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1446 ::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뮤지컬 <1446>의 막이 올랐다. 트라이아웃과 쇼케이스를 거쳐 이루어진 초연으로, 2018년인 올해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하며 무대 위에 펼쳐진 이야기는 실로 엄청났다. 


양녕대군 대신 세자의 자리를 이어받게 된 충녕대군이 진정한 성군으로 거듭나기까지, 이도의 인간적인 면모와 더불어 왕의 자리에서 일구어낸 수많은 업적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세종대왕의 일대기가 웅장한 음악과 역사 속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돼 흥미로움을 가중시켰다. 



꽤나 많은 제작비가 투자된 작품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랬다. 조선시대 특유의 고전미가 무대 곳곳에서 드러나 눈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배우들이 갖춰 입은 전통의상의 아름다움이 돋보였고, 여기에 스릴 넘치는 액션 씬들이 가미돼 보는 재미 또한 남달랐다. 


이와 함께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되던 문의 움직임 역시도 호기심을 자아냈으며, 1막과 2막 내내 적당한 긴장감과 유연함을 필두로 세종대왕의 생애를 되짚어보게 만들어 준 점도 볼만 했다. 


다만, 공연의 제목을 통해 기대했던 내용과 실제로 관람한 뮤지컬 <1446>에 차이점이 많았으므로 이 점은 아쉽게 느껴졌다. 세종 28년인 서기 1446년에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과 관련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룰 것으로 생각했는데, 세종대왕의 삶 전체를 시간 순서에 따라 조명함으로써 평면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많았다고나 할까? 


여러가지 업적을 달성하기 위한 시련의 나열이 반복돼 어느 정도의 지루함은 감수해야만 했다. 그로 인하여 확실한 포인트를 정해두고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나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타이틀에 담긴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드는 공연이었다. 악역으로 등장한 전해운보다 오히려 태종과 양녕의 임팩트가 훨씬 더 강해서 1막의 도입부를 통해 경험하게 된 카리스마는 대단했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늘어지는 부분이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러닝타임이 꽤 길어서 조금 쳐냈으면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1446>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 작품 안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으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론이고 백성들을 위한 글자인 한글 창제를 통해 애민정신을 실행에 옮겼던 주인공의 또다른 시간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한 나라의 왕이기에 앞서 인간으로 존재했던 이도의 마음 속 고뇌까지 접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이로 인한 애처로움이 묻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고민이 거듭되는 존재가 사람인데, 조선시대를 이끌어야 하는 왕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쌓여가는 근심이 어마어마했을 거라고 짐작되는 바다. 


나는 비록 세종대왕의 시대를 함께 했던 백성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글의 우수성을 직접 보고, 읽고, 쓰면서 체감할 수 있는 지금이 무척이나 영광스럽다. 그런 이유로 아름다운 우리 문자의 소중함이 더 깊이 와닿게 돼 마음이 찡해져 왔다. 

  


[CAST]

세종 : 정상윤

태종 : 고영빈

소헌왕후 : 김보경

전해운 : 이준혁 

양녕 & 장영실 : 박정원

운검 : 이지석 


앞에서 언급했던 스토리상의 단점은 배우들의 열연이 보완하고도 남았다. 세종대왕으로 타이틀 롤을 맡은 정상윤 배우는 형의 자리를 꿰찼다는 죄책감과 아버지의 정치적 간섭 아래 이리저리 끌려 다님으로써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던 세자의 시간을 지나 어느새 근엄한 왕이 되는, 드라마틱한 성장을 잘 보여줘서 만족스러웠다. 어림을 연기하던 모습은 살짝 낯설긴 했지만 "왕명이다!"를 외치던 찰나가 확실한 변화를 마주하게 해줘서 최고였다. 드디어 진짜 왕이 됐구나 싶어서.


왕이 되어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쳐내던 장면 속에서 4군 6진을 개척한 장면은 특히, 학창시절에 교과서를 통해 배운 세종대왕의 활약상과 겹쳐져 아련함을 건네기도 했다. 더불어 장영실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에 품었던 뜻을 이루고자 설렘을 온몸으로 표출하던 순간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때 영실에게 고기 좋아하냐면서 구워먹자고 말하더니 "한 번만 뒤집어서 치이익~"하는 애드립을 시전하는데 웃음이 빵 터졌다. 역시나 필요할 때 적당한 양념을 곁들일 줄 아는 MSG 장인이구나 싶었다.


