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 철학자와 시인의 신명나는 랩배틀 (정민, 치타)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는 HJ컬쳐가 올해 처음 선보인 신작 공연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무대를 확인하게 해줘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특히 공연과 관련된 정보 중에서도 캐스팅 소식을 처음 듣자마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로 인하여 지금까지 만나 본 적 없는 새로운 장르의 작품을 마주하는 일이 가능해 짜릿함이 앞섰다.

 

 

작품의 줄거리는 청년 시인 멜레토스로부터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 나와 변론을 하며 펼쳐지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었다. 그런데 공연 속 이야기의 대부분이 랩을 통하여 힙합 안에서 진행됨에 따라 기존의 뮤지컬과 뚜렷한 차별점을 일깨워줘서 신선한 자극을 경험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음을 밝힌다. 

 

로비마저 예사롭지 않았던 공연이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였지만, 이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허나 입장을 기다리며 문이 굳게 닫힌 공연장에서 흘러나오던 화려한 랩핑이 귀에 꽂혔고 바로 이 순간, 그제서야 심상치 않은 예감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CAST]

소크라테스 : 정민

멜레토스 : 치타

 코러스 : 장현동, 이여진, 김하연,

전우형, 오수진, 진선희

 

코러스 배우들의 노래로부터 비롯된 공연은 2층에서 등장한 멜레토스가 무대로 걸어 내려가는 동안 읊조리던 랩의 향연을 통하여 화룡점점을 찍으며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치타 멜레토스의 랩을 연극과 뮤지컬의 성지로 명성이 자자한 서울 혜화역에 자리잡은 대학로 공연장에서 듣게 될 줄은 미처 몰랐기에 감격스러운 마음이 컸는데, 연기도 능숙하게 잘해서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함께 소크라테스를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의 압도적인 카리스마도 탄성을 내뱉게 도왔다. 

 

정민 소크라테스는 노래와 랩을 번갈아 소화하며 색다른 면모를 뽐내서 눈여겨 볼만 했다. 엄지를 치켜들고 "이거야, 이거!"를 외칠 땐 웃음이 빵 터졌는데, 재판이 흘러가는 동안 불리한 판결을 받게 돼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굽히지 않던 찰나에는 철학자다운 진지함이 도드라져 인상적이었다. 덧붙여 자신만의 스타일로 노래 부르듯이 선보이던 랩도 멋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랩 만큼은 치타 멜레토스가 한수 위였기에, 당당하게 랩배틀을 신청한 가운데서 정민 소크라테스의 주눅 든 모습을 맞닥뜨리게 돼 웃음이 빵 터졌다. 한편, "힙합으로 나한테 덤비면 발림~ 왜 일을 크게 벌림? 지금 좀 쫄림? 사람들 지금 졸림~" 등으로 자연스레 화답하던 치타 멜레토스의 달변에는 정말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원형으로 구성된 2중 회전무대의 활용과 조명의 쓰임새도 작품의 취지에 걸맞게 화려함을 뽐냈다. 코러스 배우들은 노래 담당, 소크라테스는 노래와 랩 반반, 멜레토스는 랩 담당으로 저마다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서 보기 좋았다.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넘버 중에서는 멜레토스가 들려주던 '구름'과 '속지 마', 소크라테스의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 지혜로운 자(Wise Man)'가 귀에 콕 박혔다. 

 

소크라테스로 말미암아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의 중요성을 깨닫게 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고, 공연 시작 전부터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던 멜로디의 정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 지혜로운 자(Wise Man)'였음을 곧바로 알 수 있어 뜻깊었다. '구름'은 멜레토스의 존재감을 극대화시켜주는 등장곡이었으며, '속지 마'는 가사의 중독성이 남달라 지금도 계속 입에 맴도는 것이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이렇듯 참신한 랩뮤지컬의 세계로 안내해 준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는 랩퍼와 뮤지컬 배우가 선사한 뜻밖의 만남이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선보인 공연이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스토리 라인 자체의 매력을 느낄 수 없어 이 점이 굉장히 아쉬웠다. 빛 좋은 개살구를 연상시킴으로써 알맹이가 제일 부실하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로써 초반에 관심을 집중시키다가 중반쯤 늘어져서 눈이 감겨오다 결말과 커튼콜에 다다라 심금을 울리는 무나네 특유의 반복되는 패턴에 고개를 내저어야 할 때가 상당했다.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창작물로 제작하는 것까진 좋은데, 여기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첨가되었더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알려진 내용에 단순히 노래를 첨가하는 것이 전부인 걸로 보여져서 무나네 공연은 볼 때마다 매번 해소되지 않은 갈증으로 목이 마르다. 

