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걸캅스 :: 통쾌한 웃음 속에 담긴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진 작품

영화 <걸캅스>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형사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으로, 통쾌한 웃음 속에 담긴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이로 인한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겨 보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민원실 주무관으로 일하며 퇴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인 전직 전설의 형사 박미영(라미란)과 강력계에서 징계를 받게 됨에 따라 민원실로 내려 온 현직 꼴통 형사 조지혜(이성경), 두 사람이 힙을 합쳐 수사를 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미영은 지혜의 오빠 조지철(윤상현)과 결혼했기에 둘의 관계는 묘한 연대감과 친분을 자랑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이 예상치 못했던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킴에 따라 흥미로움을 유발하는 장면도 많았다.애초에 지혜가 형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가 미영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이들의 인연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기동대 에이스로 맹활약을 펼쳤던 과거는 오래 전 일이 되어버렸으나 형사 특유의 감을 잃고 살았을 리 없던 미영은 민원실로 신고접수를 하러 왔다가 차도에 뛰어든 여성이 48시간 후 업로드가 예고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임을 알아낸다. 그러나 경찰 내에서 당장 이 사건을 맡아 줄 부서가 존재치 않음을 깨닫고 직접 나서기로 결심, 이때부터 미영과 지혜의 완벽한 콤비 플레이가 시작되며 비공식 수사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개성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던 라미란이 드디어 주인공을 꿰차며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뤘다. 영화 <걸캅스>는 데뷔 14년 만에 거머쥔 첫 주연작으로써 그동안의 내공이 제대로 녹아든 캐릭터로의 박미영을 선보이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감칠맛을 더하는 연기 속에서 톡톡 튀는 개그 코드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연기 또한 멋지게 소화해내며 배우 라미란의 저력을 뽐내는 순간들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로 인하여 탄생된 명대사인 "비벼!"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경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픈 마음에 현장에서 행동을 앞세우다 민원실 주무관 보조 역할을 담당하게 된 지혜는 미영, 장미와 의기투합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사건의 범인 추적에 나선다. 발로 뛰는 수사의 정석을 보여주며 불타오르는 정의감을 맞닥뜨리게 도왔으나 이로 인해 닥쳐 온 위기 역시도 감내해야 했기에, 위험천만한 상황에서의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사명감이 투철한 거라고 볼 수 있겠으나 때때로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무모함은 자제가 필요해 보였다. 수사물에 꼭 한 명씩 존재하는 인물의 표본이었던 것도 사실인데, 강력계 소속 새내기의 열정이 돋보여서 이러한 진심이 오래도록 빛을 발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만들었다. 미영과 함께 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도 눈부셨다. 


박미영과 환상적인 케미를 경험하게 했던 조지혜 역의 배우 이성경이 확인하게 해준 열연도 눈을 사로잡았다. 강력반으로 돌진해 진전 없는 사건이라고 나몰라라 하며 실적만을 우선시하는 선배 형사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며 일침을 가하던 때에 들려오던 명대사는 특히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강렬한 액션과 더불어 카체이싱 장면에서 직접 운전대를 잡아 스릴 있는 연기를 맞닥뜨리게 해준 점도 만족스러웠다. 이와 함께 클라이막스에서 미영의 화려한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 지혜의 대사는 수미상관의 즐거움을 깨닫게 도우며 예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전했다. 



미영과 지혜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화 <걸캅스> 속에서 조력자가 되어준 인물들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전직 국정원 출신 해커라는 놀라운 이력을 보유한 민원실 주무관 양장미 역으로 캐릭터 변신을 시도한 최수영은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민원실에서 남다른 재능을 적재적소에 활용함에 따라 과거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등공신으로 톡톡히 제 역할을 다해 소녀시대 수영에서 배우 최수영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다. 찰진 욕쟁이 연기도 제대로였다. 


더불어 민원실장으로 분해 반전매력을 드러낸 염혜란 역시도 감동을 선사했다. 경찰서에 근무하는 여성들이지만 민원실 인력이 대거 동원됐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리고 의외의 까메오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 깜짝 놀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하정우의 등장이었는데, 짧은 순간에도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줌에 따라 웃음을 자아냈다. 안재홍, 성동일도 갑자기 툭 튀어나와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분위기를 건네서 재밌었다. 


지혜의 오빠이자 미영의 남편 조지철 역의 윤상현은 철없는 백수 남편으로 색다른 연기를 만나게 해줘 이 또한 눈길이 갔다. 깨알 같은 생활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사건의 진상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경찰복을 벗어던지고 하와이안 셔츠를 맞춰 입게 됨으로써 미영과 지혜의 비공식 수사가 활기를 띄어가던 과정도 눈여겨 볼만 했다. 화와이안 셔츠 패션이 매우 잘 어울렸던 점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캐릭터의 전형성과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대한민국 상업영화 특유의 단점이 영화 <걸캅스>에서도 그대로 부각되고, 과한 웃음 포인트가 시시각각으로 표출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 즐기고 말아버릴 작품은 아니었으므로 무게감이 실리는 것도 당연했다.


마약, 클럽문화, 디지털 성범죄, 불법촬영물 유포 등의 시의성 있는 소재를 내세운 작품인 만큼,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영화였기 때문에.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해 여성이 스스로를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모습들이 현실과 다를 바 없어서 이 또한 슬펐다. 미영이 본격적으로 사건에 뛰어든 이유를 암시하는 대사의 울림도 그래서 남달랐다. 



신종 디지털 범죄조직의 리더 정우준 역으로 공포감을 마주하게 한 위하준의 모습도 파격적이었다. 눈빛 연기가 압도적이라 소름이 돋았고, 눈이 뒤집히는 흰자위 연기 역시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뮤지컬 배우로 처음 알게 됐으나 영화 배우로 새롭게 모습을 보인 강홍석의 출연도 반가움을 더했다.


보는 내내 분노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 <걸캅스>였다. 현실도 영화처럼 해피 엔딩이길 바라지만 제자리 걸음 그 자체라 안타까움이 몰려왔음은 물론이다. 



여배우 투톱 액션 코미디 수사물의 좋은 예를 만끽하게 해준 영화 <걸캅스>가 대한민국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으리라 확신한다.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원하는 길이 존재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니 기대해 보려고 한다.  


시의적절하게 탄생한 오락영화의 묘미가 짜릿함을 건네준 시간이었다. 영화 <걸캅스>가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것을 축하하며, 기회가 된다면 후속편 또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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