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이스티드 :: 헛된 삶은 없다 (유주혜, 김지철, 홍서영, 임예진)

브론테 남매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던 록 다큐멘터리 뮤지컬 <웨이스티드>는 새로운 형식과 장르를 표방한 공연으로 눈길을 잡아끌었다. 이로 인하여 다큐멘터리 형태로 진행되는 샬롯 브론테의 인터뷰 안에서 네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다다르기까지의 인생을 확인하게 돼 의미가 남달랐다. 

 

 

그중에서도 브론테 자매로 명성이 자자한 '제인 에어'의 샬롯 브론테, '폭풍의 언덕'을 선보인 에밀리 브론테, '아그네스 그레이'를 쓴 앤 브론테와 더불어 화가 겸 작가로 활동을 해왔다고 알려진 브랜웰 브론테의 생애까지 마주하는 일이 가능해서 흥미로웠다. 특히, 남매들이 전부 예술가의 피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귀기울이게 도왔던 넘버의 매력이 황홀함을 자아냈다. 4인조 라이브 밴드가 들려주는 멋진 연주에 포크 록, 하드 메탈, 개러지 펑크, 싸이키델릭 펑크,  컨트리 락, 블루스, 가스펠 록 등이 곁들여져 신선한 분위기가 도드라졌던 것이다. 락 사운드의 향연이 근간을 이루되, 오직 록 음악만이 전부는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 

 

[CAST]

샬롯 : 유주혜

브랜웰 : 김지철

에밀리 : 홍서영

앤 : 임예진 

 

19세기 초 영국을 배경으로 예술가의 길을 향해 나아갔던 브론테 남매의 시간은 가난한데 공부는 잘해서 애매한 인생이라는 극중 대사와 잘 어울리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희로애락이 반복되는 삶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기에, 뮤지컬 <웨이스티드>의 타이틀에 걸맞는 이야기를 맞닥뜨릴 수 있어 감명깊었다. 

 

샬롯, 에밀리, 앤은 오직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결혼과 가정교사 일자리만이 하워스를 떠날 수 있는 방법의 전부와 다름 없었던 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의 열정을 불태우며 꿈을 이뤄나가려 애썼다. 세상의 편견으로 말미암아 필명으로 출판을 해야 할 때가 존재하긴 했지만, 결국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작가로 우뚝 서게 되었으니 노력의 결실이 빛을 발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브랜웰 같은 경우에는 남자라서 선택권이 그나마 많은 편이긴 했지만, 글쓰기에 열의를 쏟던 자매들과 달리 특출난 재능이 없어 여러 분야를 기웃거리던 한때가 기억에 남았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지원에 힘입어 기세등등함을 선보일 땐 조금 얄미워 보일 때가 있었으나 브론테 자매의 스토리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씬 스틸러였음을 인정한다. 

 

덧붙여 이날 뮤지컬 <웨이스티드> 자첫을 통하여 유주혜 샬롯, 김지철 브랜웰, 홍서영 에밀리, 임예진 앤이 최애 페어로 등극했음을 밝힌다. 연기와 노래 뭐 하나 빠지지 않을 뿐더러 4명의 배우가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선사한 합이 최고라 커튼콜 때 기립 박수로 화답할 수 있어 흡족했다. 나에게 있어 굉장히 완벽한 공연이었던지라 보는 내내 뿌듯함이 앞섰다. 

 

다만, 공연이 한창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2관이 매우 추우니까 이 점을 고려해서 옷을 따뜻하게 착용하고 관람하기를 바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겉옷을 벗어 품에 안고 1막을 보다가 추위를 느껴 인터미션 때 주섬주섬 걸쳐 입었다. 어쩐지, 다른 관객들이 겉옷을 입은 상태로 관극 준비를 하는 까닭이 존재했음을 제대로 실감하게 돼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혜 샬롯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하여 걸음을 내딛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멋졌다. 샬롯 브론테로 인하여 브론테 자매의 글이 세상이 나올 수 있었기에 보는 내내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속에서 바다를 처음 만난 순간, 황홀함에 빠져 설레는 목소리로 열창하던 넘버가 감명깊게 다가왔다.

