아 온 미스 마리에타 슁글을 통해 놀라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고귀한 다이스퀴스 가문의 여덟 번째 후계자가 바로 몬티 자신이라는 사실! 


몬티는 사랑하는 시벨라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지만 심드렁한 반응을 통해 8명의 후계자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의 삶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닫고, 다이스퀴스 가문의 1순위 후계자로 거듭나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거절당한 슬픔과 어머니를 제명한 것도 모자라 지금껏 가족을 외면한 가문을 향한 복수심이 동시에 불타오르게 된 몬티는 그리하여, 8명의 다이스퀴스 가문 후계자들을 없애기 위한 살인의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각기 다른 직업과 개성을 보유했지만 어머니의 초상화로부터 이어지는 핏줄의 인연은 상당히 강력한 것이었고, 이로 인해 외모적으로 닮은 부분이 적지 않았던 다이스퀴스들과의 만남은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 연쇄살인을 이어나가는 몬티의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도 눈여겨 볼만 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 유쾌한 코미디 장르를 기대했는데,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생각했던 것과 꽤 다른 분위기가 전해져서 놀라웠던 작품이 바로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이었다. 


물론, 폭소가 만발하는 순간이 없진 않았으나 기본적으로는 소소한 재미를 중심으로 스토리 전개가 이어져서 그 흐름을 따라가게 되는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인터미션 전후로 나뉘어지는 극의 온도차도 남달랐는데 1막은 다채로운 캐릭터의 등장이 시선을 집중시켰고, 2막은 사건에 초점을 맞춰 인물들의 관계는 물론이고 결말을 보여주기 위한 긴장감과 호기심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지켜보게 만드는 장점이 존재했다. 



블랙코미디에 걸맞는 아이러니 또한 맛깔나게 표현한 공연이었다. 그러나, 개그 소재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때때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아슬아슬함이 묻어나오는 대사가 귀에 들어왔어서 이 점은 좀 아쉬웠다. 1907년에 쓰여진 로이 호니먼의 소설 '이스라엘 랭크 : 범죄의 자서전'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구시대적인 느낌이 드는 순간들도 없지 않았다. 반면에 현대적 각색으로 유행어를 대사에 포함시킨 장면은 모르는 이들에겐 유머 코드로의 작용이 허용되지 않아 공감대 형성에 실패할 것임이 분명해 보여 이에 따른 호불호 또한 갈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무대는 LED 장치를 통해 화려함을 뽐냈는데, 비주얼적으로 만족스러움을 자아내면서도 거의 모든 장면이 영상으로만 보여져 아기자기한 공연 소품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시원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치만 선명한 화질과 더불어 적재적소에 이용되는 영상이 돋보일 때가 많았기에 썩 훌륭한 결정이었음을 인정하는 바다. 특히, 다이스퀴스 목사의 추락이 굉장히 사실감 있어 보여져서 재밌었다. 


2층에 자리잡은 오케스트라의 위치도 마음에 들었다. 오케스트라의 존재감과 더불어 중요한 순간에 고개를 들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장소의 강점 또한 공연 전에 미리 파악해 두면 더 좋다. 



[CAST]

몬티 나바로 : 서경수

다이스퀴스 : 오만석

시벨라 홀워드 : 임소하(임혜영)

피비 다이스퀴스 : 김아선

미스 마리에타 슁글 : 김현진

투어가이드 외 : 윤지영

레이디 유지니아 다이스퀴스 외 : 장예원

미스 에반젤린 발리 외 : 선우

시벨라/피비 커버 & 앙상블 : 윤나리

톰 코플리 외 : 윤정열

치안판사 외 : 김승용

핑크니 경감 외 : 황두현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은 막이 오르자마자 오프닝 넘버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웃겼다. 무대 위에 상복을 차려입은 배우들이 나타나서는, 감당하지 못할 관객들이라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서 8시가 조금 넘었을 뿐이니 갈 사람은 가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전할 때부터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앙상블 배우들 모두 다 좋았고, 1인 9역의 다이스퀴스를 열연한 오만석 배우의 활약은 역시나 두드러졌다. 각각의 다이스퀴스로 변신을 시도할 때마다 성별과 연령대를 뛰어넘게 됨으로써 대사톤과 움직임의 무궁무진함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시간이 흐르고 배역이 바뀔수록 숨이 차고 배우가 녹아내리는 게 보여서 안쓰러우면서도 그것이 공연의 묘미였기에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게 됐다. 수염이 떨어질까봐 손으로 꾸욱 눌러주던 찰나도 은근한 웃음 포인트였음은 물론이다. 헨리 다이스퀴스의 "한잔 하자요!"도 잊혀지질 않는다. 


