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녀 :: 김다미의 열연과 액션씬의 묘미 후속편을 염두한 결말과 내용에 따른 호불호

* 스포주의 *

 

박훈정 감독의 영화 <마녀>는 3부작으로 기획된 미스터리 액션물로써 흥미로움을 선사한 작품이었다. 특히, 슈퍼히어로 장르를 다룸과 동시에 지금껏 만나본 적 없는 색다른 한국 여성 액션 영화의 매력을 확인하게 해줌에 따라 보는 즐거움이 남달랐다. 참고로, 앞서 언급한 이야기는 2018년 영화 개봉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덧붙여 내용 및 결말을 언급하는 동안 많은 스포일러가 포함될 예정이니, 지금부터는 이 점을 감안하여 스크롤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정체 불명의 시설에서 뇌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탁월한 운동신경과 폭력성을 지닌 실험체로 살아오던 아이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부부의 손에서 자라남에 따라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하여 과거의 기억을 잃은 채로 고등학생이 된 자윤은 5억의 상금이 걸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알츠하이머 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가난한 집안사정에 보탬이 되고자 친구 명희의 제안에 따라 방송에서 탁월한 노래 실력을 선보인 자윤은 그리하여 생방송 경연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이를 위하여 기차를 타고 서울에 위치한 방송국으로 향한다.

 

 

그러나 자윤의 방송 출연은 어마어마한 비극을 불러 일으켰다. 자윤이 몸담았던 시설의 관계자인 닥터 백과 미스터 최가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베스트 프렌드를 담보로 위협을 가하는 이들 한가운데서 자윤은 결국 오디션 현장으로 가기 위해 탑승한 기차에서 만났던 귀공자와 그 패거리를 따라 나선다.

 

이로 인하여 마침내 감춰져 있던 자윤에 대한 비밀이 하나 둘씩 드러나며 놀라움을 전했다. 

 

구자윤(김다미), 도명희(고민시)

일단 영화 <마녀>를 보기 전, 기차 안에서 삶은 계란을 끊임없이 입에 밀어넣으며 맛깔나게 먹던 자윤 역 김다미의 계란짤을 본 적이 있어서 이와 관련된 장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뿐만 아니라 10년의 세월이 흘러 재회한 자윤과 귀공자의 만남이 은근한 긴장감을 불어 넣었는데, 드라마 <그 해 우리는>에서 봤던 둘의 커플 케미와 상반된 온도차가 도드라져 눈길이 갔다.

 

여기에 더해 자윤의 절친으로 털털한 입담을 뽐내던 명희가 귀공자에게로 내뱉던 찰진 욕설도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친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말들이 진정성 있게 표출돼서 웃는 일이 가능했기 때문에.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잔혹한 상황이 기다리는 상태임을 직감한 때라서 잠시나마 긴장감을 해소시켜주던 찰나가 뜻깊게 여겨졌다. 

 

미스터 최(박희순), 닥터 백(조민수)

미스터 최는 1세대 실험체로 닥터 백의 조력자라고 봐도 무방한 인물로써 남다른 신체능력을 보유한 반면,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몸의 일부가 괴사되는 중이라 이를 해결하고자 2세대 실험체로 두각을 나타낸 자윤을 애타게 찾아 헤매야만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윤의 뇌를. 저마다의 목적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미스터 최와 닥터 백 모두 자윤이 필요했으니, 동맹을 맺어야 할 수 밖에.  

 

 

박희순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이 네임>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는데, 이보다 먼저 캐스팅된 영화 <마녀>에서 또한 원톱 여자 주인공 작품의 서브 전문 배우로 존재감을 뽐냈음을 확인하게 돼 반가웠다. 덕분에 본인이 스스로 여성을 돋보이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고 좋아한다고 밝혔던 기사가 새삼 머리 속에 떠올라 재밌었다. 비중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탄탄한 연기로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서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닥터 백은 피조물이 된 실험체들의 창조주와 다름 없었다. 허나 그로 인해 참혹한 비극의 열쇠를 거머쥐어야 했으니, 인간이 신에게 대항하는 일은 무모해 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똑똑한 재능을 낭비해 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안타까웠다.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이들이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결코 사소하다고 볼 수 없는, 스스로를 죽음의 문턱으로 다다르게 했다면, 방법이 있을 리가. 

 

조민수는 자윤과 대립하며 실험체의 비밀을 털어놓던 순간의 아우라가 대단했다. 머리 좋은 양반의 과욕을 맞닥뜨릴 수 있어 고개를 내젓게 되었더랬다. 개인적으로는 조민수를 작품을 통하여 굉장히 오래간만에 만난 거라 반가웠다. 