 

근데 캐스팅은 또 기가 막혀서, 고민이 되는 거다. 뮤지컬 배우와 랩퍼의 조합을 봤으니까 랩퍼와 랩퍼, 뮤지컬 배우와 뮤지컬 배우, 랩퍼와 뮤지컬 배우의 케미도 궁금해져 버리고야 말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관극을 했던 관계로, 크리스마스 아이템인 머리띠를 착용하고 커튼콜에 임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을 보게 돼 기뻤다. 게다가 커튼콜 데이라서 사진촬영까지 허용되니 금상첨화였음을 말해 무엇하리. 덧붙여 올화이트 컬러 의상 패션으로 무장한 정민 소크라테스는 앞모습은 물론이고 뒷모습마저 남다른 피지컬을 표출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이와 달리, 올블랙으로 나타난 치타 멜레토스의 스타일링도 최고였다. 옷에 마이크를 집어넣을 수 있는 부분이 장착되어 주머니 용도로 쓰여지던 한때를 보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덧붙여 배심원의 드레스 코드는 그레이라고 한다. 흑과 백 사이의 회색이라니, 이에 따른 의미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정민 소크라테스를 따라 무대 위로 종종 걸음을 하던 배우들의 모습도 귀여웠다. 공연 중 치타 멜레토스에게 이쪽으로 와 보라더니 원하는 위치에 서자 정민 소크라테스의 입에서 갑자기 "이제 우리 사이가 멀어질 것이오!"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그러자마자 이중 원형구조 회전무대가 움직여 진짜로 두 사람이 멀어지던 장면도 폭소를 만발하게 했다. 여기에 "어디 가시오!"라던 정민 소크라테스의 덧붙임도 웃겼다. 

 

커튼콜 데이라서 사진 찍느라 호응보단 카메라에 집중하게 돼서 조금 미안했지만, 언제 또 이런 시간을 접할 수 있겠나 싶어 열심히 담아봤다. 무대와 좌석 사이의 거리감이 만만치 않아 잘 나온 건 없는데 그래도 기념으로 남기는 일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기에 다행이구나 싶었다.  

 

 

이날 내가 앉은 자리는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의 객석 2층 좌석이 시작되는 14열 중앙이었는데, 조금 먼 것만 빼면 쾌적한 시야를 자랑해서 맘에 들었다. 공연장 자체가 1층과 2층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1층의 연장선상에 놓인 상태였어서 흡족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여 무대 위 배우들과 함께 객석의 관객들이 함께 하는 사진촬영이 진행돼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어 행복했다. 커튼콜도 길어서 나름대로 신나게 즐겼다. 

 

로비에 마련된 무나네 적립부스에서 재관람 카드 만들고 엠디부스 구경하는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던 순간도 잊지 못할 것이다.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 보러 오길 잘했다 싶었다. 프리뷰 할인까지 받아 볼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로비 벽면에 부착된 메리 크리스마스 풍선 문구와 공연장 입구에 매달린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도 앙증맞았다. 덕분에 올해 크리스마스는 제대로 만끽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객석에서 가사를 알아볼 수 있도록 프롬프터까지 무대 양쪽에 설치한 무나네의 진정성에 감동 받았던 하루이기도 했다. 퇴장 전에 메리 소크라테스마스 문구를 프롬프터에서 볼 수 있었던 점도 맘에 쏙들었다. 공연만 좀 더 취향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슬프다. 슬픈데 또 보고 싶단 열망이 없지 않아서 재관람을 고민 중인 나를 나도 잘 모르겠다. 갈대 같은 연뮤덕의 심정이란! 

 

그 와중에 뮤지컬 <소크라테스 패러독스>가 연작으로 공개될 변명시리즈 첫 작품이라고 해서 다음 작품에 대한 호기심 또한 증폭됐다. 이건 뭐 차차 알게 될 테니 때를 기다려 본다. 마지막으로,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부각되는 것이 무나네 공연의 특성인지라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로 점철된 공연을 올려주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철학자와 시인의 신명나는 랩배틀의 묘미가 살아 숨쉬는 공연과 함께 했던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던지라 기상천외한 랩뮤지컬과의 시간이 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역시 관극! 관극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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