참고로, 다이스퀴스 가문의 후계자들을 총 1인 9역으로 소화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더 얘기해 보자면, 이날 캐스트로 만났던 만석 다이스퀴스와 경수 몬티의 케미도 썩 훌륭했다. 



몬티에게 있어 살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이로 인해 무대에 선 시벨라 홀워드와 피비 다이스퀴스의 대결 및 그녀들을 향한 몬티 나바로의 사랑이 펼쳐지는 순간들 역시도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남았다. 


그중에서도 소하 시벨라와 아선 피비의 듀엣은 오페라를 연상시키며 귀를 사로잡았다. 이에 더해 시벨라의 강렬한 레드 컬러 의상과 피비의 시원한 블루 컬러 의상이 대비를 이룸으로써 두 사람의 성격과 카리스마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경수 몬티는 피지컬적인 면모가 압도적이었던 첫 등장에 이어 연쇄살인을 통해 의도치 않은 성장을 이루어나가는 모습 속에서 귀여움과 멋짐을 한껏 표출하며 캐릭터로의 몰입을 도왔다. 시벨라와의 사랑만으로도 충분했던 몬티가 그녀로 인해 각성함으로써 변화하며 맞닥뜨리게 해준 사건이 한 권의 책으로 기록되는 내내 확인할 수 있었던 인간의 속성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지만, 잠시 잊고 있던 인간 존재의 욕망을 다시금 새로이 접하게 해줬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전했음을 인정한다. 인성의 다운그레이드가 속도를 내면서 점점 더 멋져지는 몬티 나바로의 모습도 명불허전이었다.   


다만, 몬티 넘버가 별로 없어서 이게 좀 슬펐다. 연기도 잘하지만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지닌 경몬티의 노래를 많이 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하지만 수확이 없는 건 아니었다. 2막에서 시벨라를 향한 세레나데를 불러줄 때 들려왔던 경몬티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정말 최고였으니까. 넘버 제목은 모르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달콤함이 가득 퍼졌던 곡이라서 기억에 남았다. "시벨라~"를 읊조리던 경몬티의 노래가 다시 듣고 싶어진다. 



이 공연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당연하게도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의 결말이었는데, 확실히 이 부분 만큼은 예기치 못했던 반전과 깊은 성찰을 전해주는 의미가 가득 담겨 있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블랙 코미디다운 결말이 살아 숨쉬는 작품이었기에 수긍이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치정극과 코믹 스릴러가 접목된 블랙 코미디의 정수를 제대로 만나보게 해준 공연이었다. 게다가 초연을 직접 마주하게 된 짜릿함이 곁들여져서 즐거움이 더했던 시간이었음을 밝힌다. 커튼콜도 꽤나 귀여웠다. 



공연에 대한 입소문이 자자하고 캐스팅 역시도 훌륭해서 전캐스트를 만나고픈 마음은 간절하나 이번에도 가격 장벽을 극복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덕분에 자첫자막의 길을 걷게 되겠지만, 그래도 안 보고 넘어갈 수 있게 됐으니 만족한다.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트 대극장은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 사랑과 살인편>과 함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포토존으로 채워져 미리 성탄절 기분을 내며 즐겁게 관람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층별로 포토존을 예쁘게 잘 꾸며놓은 걸 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사진으로 담아봤다. 여기도 크리스마스 트리가 양옆에 장식되어 있었는데 자체 생략! 


초연이 잘돼서 재연도 빠르게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아직 공연 중이지만 관람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신, 다시 올 때는 할인율 좀......좌석 색칠 좀.....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마음의 외침을 허공에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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