양녕을 폐위하고 충녕을 세자의 자리에 앉힐 수 밖에 없었던 태종의 속내는 고영빈 배우마의 위엄 넘치는 포스로 이목을 잡아끌었다. 비중이 많진 않았으나 그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발하기에는 충분했다. 소헌왕후 역의 김보경 배우는 꾀꼬리를 떠올리게 하는 맑은 목소리가 귀를 기울이게 했고, 세종을 위하는 진심이 오롯이 느껴져 애달팠다. 시간이 흘러가는 상황을 목소리의 달라짐을 통해 확인토록 해줬던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악역이지만 과거의 아픈 상처를 지님으로 인해 마냥 미워할 수 없었던 전해운은 이준혁 배우의 인생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완벽했다. 태종으로부터 세종에 다다르기까지 복수를 위해 숨죽이던 시간 속에서 은근하게 나타나던 날선 시선과 분노가 눈에 들어왔고, 예상을 뛰어넘는 고난이도의 넘버를 자유자재로 소화함에 따라 감탄을 불러 일으켰다. 역시나 기억에 남는 넘버는 '독기'였다.


양녕과 장영실로 1인 2역을 선보인 박정원 배우도 훌륭했다. 왕이 되기를 원치 않았으나 맏이라는 이유로 세자가 됨으로 인해 방탕한 삶을 이어나갔던 양녕. 그가 나아간 길의 방향이 옳다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양녕의 마음 역시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게다가 정원 양녕이 매우 치명적이었던 터라 시선을 빼앗기고야 말았다.


이와 달리, 장영실로 분한 박정원 배우는 참 귀여웠다. 세종과의 만남으로 꿈을 펼쳐 나가던 영실의 최후는 시작과 달랐으나 이 또한 그가 선택한 길이었으니 후회는 없겠다 싶었다. 참고로, 장영실과 관련된 에피소드에는 픽션이 많이 첨가되어 있으니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보는 것이 좋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차이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지석 배우의 운검은 캐릭터에 맞는 무술 실력이 눈에 띄었다. 커튼콜에서도 무대 뒷편에서 세종을 지켜주는 듯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선 모습이 포착돼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주연 배우들 외에 앙상블 배우들의 뛰어난 실력도 뮤지컬 <1446>을 기억하는데 있어 큰 힘이 되어줄 것임을 안다. 



실존인물들의 삶을 재탄생시키는 작품을 보게 될 때는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내용 전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대신,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분명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뮤지컬 <1446> 역시도 마찬가지니까 공연 관람 후에 정보를 수집해 올바른 사실을 입력해 두기를 바라는 바다.


사진 속의 포토존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던지라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제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등불과 문 모양의 패널을 마련해 두었는데 그 이유는 공연 속에서 확실하게 알게 돼 뜻깊었다. 무대 바닥에 놓인 등불들의 은은한 빛의 향연 사이로 펼쳐지던 유려한 독무와 한글의 창제 과정을 넘버로 풀어내던 장면도 기억에 남았다.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2018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있어서도 1446년은 큰 의미를 지니는 해라는 점에서 뮤지컬 <1446>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다.


세종대왕 못지 않은 성군을 다시 또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세종대왕이 남긴 자취와 업적을 다시금 머리 속에 저장해 두게 되었다. 



스물 여덟자로 이루어진 훈민정음은 문자로의 가치는 물론이고 훈민정음이 뜻하는 의미까지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들며 감탄을 내뱉게 한다. 그러니, 계속해서 한글을 사용하며 함께 살아갈 우리는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넘어서도 이 문자의 가치를 잊어서는 안되겠다.



공연장과 작품의 취지가 잘 맞아 떨어져서 색다른 재미까지 만나볼 수 있었던 뮤지컬 <1446>이었다. 죽여서 사는 왕이 아니라 살려서 사는 왕이 되겠다던 세종대왕의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가 익숙한 사실과 조화롭게 접목됨으로써 좋아하는 공연을 통해 맞닥뜨리게 돼 즐거웠다. 역사공부까지 절로 되는 기분이라 일석이조였던 하루여서 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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