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니쉬 걸(The Danish Girl) ::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용기를 만나다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풍경화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의 위대한 선택

영화 <대니쉬 걸>은 신원이 확인된 이들 중에서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던 에이나르 베게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멋진 풍경을 화폭에 담을 줄 아는 화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가 어느 날, 아내 게르다의 부탁으로 드레스를 몸에 댄 채 발레리나의 포즈를 취하던 순간 휘몰아치던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스스로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짐으로써 위대한 선택의 여정으로 향하는 과정을 담아낸 영화였다. 

서로를 통해 예술적인 영감을 주고 받으며 화가라는 직업에 있어서는 물론이고 부부로도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던 두 사람에게 닥쳐 온 새로운 국면은 에이나르 뿐만 아니라 게르다에게 있어서도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발걸음을 뗄 수 밖에 없었던 에이나르의 결심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커다란 의미를 전해준다고 봐도 되겠다.

릴리 엘베를 존재케 했던 게르다의 숭고한 사랑

 

깊숙이 간직해 두었던 여성성을 표면적으로 드러내면서 에이나르는 자신의 이름을 릴리 엘베라고 칭한다. 그리고, 그렇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나가던 릴리의 행복 뒤에는 게르다가 감내해야만 했던 숭고한 사랑이 뒷받침되고 있었음을, 영화를 통해 확인하게 되자 마음 한 켠이 찡해져 오는 것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던 남편이 곁에 존재하고는 있으나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봐 주지 않을 때 느껴야 하는 슬픔은 고통 그 이상의 괴로움을 경험하도록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릴리의 곁에 머물던 게르다의 모습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을 옮겨 놓은 듯한 뛰어난 영상미와 배우들의 열연이 탄생시킨 명작의 아름다움

'덴마크의 소녀'라는 의미를 제목에 나타낸 영화 <대니쉬 걸>은 눈을 사로잡는 뛰어난 영상미가 인상적인 작품이기도 했다. 마치 화가의 시선을 따라 풍경이 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여기에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아름다운 명작이 탄생했다고 여겨진다.

특히, 에이나르 베게너이자 릴리 엘베로 팔색조의 매력을 보여준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화가라는 직업에 걸맞는 감성적이면서도 예민한 면모가 에이나르로부터 릴리로의 변화에 이르는 동안 배우의 역량을 통해 세심하게 표현됨으로써 눈동자의 움직임을 포함, 손짓 하나하나까지 눈여겨 보게 만들며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이러한 멋진 캐릭터를 만나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 만큼 최고였다.

더불어, 게르다 베게너를 맡았던 알리시아 비칸데르 또한 눈에 쏙 들어왔음은 물론이다. 끊임없는 고뇌 속에서도 남편의 선택을 존중하고 또 지켜봐 주었던 단 한명의 동반자이자 영혼의 짝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어떤 누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순간을 몇번이고 경험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이로 인하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진짜 사랑의 모습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우리 삶의 이유는,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결국, 우리 삶의 이유에 대해서가 아니었나 싶다. 진짜 여자가 되기를 갈망한 릴리 엘베가 죽음을 불사하면서도 성전환 수술을 받았던 것 역시 그러한 까닭과 맞닿아 있는 것일 테니. 참기 힘든 고통의 몸부림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겨우 눈을 떠 게르다에게 온전한 내가 되었다며 미소 짓던 릴리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성 정체성을 소재로 풀어나가고 있는 영화 속에서 마주하게 된 이야기의 진짜 가치는 그로 인해 빛났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또한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세상의 시선과 더불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드러내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부수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다를 바 없을 테다. 

영화가 끝난 후,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용기를 만난다는 것의 어려움과 편견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인한 괴리가 교차돼 씁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릴리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게 됐다. 게르다에게 모질게 대할 때 만큼은 얄미움을 감추기 힘들었지만.

실화의 재구성을 통해 흥미로우면서 감성적인 터치가 캔버스에 오롯이 남아 있는 분위기를 마주할 수 있었던 영화 <대니쉬 걸>이었다. 릴리 뿐만 아니라 게르다까지 두 여인의 모습을 담아낸 포스터 또한 작품의 취지와 잘 맞아 떨어져서 오랫동안 바라보게 됐던 것도 사실이다. 상영관이 적은 편이었으나 관객들로 가득찬 공간 안에서 작품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는 게 가능했던 만큼, 앞으로도 보다 많은 이들이 온전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