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종영드라마 <서른, 아홉> 리뷰 :: 친애하는 세 친구의 찬란한 기록

JTBC 수목 드라마로 만나볼 수 있었던 <서른, 아홉>이 12부작으로 종영했다. 첫방송이 시작되기에 앞서 배우 손예진, 전미도, 김지현으로 완성된 꿈의 캐스팅을 눈 앞에서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에 설렘을 감추지 못했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종영드라마로 남게 되어 기분이 묘하다. 

 

마흔을 코앞에 둔 서른 아홉의 세 친구가 선사하는 우정을 중심으로 사랑과 삶의 의미를 맞닥뜨리게 해준 이야기의 묘미가 웃음과 눈물을 선사했던 시간이 뜻깊었다. 그러나 뜻밖의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전개로 말미암아 고개를 내저어야 했던 순간 또한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차미조 : 손예진, 정찬영 : 전미도, 장주희 : 김지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워맨스를 이어 온 미조, 찬영, 주희의 돈독한 관계는 서로의 부모님을 아빠와 엄마라고 부르며 스스럼없이 대할 정도로 진하고 깊었다. 콜라가 아닌 소주를 곁들이는 것 외에 예전이나 지금이나 떡볶이를 먹고 노는 것이 일상인 친구들의 오붓한 한때가 훈훈함을 더했다. 

 

허나 평범함을 거부하는 세 친구의 사연은 파란만장하기 그지 없었다. 일곱 살에 입양된 미조는 피부과 원장으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고, 배우의 꿈을 접고 연기 선생님이 된 찬영은 어느 날 갑자기 시한부 판정을 받으며 남은 삶을 정리해야만 했으며, 백화점 매니저로 일하던 주희는 진상 손님에게 맞대응하다 백수의 신세로 전락하고야 만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영원할 것만 같았던 셋의 우정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위기를 맞았으나 마냥 슬퍼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리하여 항암치료를 마다한 채 마지막을 준비하는 찬영이 꺼내놓은 버킷리스트를 이루어나가기 위한 의기투합이 펼쳐졌다. 미조의 친모 찾기와 주희의 연애 성공을 위해 힘쓰는 한편, 배우 오디션에 도전하는 찬영의 모습이 눈부셨다. 

 

볼 때마다 눈물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손예진의 오열 연기가 절절함을 경험하게 도왔고, 화끈한 성격으로 털털하고 솔직한 면모를 드러내던 전미도의 색다른 변신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소심하지만 착하고 정이 많은 김지현의 모습도 눈에 쏙 들어왔음은 물론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세 배우의 케미가 좋아서 찐친 모먼트가 제대로 느껴지는 일이 상당해서 공감대를 자아내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  

 

다만, 입양아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김선우의 동생 김소원이 술집에서 일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주던 장면은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드라마 <서른, 아홉> 속 안소희의 연기는 괜찮았으나 여러모로 캐릭터 자체의 설득력이 떨어져서 이 점은 안타까웠다. 차미조와 김소원을 통해 입양아의 실상을 조명하고 싶었던 것 같긴 한데, 너무 간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에 더해 결혼해서 아내와 아이가 있는 김진석이 전 연인이었던 정찬영과 만남을 이어가던 한때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이 아무리 애절하다 한들, 불륜미화 논란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결국에는 불편함을 선사했음을 밝히고 넘어간다. 

 

드라마 <서른, 아홉> 속 출연진들의 열연은 흡족함을 전했지만, 서사와 캐릭터에 있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찰나가 많았어서 보는 내내 호와 불호의 감정이 교차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 김진석을 맡은 이무생의 호연이 눈시울을 붉히게 해서 내로남불이 이런 건가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찬영이 췌장암 4기 판정을 받았음을 밝히자 터져 나오던 눈물 연기에 나 또한 울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연기가 엄청났던 데다가 전미도와의 케미가 완벽해서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그래서 다음에는 같은 작품에서 행복한 연인으로 호흡을 맞춰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기도 했다. 