 

지철 브랜웰은 뮤지컬 <웨이스티드>의 감초 역할로 존재감을 발산하며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된다, 뭐든 된다!]  할인으로 예매해서 보러 간 거였는데,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브랜웰이 부르던 넘버 가사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여기에 더해 복싱 배우던 장면에서 주혜 샬롯의 땋은 머리에 맞아 움찔하며 "이건 뭐야!"를 외쳐서 폭소를 자아내게 만들었고, 객석에 질문을 던졌으나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자 한 번쯤은 대답을 해줄 만도 한 거 아니냐며 슬쩍 미소 짓던 순간도 기억에 남았다. 라다넘 넘버에서 들려오던 감미로운 목소리도 좋았다. 소장품으로 알려진 베레모를 쓴 착장도 볼 수 있어 재밌었다. 

 

뿐만 아니라 샬롯과 브랜웰의 불륜 서사를 가감없이 표출하며 리얼리티를 살린 점도 록 다큐멘터리 뮤지컬 <웨이스티드>의 컨셉과 잘 어울렸다. 

 

서영 에밀리는 낯선 곳을 싫어해서 하워스를 떠나지 않으려 하는 인물로, 글을 통하여 거침없이 자유로운 영혼의 분위기를 풍기며 초월자의 면모를 드러내 탄성을 내뱉게 될 때가 많았다. 1막과 달리 2막에서는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나와 무대를 누비던 찰나도 멋졌다. 게다가 서영 에밀리의 신비로운 음색이 색다른 장르로 이루어진 음악과 잘 맞아서 귀가 즐거웠다. 다채로운 멀티 캐릭터를 소화할 때 뿜어져 나오던 카리스마도 대단했는데, 그중에서도 시인 로버트 사우디를 연기하며 노래할 때의 매력이 어마어마했음을 밝힌다. 로버트 사우디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고개를 내젓게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에밀리와 키퍼가 함께 하는 듀엣곡에선 브랜웰이 반려견 키퍼로 열연을 펼쳐서 눈에 쏙 들어왔다. 커튼콜 속 서영 에밀리의 손하트도 오래도록 기억할 거다. 

 

예진 앤은 신실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언젠가 만나게 될 인생의 동반자를 기다리며 올곧게 살아가는 태도가 돋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결혼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닫고 난 뒤, 흑화하며 선보인 모습에 더 푹 빠지게 되었음을 인정한다. 클레어 에제는 고음, 리디아는 중저음 위주로 다양한 음역대를 들려주던 한때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도왔음은 물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영 에밀리와 예진 앤이 함께 하는 공연을 또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두 배우는 온라인 중계로만 마주하다가 이번 작품에서 첫 만남을 가진 거였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랩도 잘하더라. 

 

 

인이어 마이크를 차고 있었지만, 핸드 마이크를 손에 쥐고 노래하는 장면도 상당해서 이 역시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배우들 의상 한 켠에 자리잡은 마이크 꽂는 주머니도 꽤 귀여웠다. 핸드 마이크는 단순히 노래할 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브론테 남매가 글을 쓸 때도 펜의 기능을 선보여서 강렬한 여운을 안겨주었다.  

 

공연의 러닝타임이 인터미션을 포함해서 150분이라 길게 느껴지는 감이 있긴 했지만, 막상 커튼콜이 시작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덕분에 브론테 남매의 삶을 조명하는 시간을 통하여 헛된 삶은 없다는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우리의 인생이 쓸모없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 공연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뮤지컬 <브론테>를 먼저 본 입장에서 전혀 다른 결을 지닌 공연이 새로움을 전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브론테를 주인공으로 제작된 두 작품 중 개인적으로는 뮤지컬 <브론테>보다 뮤지컬 <웨이스티드>가 취향에 더 잘 맞았다. 

 

이날은 공연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에 눈이 펑펑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점도 뜻깊었다. 그래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게 예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상을 뛰어넘는 음악의 힘이 배우들의 활약과 하나가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뮤지컬 <웨이스티드> 초연을 처음 본 날 레전드 공연을 맞닥뜨릴 수 있어 짜릿했다. 

 

한 눈에 알아 본 나의 최애페어, 파이팅! 나도 파이팅! 우리 모두의 오늘과 앞으로의 인생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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