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지리산 :: 국립공원 레인저를 둘러싼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스포 있음)

초호화 캐스팅으로 구성된 출연진과 유명 제작진의 의기투합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tvN 드라마 <지리산>이 16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국립공원 레인저를 둘러싼 판타지 미스터리 스릴러가 확인하게 해준 이야기의 묘미는, 지리산을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명명하며 뜻밖의 사건사고를 통하여 시청자들을 예측 불허의 세계로 안내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지리산 국립공원 최고의 레인저로 그 누구보다도 산을 잘 알지만, 다시는 산에 오르지 못하게 된 서이강과 코마 상태에 빠져 생령이 된 채로 산을 떠돌게 된 강현조가 자신들마저 비극으로 밀어넣은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호기심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교차가 반복되는 장면으로 말미암아 이 작품이 김은희 작가의 전작 중 하나인 드라마 <시그널> 산 버전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게 아님을 알게 됐지만 말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 시대가 발발함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이 실내가 아닌 야외활동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그로 인하여 등산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드라마 <지리산>과의 만남은 뜻깊은 시간을 전해주고도 남았다. 이와 함께 산을 지키고 자연을 보호해 나가며 사람들을 돕는데 힘쓰는 국립공원 레인저의 역할과 존재감을 새로이 깨닫게 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작품 속에서 광활한 지리산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전해받게 되는 순간이 존재해서 마음이 따뜻해질 때가 많았다.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산을 찾는 사람들의 사연이 때때로 안타까움을 전하는 찰나도 없지 않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는 산의 무게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눈여겨 볼만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산불 진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 에피소드가 매우 인상깊게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산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절대 해서는 안될 불법행위를 일목요연하게 짚어주던 시간들도 충분히 수긍이 갔다. 

 

반면에 지리산의 수호신과 다름 없어 보였던 레인저들을 향해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이곳에서 비롯된 사건의 서막이 눈 앞에 나타났을 땐 범인의 정체와 살인의 이유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리하여 김은희 작가 특유의 미스터리 스릴러가 빛을 발하겠구나 싶어 기대감이 증폭됐는데, 예전에 봐온 작품들에 비하여 아쉬움이 없지 않았기에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드라마였음을 밝혀 본다. 

 

지리산이 실제로 무속신앙의 발원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을 발판 삼아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깨우는 부분이 신선함과 생경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해준 때도 없지 않았다. 그 와중에 지리산국립공원전북사무소 자원보전과 직원 김솔이 지리산과 관련된 문화, 역사, 인문학에 이어 산신제, 무속, 성모 신앙 등에 관련된 이야기를 신봉하며 미신마저 미신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니 이때부터 어느 정도 감이 왔다. 그래서 사건의 진범인 김솔이 낙석에 깔려 산의 응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도 이해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는데, 조금 애매한 것 같다는 생각을 감추기는 힘들었다. 부상을 당할 지언정, 살아서 죄값을 치르는 게 맞는 것 같아 보여서. 

 

 

지리산에서 2022년 일출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동안 마주하게 된 생령에서 벗어난 인간 강현조와 휠체어가 아닌 두 발로 산을 오른 서이강의 조우는 판타지에 가까워 보였지만, 이야기의 마지막 만큼은 해피엔딩을 선사해줘서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두 사람이 간절히 원했던 목표를 달성함에 따라 마음의 짐을 내려 놓는 일이 가능해짐으로써 건강한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아 마냥 판타지라고 생각되는 건 또 아니었다. 그들이 발을 딛고 선 장소는 다름 아닌, 지리산이었기에. 

 

다만, 간접광고(PPL)의 덫을 드라마 <지리산> 역시도 피하지 못했음을 알게 돼 슬펐다. 네파와 에그드랍까지는 그냥저냥 볼만 했는데, 지리산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갔다 나오던 현조의 부모님이 과태료를 물면서 건강에 좋은 거라며 비비랩 유산균을 통째로 레인저에게 건네던 장면은 옥의 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마도 제품이 노출되어야 하는 조건에 지리산의 풍경이 포함되어야 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과했다. 자연스러운 장면 연출이 이루어지지 않아 불호였다. 

 

덧붙여 드라마 <지리산>에서 만나보는 일이 가능했던 배우들의 열연은 보기 좋았다. 서이강(전지현), 강현조(주지훈), 조대진(성동일), 정구영(오정세), 박일해(조한철), 이양선(주민경), 이다원(고민시), 김솔(이가섭), 김계희(주진모), 윤수진(김국희), 이문옥(김영옥), 김웅순(전석호)의 활약과 더불어 강현조 가족으로 특별출연하며 얼굴을 내보인 김갑수, 남기애, 이선빈의 모습도 반갑기 그지 없었다. 현조와 연락을 주고 받던 승아가 여동생이었다는 점도 파악 완료. 이세욱 역의 윤지온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지리산의 실과 바늘로 자리매김했던 서이강, 강현조 콤비는 그야말로 최강조합의 레인저 군단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티격태격하며 신뢰를 쌓아가던 둘의 케미가 아름다웠다. 초반 회차 CG는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아주 잠시 뿐이라 큰 문제가 없었고, 드라마 <지리산> OST 중에서는 이소라의 '물들인다'와 방탄소년단(BTS) 진이 열창한 'Yours'가 귀를 기울이게 도왔다. 

 

산을 배경으로 한국적인 정서를 가미해 제작된 작품의 매력도 개성으로 여겨졌다. 허나 드라마 <지리산>도 다른 작품처럼 장단점이 공존했는데, 유독 혹평이 이어져서 좀 놀랐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새로운 도전의 가치가 빛났던 건 무조건 인정이다. 

 

서이강 역의 전지현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지리산의 날다람쥐 같았던 서이강의 모습이 눈부셨고, 전지현은 여전히 예뻤다. 연기도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을 구하려 거침없이 산불 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움직이던 이강의 전력질주는 드라마 <지리산>의 명장면으로 손꼽아도 될 듯 하다. 

 

 

여기에 더하여 드라마 <지리산> 7회에서 벌어진 지리산 국립공원 한마음 축전 장기자랑 대회 또한 웃음을 전했다. 서이강 역의 전지현이 노래 '아모르파티'를 흥겹게 부르던 모습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곁에서 개성 넘치는 분장과 패션 스타일링으로 안무를 맡은 팀원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었기에, 화기애애하면서도 발랄한 분위기가 유쾌함을 극대화시켰다. 

 

가끔씩 자연의 경이로움에 공포감이 드는 순간이 있는데 지리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면을 통하여 보는 것일 뿐인데도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산이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위로를 주는 곳인지를 피력하던 레인저의 말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산에서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 레인저의 임무라는 얘기도.

 

언젠가 기회가 되어 산에서 레인저를 만나게 된다면, 속으로나마 고마움의 인사를 전해야겠다. 그리고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 오면, 나에게는 미지의 세계와 다름 없는 지리산으로 발걸음을 내딛어 보고 싶다. 등산 장비 잘 챙겨서 안전하게,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웃게 될 날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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