 

진석은 찬영에게 만큼은 한없이 다정한 남자였다. 주희가 오빠 뭐 좋아하냐고 묻자마자 곧바로 "나 찬영이 좋아하지." 라는 말이 튀어나오던 능청스러움이 심금을 울릴 때가 있었다. 사랑했지만 이별을 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두고 놓지 못했던 사랑의 결말이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끝이 아님을 느낄 수 있게 해줘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후회로 가득했던 지난 날을 청산하고 뒤늦게나마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진석의 시간을 포착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차미조와 김선우(연우진), 정찬영과 김진석, 장주희와 박현준(이태환)이 완전체로 함께 했던 순간도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연우진이 선보인 김선우가 매력적이었고, 연상연하 커플로 자리매김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던 박현준 역 이태환도 캐릭터에 제격으로 보여졌다.

 

 

찬영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생전에 부탁한 대로 진석을 만나서 2주에 한 번씩 삼겹살에 소주를 먹던 5명의 모습도 애틋함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찬영의 유작이 된 영화 주인공으로 모습을 드러낸 배우 임시완과 현준의 중국집 아르바이트생으로 나타난 강태오의 존재감도 반가움을 전했음은 물론이다. 주희가 재밌게 시청하던 드라마 <런온> 주연들의 까메오 출연도 멋졌다. 

 

반면, 드라마 <서른, 아홉>을 보는 내내 유독 미조와 찬영에게만 서사의 초점이 맞춰진 관계로 주희의 비중이 많지 않아 이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극중에서도 주희의 소외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존재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배우 김지현의 발랄한 캐릭터 연기를 볼 수 있었기에 만족한다. 게다가 손예진과 전미도의 케미가 너무나도 완벽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세 친구의 로맨스도 이야기의 한 축을 차지하긴 했지만, 내가 보기엔 찐사랑의 주인공은 찬영과 미조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왜 항상 드라마 속에선 뮤지컬 배우 출신 연기자는 음치 역을 맡아야 하는 걸까?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2에서는 채송화 역 전미도가 그러더니, 이번에는 김지현이 바통을 이어받아 노래를 일부러 막 부르는 모습을 선보여서 안타까웠다. 그냥 다 같이 잘 불러도 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연뮤배 노래 잘하는 거 모두가 알아줬으면 하는 연뮤덕의 마음을 제작진들은 몰라도 너무 모르더라.

 

일말의 섭섭함이 남을 수 밖에 없었지만, 김지현의 드라마 데뷔 첫 주연작을 축하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찬영을 위해 복권 당첨을 포기하던 주희의 모습이 감동을 극대화시켰던 찰나도 잊지 못할 것이다. 예상 가능한 스토리였음에도 그 장면을 바라보는 동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찬영만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시한부 프로젝트를 위하여 미조와 주희가 부고 리스트를 브런치 리스트로 탈바꿈시킴으로써 만나보게 해준 한때도 드라마 <서른, 아홉>의 명장면으로 기억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참고로, 이날 포착된 브런치 카페 촬영지는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프라움 레스토랑이라고 한다. 통창으로 바라다 보이는 눈 내리는 풍경도 기가 막혔다. 

 

 

덧붙여, 드라마 <서른, 아홉> OST 첫번째 곡으로 감상이 가능했던 강아솔의 노래 '그때 우리가'도 작품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 귀를 기울이게 도왔다. 뿐만 아니라 차미조의 언니 차미현으로 분한 강말금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는 점도 언급해 본다.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스토리를 통하여 소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었던 드라마 <서른, 아홉>이었다. 덕분에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았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좀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지 않았나 싶다. 

 

드라마의 스토리보단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며 볼 수 있었던 작품으로, 충분한 삶을 살았다던 찬영의 말이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친애하는 세 친구가 함께 했던 찬란한 날의 기록을 만나보는 일이 가능해 더할 나위 없었다. 무엇보다도 세 배우의 캐스팅이 신의 한수로 기억될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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