 

귀공자(최우식)

자윤과 더불어 2세대 실험체였던 귀공자로 패거리의 리더를 겸하여 등장한 최우식의 포스도 좋았다. 어린 시절의 뼈아픈 기억 속 자윤으로 인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로, 성장하는 동안 힘을 키워 일취월장함에 따라 자윤을 먹잇감으로 여기며 제거하고자 안간힘을 쓰던 찰나가 감명깊었다. 

 

덕택에 자윤과 귀공자의 대립으로 인해 확인할 수 있었던 액션씬의 스펙타클함이 영화 <마녀>의 명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고도 남았다. 자윤의 의중을 제일 빠르게 파악하는 면모가 도드라져 눈썰미가 대단하다 싶었고, 예상을 뛰어넘는 팔의 힘을 일깨워주던 완력과 물체에 손을 대지 않고 움직이는 염력을 발휘하는 모습도 눈에 쏙 들어왔다. 

 

이와 함께 귀공자 패거리 속 긴머리 역 정다은의 호연에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렬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던 모습도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영화 <마녀>는 김다미의 활약이 정점을 찍은 작품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골수 이식을 받지 않으면 몇 달 내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처지에서 살아남고자 자신의 계획대로 판을 이끌어 간 구자윤의 영악함이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으니, 탄성을 내뱉지 않기가 오히려 더 힘들었다.  

 

시설에 핏빛 가득한 잔해만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진 것부터가 작전이었다. 인간병기가 되어버린 여덟 살 아이의 능수능란함에 모두가 속았다. 노부부의 딸로 살아가게 된 것 역시, 철저한 조사를 통하여 본인이 원하는 바를 쟁취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허나 더 이상 실험대상이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건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부모님이 되어준 부부와 하나 뿐인 친구 명희와 있을 땐 순진무구한 10대 소녀 그 자체였으므로 말이다. 머리가 깨지도록 아프지 않았더라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면 괜찮았겠지만 가혹한 운명이 자윤을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김다미는 영화 초반엔 부모님에게 사랑받으며 고등학교 생활을 이어가는 10대 청춘을, 영화 중반이 넘어선 죄책감 따위 경험해 본 적 없는 살인에 익숙한 인간병기가 된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는데 전혀 다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려 1,500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에 낙점된 이유를 절절하게 실감하게 돼 짜릿했다. 액션씬 역시도 최고였다. 

 

그럼 이제부터는 영화 <마녀>의 결말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자윤은 귀공자 패거리에게 이끌려 닥터 백이 존재하는 실험실로 추정되는 오래된 건물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과거에 대한 기억이 전무함을 토로하는 자윤에게 닥터 백은 지난 날 자신이 행한 일과 함께 머리의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약물을 주입한다. 약물의 효과는 한 달 뿐. 바로 그 순간, 자윤은 단 한 번도 기억을 잃은 적이 없음을 밝히고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이 오직 살고자 그들을 찾아내려 벌인 일이었음을 털어놓으며 뜻밖의 반전을 접하게 도왔다.

 

닥터 백의 잘못된 판단으로 능력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자윤은 자신을 제압하려던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실험실 전체를 불태운 채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본인이 사용할 약 몇 개를 제외한 전부를 어머니를 위해 사용하라며 아버지에게 남기고 다시금 자취를 감춘다. 투명한 창문 틈으로 명희에게 손인사를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 뒤로 3개월의 시간이 흘러 자윤은 보다 근본적인 걸 해결하기 위해 왔다며 닥터 백의 쌍둥이 동생 백총괄(조민수)을 방문했다. 이때 얼굴에 흉터가 있는 여자아이가 새로이 나타났는데, 자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암시하며 마무리가 돼서 후속편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사실, 나에게는 자윤이 기억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거짓말을 한 것보다 치료제를 어머니에게 전해주는 장면이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져서 이 부분이 더 오래도록 머리 속에 남아있을 것만 같다.  

 

미스터리 액션을 표방한 영화 <마녀>는 긴박감 넘치는 액션과 3부작의 서막을 알리는 스토리의 흐름이 그럭저럭 볼만 했던 작품이었다. 다만, 15세 관람가 등급인 것에 비하여 잔인한 부분이 많아서 이 점은 조금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결론적으로 김다미의 열연과 액션씬의 묘미는 훌륭했으나 후속편을 염두한 결말과 내용에 따른 호불호는 갈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영화 <마녀2>의 주연이 김다미가 아닌 신시아로 확정이 돼서 자윤의 서사가 궁금했던 이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그치만 일단 3부작으로 제작이 된다고 했고, 후속편이 곧 개봉될 예정이니 직접 보고 감상을 얘기해도 나쁘지 않겠다. 

 

나 같은 경우에는 1편을 봤으니, 2편도 관람할 의향이 있다. 아마도 이러다 보면 결국에는 3편까지 해서 3부작 시리즈 전체를 섭렵할 가능성이 높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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