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 :: 비 내리던 여름날에 만난 사랑과 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은 비 내리는 여름날의 정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애달픈 첫사랑의 색깔을 띠며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구두 디자이너의 꿈을 지닌 고등학생 다카오는 비가 올 때마다 학교의 오전 수업에 들어가는 대신, 도심의 정원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구두 디자인 스케치를 하는 것이 취미다. 그러던 어느 날, 연상의 여인 유키노와의 우연한 만남이 시작되면서 비 오는 정원에서의 시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의 공기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하지만 마냥 평온한 나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란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은 채로 소년의 꿈을 응원하던 유키노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실체를 드러낸 순간, 그들 곁에 머물던 보슬비가 어느새 비바람을 동반한 장대비로 변해 빈틈을 파고들기에 이르렀다.  


구두 스케치를 하는 다카오와 그 옆에서 초콜릿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사색을 즐기던 유키노의 연결 고리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존재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둘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할 수 밖에 없었으므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런데 사실,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이 마음 속 깊이 자리잡게 된 건 스토리 때문은 아니었다. 초록의 싱그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풍경들이 아름다운 영상미로 시선을 집중시켰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여름 특유의 푸르름이 인상적이었음은 물론이다.



특히 작품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장소의 신비로움이 감동을 선사했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일본의 신주쿠 공원을 모티브로 탄생됐다는 얘길 듣고 나니 직접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 오는 여름날에 꼭 만나보고픈 언어의 정원이 아닐 수 없었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동안 다카오는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을 접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던 건 바로 유키노의 정체였다. 그렇게, 빗소리 외에 고요히 흘러가기만 했던 시간 속에 파문을 불러 일으킨 궁금증이 모든 걸 한순간에 뒤바꿔놓고야 말았다. 


사실, 유키노는 다카오에게 모든 것을 감추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 거다. 유키오가 읊은 시의 구절을 조금 더 깊이 고민했더라면, 다카오는 금방 알아챘을 테니까.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로 인하여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풀어나가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나중이 되어서야 수수께끼 같았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제대로 된 답을 발견하면서 <언어의 정원>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으로 완벽하게 빛을 발하게 되는데 그제서야 완성되는, 작품에 감춰져 있던 깊은 뜻이 명확히 와닿게 됨에 따라 엿보는 게 가능했던 촘촘한 구성 역시도 도드라졌다. 



하나의 꿈을 향해 앞을 보며 나아가는 다카오의 모습은, 학교 수업마저 제쳐두기 일쑤라 마냥 믿음직스러워 보였던 건 아니다. 그러나 구두 디자이너의 길에 다다르기로 마음 먹은 소년의 진지함 안에 깃든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천천히 다듬어져 나감으로써 빛나게 될 원석에 대한 기대감이 앞섰다.


학창시절의 사소한 일탈이라고 여겨도 좋을 만큼, 비 오는 정원에서도 구두를 향한 꿈과 희망을 놓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 유키노. 다카오와 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방향을 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던 유키노에게선 흔들리는 현대인들의 단면이 드러나 마음이 아팠고, 이와 동시에 얼른 제자리를 찾았으면 하는 응원을 보내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카오와 조금 달랐지만, 은근히 닮아 있던 애틋한 일탈이 삶에 균열이 아닌 균형을 찾기 위한 시도이자 노력이었음을 알게 돼서 아련함이 더해지기도 했다. 



장맛비를 머금은 언어의 정원에는 앞을 향해 나아가는 다카오와 나아갈 수 없어 머무른 채로 주저하는 유키오가 존재했다. 빗방울과 빛이 만들어내는 무지개빛 이미지 속에서 서로를 향한 다양한 감정의 공유를 통해 사랑에 조금씩 가까이 빠져들었던 순간들을 마주하면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꿈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 또한 같은 이유였을 거라고 확신한다.


덧붙여 결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테지만, 나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적절한 마무리였다고 본다. 



멋진 배경을 중심으로 은은하게 들려오던 음악과 스토리의 조화가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물들게 했던 언어의 정원 속 여름날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로 인해 맞닥뜨리게 되는 무지개처럼 잊지 못할 사랑과 꿈을 이야기하며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기에 충분했다.


45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속에 담긴 이야기의 묘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유키노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또다른 작품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 깜짝 등장해 존재감을 뽐내기도 하니, 그녀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두 이야기를 전부 만나보기를 바라는 바다.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감성을 잘 담아낸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이었다. 은근히 독특하면서도 입에 착 감기는 작품의 제목이 특히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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