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 폐허문학의 진면목을 경험할 수 있는 볼프강 보르헤르트 전집

볼프강 보르헤르트 전집으로 발매된 <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은 폐허문학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해준 한 권으로써 읽는 내내 책에서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여기서 일컬어지는 폐허문학이란, 독일 전후문학을 뜻하는 용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역사 한가운데에서 힘겨운 삶을 영위해야 함에 따라 절망의 늪에 다다를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심경을 토대로 쓰여진 이야기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26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이어오는 동안 경험해야 했던 비극의 참담함이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도서 안에 오롯이 담겨 안타까움을 자아낼 때가 많았다. 마냥 슬프기만 한 건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전쟁이 집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기는 힘들었다. 

 

그리하여 <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 속에서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시, 단편 소설, 희곡, 에세이, 서평, 미완성 작품, 잡문까지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특히, 생전에 발표되지 못한 유작이 포함됐다고 해서 이 점도 기억에 남았다. 

 

뿐만 아니라 페이지를 넘겨가며 작가의 글을 섭렵해 나가는 과정에서 유독 "잿빛"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가능하여 이 또한 강렬한 여운을 안겨주었다. 시대적 상황이 암울함으로 가득했던지라 그에 따른 분위기가 곳곳에서 느껴져 심금을 울리는 순간이 상당했다. 

 

이 와중에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글을 막힘없이 써내려간 것으로 보여져 탁월한 재능에 경의를 표하게 되는 순간이 다반사였다. 덕분에 지금껏 접해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비유의 향연이 감탄을 불러 일으켜 다음장으로 넘어가기를 잠시 멈추고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훑어보는 일도 마다하지 않게 됐다.  

 

 

전집에서 첫 번째 단편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민들레'는 감옥에 수감되어 독방 생활을 했던 괴로운 날들의 체험을 토대로 쓰여진 것이라고 하는데, 운동시간에 우연히 발견하게 된 민들레 꽃을 통하여 홀로 남겨진 고독에서 벗어나 일말의 희망을 거머쥐며 뜻밖의 변화를 맞닥뜨리는 이야기가 꽤나 드라마틱하게 펼쳐져 감명깊었다.

 

덧붙여 '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이라는 타이틀 하에 밤을 형언할 수 없고 따라 할 수 없는 푸른 잿빛으로 명명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상상하게 도왔던 순간도 감탄을 자아냈다. 여기에 더해 강가에 피어오르는 안개 같은 푸른 잿빛 향기 역시도 호기심을 극대화시켰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이유로 볼프강 보르헤르트 전집 <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을 통하여 폐허문학의 백미를 깨닫게 돼 뜻깊었다. 천천히 글자와 단어와 문장과 문단을 차례대로 곱씹어가며 읽는 즐거움이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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