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데레우스 후원 라이브 :: 온라인 중계로 살아난 별들의 진실
이제는 작년이 되어버린 2020년 마지막 관극은, 12월 30일 수요일 오후 8시에 진행된 뮤지컬 <시데레우스> 후원 라이브 온라인 중계가 차지했다.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초연되었을 때 자첫자막한 이후로 다시 올라온 재연을 보러 가진 않았지만, 방구석 1열 관람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자 멋진 무대와 배우들의 열연이 새록새록 떠올라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버퍼링이 생겨서 당황했던 것도 잠시, 오후 8시에 시작된 중계가 밤 12시까지 송출이 유지됨에 따라 별다른 걱정없이 온라인 관극을 즐기는 일이 가능했다. 러닝타임이 100분 정도라서 한 번 더 보며 뮤지컬 <시데레우스>만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
케플러가 갈릴레오에게 보낸 편지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17세기에 금기시 되었던 지동설을 바탕으로 펼쳐졌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므로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이 종교의 권위를 앞세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태양이 우주 혹은 태양계의 중심이므로 나머지 행성들이 그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과 관련된 연구를 감행한 두 학자의 진실을 향한 여정은 그래서 더욱 눈여겨 볼만 한 가치가 있었다.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끊임없이 별들을 관찰하고 연구함에 따라 발견해 낸 이야기가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에 담겨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와 함께 무대를 통하여 그들이 마주한 우주와 별들의 무한함이 절로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게 펼쳐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뿐만 아니라 객석에서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각도인 정수리샷이 보여짐에 따라 무대 바닥을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순간도 감탄을 터뜨리게 도왔다. 이로 인하여 뮤지컬 <시데레우스> 후원 라이브 온라인 중계로 살아난 별들의 진실이 눈부시게 반짝반짝 빛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운데에 설치된 원형 무대를 두고 케플러의 방은 왼쪽, 갈릴레오의 방은 오른쪽에 있어서 현장에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바라봐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온라인 중계에선 완벽한 2분할을 통하여 한 화면에서 둘의 모습을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마리아까지 등장하면 자연스럽게 3분할이 완성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날 재연 자첫을 하면서 굉장히 놀라웠던 사실은, 초연보다 덜 지루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는 거였다. 새로운 넘버의 추가에 따른 변화가 루즈함을 줄여줘서 훨씬 더 재밌게 잘 봤다. 그래도, 후반부가 좀 지루하긴 했지만.
[CAST]
갈릴레오 : 박민성
케플러 : 정욱진
마리아 : 홍지희
참고로 뮤지컬 <시데레우스> 후원 라이브 온라인 중계의 캐스팅은 위와 같았다. 민성 갈릴레오를 제외하면 욱진 케플러와 지희 마리아는 처음이었는데,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최고였던 데다가 세 사람의 케미 또한 남달라서 보는 내내 흡족했다. 연기와 노래 모두 환상적이었다.
케플러의 호기심이 갈릴레오의 학구열에 불을 붙임으로써 협업으로 탄생된 저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가 불러 일으킨 파장은 필수불가결에 가까웠다.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가설이 막연히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현상을 뒤집어버리는 사건을 통해 진리를 향한 탐구와 열정이 계속되어야 함을 일깨워줘서 의미있었다.
학문에 따른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도전을 통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던 케플러, 눈 앞에 다가온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울 줄 알았던 갈릴레오의 모습은 희망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종교재판으로 인하여 갈릴레오는 스스로 연구를 멈췄지만, 그럼에도 진실은 무사히 우리 앞에 도착하고야 말았으니까.
갈릴레오와 케플러가 과학에 매진하며 진실을 추구해 나갈 때 마리아는 종교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로 나타나 긴장감을 고취시켰다. 갈릴레오의 딸 비르지니아는 수녀가 되어 마리아 첼레스테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교황청의 질문에 답을 해나가는 동안 믿고 있던 신념에 변화가 생기는 장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버지의 방에서 찾은 편지들이 갈릴레오가 이단이 아님을 증명시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공연을 처음 관람한 이후로 기억에 남았던 건 멋진 무대와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넘버였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진 뮤지컬 <시데레우스>는 마냥 잔잔한 공연은 아니었고, 이로 인해서 웃음이 빵 터지는 장면도 확인할 수 있어 재밌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나는 곡을 말하라고 한다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를 출판하고자 애쓰는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노력이 담긴 "더 가까이"를 꼽을 수 있겠다.
다만, 이날의 "더 가까이"는 중계용으로 촬영해서 그런지 몰라도 절제미가 도드라져서 좀 아쉬웠다. 배우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애드립과 디테일이 함박미소를 짓다 못해 깔깔거리게 만드는 넘버로, 일명 약팔이송으로 불리고 있으니 이 곡 만큼은 공연장에서 생생하게 즐기는 것 밖에 방법이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제일 좋아하는 곡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바로 케플러의 솔로곡인 "살아나"다. 현실을 살아가게 해주는 상상의 힘이 포근한 멜로디와 따뜻한 가사에 묻어나와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알 수 없기에 상상할 수 있다는 노랫말 또한 깊이 와닿았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재연을 통해 가장 듣고 싶었던 넘버였는데 여전히 심금을 울려서 감동적이었다.
눈부신 빛들을 견디고
무성한 별들을 지나서
끝없는 항해를 할거야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말도 안 되는 꿈이라도
펼쳐진 여백 속에 상상들을 그리면
멈춰진 어둠도 하나 둘 살아나
뮤지컬 <시데레우스> 넘버 '살아나' 중에서
기대를 뛰어넘는 촬영 퀄리티와 넉넉한 관람시간이 엄지를 척 치켜들게 만들었던 뮤지컬 <시데레우스> 후원 라이브였다. 이런 온라인 중계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별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무대 전체에 살아나는 우주의 광경과 어우러져 푹 빠져들었던 한때였다. 암전 사이에 들려오던 박수와 함성소리가 온라인 관객의 마음을 대신하는 것만 같아 이 또한 유쾌함을 더했다.
2020년을 마무리하며 2021년을 맞이하려는 시점에서 보기 좋았던 공연으로,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관극의 불씨가 서서히 살아나게 만들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니, 코로나가 종식돼 다시 공연장으로 향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찾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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