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 ::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사계절의 맛과 멋

★ 맛있는 음식과 함께 나를 위한 답을 찾아가는 시간 - "안녕, 나의 작은 숲" 


먹어도 먹어도 음식으로는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속을 든든히 달래기 위해선, 마음의 허기짐을 위로할만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앞서 언급한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므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 보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건 아닐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적 감성으로 다시 태어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동명의 원작 만화는 물론, 일본 영화와도 결을 달리하며 새로운 재미를 전했다. 사계절이 모두 담긴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내기 위해 도시를 떠나와 고군분투하던 혜원의 삶은, 안쓰러움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며 연신 공감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작품 속에 푹 빠져버리게 만들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를 묻자 "배고파서 내려왔어."라고 대답하던 혜원의 한 마디에 녹아있는 인생의 고단함이 어찌나 절절하게 느껴지던지, 연애와 취업을 포함해 그녀를 무너뜨린 고단한 현실이 지친 현대인들의 일상과 큰 차이가 없어 보는 내내 짠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혹은 몇일 지난 음식으로 연명했으니 당연히 배가 고팠을 것이다. 무엇하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한 채 반복되는 하루를 이어갔으니, 마음 또한 허기졌을 테고 말이다




추운 겨울의 어느 날 고향집에 내려오자마자 남은 쌀을 탈탈 털어 밥을 짓고, 밭에서 꽁꽁 언 배추를 뽑아 배춧국을 끓여 식사를 해치운 뒤에 드러눕는 모습이 그래서 더 편안해 보였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를 반죽해 수제비를 만들고, 배추전을 해먹는 장면에선 군침이 절로 돌았다.





싸늘했던 집이 사람의 존재만으로 온기를 품고 곁을 내어주니 그제서야 여유를 찾고 숨을 돌리는 혜원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다행스러움이 느껴졌다. 장을 보기 위해서는 먼 거리를 나가야 하기에, 자급자족하며 시골의 생활에 만족해 나가던 느림의 미학도 긴장감을 조금씩 해소하도록 도우며 영화의 묘미를 잔잔히 즐기게 해주었음은 물론이다.


 



음식이 만들어지기에 앞서, 재료들을 얻기 위해 씨앗을 심고 작물을 수확하는 과정 또한 오롯이 혜원의 몫으로 남겨 이로 인한 결실이 전하는 뿌듯함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쉽지 않지만 이로 인해 만끽하게 되는 즐거움이 큰 만큼,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는 순간들마저도 의미가 남달랐다.

  

혜원의 내레이션을 통해 그녀가 경험한 생의 단면과 더불어 요리를 위해 견뎌야 하는 단계 또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은근히 공통점이 많아 이 또한 흥미로움을 더해줬다. 결국, 그런 것이다. 모든 일은 통할 수 밖에 없는 법





김태리가 보여준 혜원의 이야기는 굴곡 가득한 인생을 타고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힘들 땐 잠시 멈추고 숨을 골라도 되는 것임을 알려주는 모든 찰나가 소중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필거쳐야 하는 때를 지나가는 중임을 깨닫게 해준 점도 깊이 와닿았다.

 

싱그러운 미소와 다부진 마음가짐에 은근히 털털한 매력이 지금까지 살아온 혜원을 말해주는 듯 했다. 다만, 그녀만의 서사가 조금 더 깊이있게 다루졌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비중의 아쉬움은 존재한다. 스토리 전개에 있어 꼭 필요치 않은 러브라인 좀 어떻게 했으면......



영화 스틸컷에 음식 사진이 없는 점도 괜히 섭섭하다. 인물들의 관계에 보다 집중해 흐름을 이어간 것은 나쁘지 않았으나 그래도 명색이 음식영화이기도 한데, 포스터 한 장이 전부라서 시무룩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침샘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배고플 때 보면 안되겠구나 싶었고, 혜원이 아카시아 꽃 튀김을 배어 먹을 때의 아삭거리는 식감이 너무나도 귀에 선명하게 들려와서 고픈 배를 부여잡아야만 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만큼, 한국적인 정서가 듬뿍 담긴 음식의 출연 역시 매우 반가웠다. 특히, 소울푸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떡볶이의 비주얼은 다소 매워보였지만 한입 먹어보고 싶어질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최고의 요리는 내가 만들어 먹는 것이라던 혜원의 내레이션과 함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은숙이 직접 팬을 잡게 된 떡볶이는 그런 의미에서 뜻깊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고, 확신한다.

 


혜원의 고향 친구인 은숙과 재하. 세 사람이 오순도순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며 대화를 꽃피우던 장면도 유쾌한 재미에 한몫을 더했다. 한 사람의 서사가 아닌 캐릭터들의 면면을 포착해낸 점도 나쁘지 않았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때때로 날을 세우다가도 맛있는 요리와 음식이 존재함으로써 한없이 풀어지는 모습들이 청춘의 아름다움을 비춰주고 있어 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마냥 잔잔하기보다는 의외의 대사와 장면이 웃음을 빵 터뜨려서 영화관 자체를 폭소만발하게 했던 한때 역시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재하가 혜원의 안전을 위해 데리고 온 귀여운 강아지 오구가 성견으로 커 가는 과정도 볼만 했다. 고향에 내려온 초반에는 혜원이 오구에게 의지했던 반면, 시간이 흘러 그녀가 이곳에서의 삶에 완벽히 적응을 마친 어느 날 비바람과 함께 천둥번개가 몰아치던 밤에 오구가 울부짖자 곁에 다가가 쓰다듬어주던 혜원과의 투샷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엄마의 빈 자리를 추억하며 그녀와는 조금 다른 요리를 손으로 익혀가던 혜원. 과거에 두 사람이 토마토를 나눠 먹던 장면 역시도 여운이 짙다. 엄마의 존재감 역시 엄청났던 영화였으므로. 덧붙여 달지 않은데 단 맛이 나고, 짜지 않은데 짠 맛이 난다던 재하의 말은 모녀의 음식을 직접 먹어 본 감각이 있는 사람의 시식평이었기에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영화 속 여러 명대사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눈부신 영상미와 이에 잘 어울러지는 음악에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이 있어 힐링 영화에 등극했지만, 실제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알기에 도전해 보겠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는 않더라. 그래서 그냥, 이렇게 보는 것으로 만족할까 한다.

 




영화를 보면서 혹시나 열린 결말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했는데, 내 기준에서는 꽤 괜찮은 나름의 닫힌 결말을 맞닥뜨릴 수 있어 행복했다. 그로 인해 답을 찾아낸 혜원과 그녀를 기다리는 또다른 일상을 축복해주고 싶어졌다.

 

사는 일이 고되고 힘들지라도, 나만의 작은 숲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은 지금보다 풍족해지리라. 아직은 찾지 못했으나 혜원처럼 곧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맘 푹 놓고 볼 수 있어 정말 좋았던 영화 '리틀 포레스트'. 답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이들에게도 이 작품이 휴식을 전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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