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라인드 ::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놀라운 작품

영화 <블라인드>는 지인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와 함께 외딴 곳의 커다란 집에서 살아가는 루벤은 후천적인 이유로 눈이 멀어 더 이상 앞을 보지 못함에 따라 날선 청년의 모습을 지녔다


이로 인하여 날이 갈수록 난폭함이 더해지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하게 되고, 정확한 나이는 알아채기 어려우나 온 몸에 유리로 인한 흉터가 가득한 마리가 그의 곁으로 찾아온다.



외모는 어린 시절의 학대로 인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녀만이 간직한 기품과 신비로운 매력은 눈이 먼 루벤의 관심을 사로잡으며 단순한 책 읽기를 뛰어넘어 사랑으로 발전한다. 둘의 관계로 인해 불안함을 느끼던 어머니는 루벤에게 시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수술을 받게 하고, 그 사이에 마리는 한 장의 편지를 남긴 채 그곳을 떠난다


이러한 이유로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바라던 존재와의 만남이 성사되지 못하자 루벤은 절망하며 그녀를 찾아 나서기에 이른다.

 


하얀 눈이 가득 펼쳐진 동화 속 설원 같은 배경 속에 위치한 루벤의 집은 마리를 통해 그가 읽어 나가던 '눈의 여왕'과 꼭 닮았다. 이 책을 모티브로 제작된 작품이므로, 공통점이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면서도 원작과는 또다른 서늘함이 영화 전체를 관통함으로써 보는 내내 결말이 쉽게 예상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루벤의 어머니를 통해 고용된 마리의 첫 인상 또한 마찬가지였다. 깊은 비밀을 품은 차디 찬 눈의 여왕 같으면서도, 겔다처럼 카이를 찾아 헤매며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를 갈망하는 소녀 같은 모습이 드러나 호기심이 더해질 수 밖에 없었다.

 


루벤의 성질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대로 밀고 나가면서 만만치 않음을 표출, 이를 통해 달라지는 마리와의 시간은 증오 속에서 피어난 사랑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신체 부위로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마리를 상상하며 그녀에게로 향하는 루벤과 조금씩 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마리의 치명적인 사랑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위한 복선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영화는 감각적인 영상을 선보이며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오감을 총동원해 이야기를 흡수시키기를 바랐던 제작진의 의도가 십분 발휘된 작품이었다고 확신한다. 절제된 대사 속에서 오고 가는 수많은 감정선들이 그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마리가 책을 손에 펼쳐들고 페이지를 넘기며 눈으로 읽고 코로 특유의 향기를 맡으며 온몸을 내맡기던 순간은 그렇기에 더더욱 명장면으로 마음 속에 각인되었다. 책을 대하는 마리의 태도는 그녀에게로 심신을 밀착하는 루벤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다.

 


마냥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토록 충격적인 결말이 기다릴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외적인 아름다움에 결박당한 이들에게 상상 이상의 전율과 공포를 동시에 경험하게 해주는 찰나가 전하는 메시지는 직접 확인을 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을 통해 꼭 만나기를 바라는 바다. 진실한 사랑의 의미까지도.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익숙하게 들어왔음에도, 그 문장을 절절하게 공감하고 곱씹기에 우리는 너무나도 미숙한 존재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눈으로 보아 온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믿기는 훨씬 더 힘들 것이다. 살아 온 세상 자체가 그러하니까. 하지만, 영화 <블라인드>를 봄으로써 이런 선입견에서 조금은 벗어나 새로운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었기에 여기에서 희망을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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