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빙 빈센트 :: 유화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구성된 고흐의 삶과 죽음

영화 <러빙 빈센트>가 조용한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을 즈음, 나 역시 호기심을 해소하고자 극장을 찾았다. 아담한 상영관에서 작품을 마주하게 됐는데, 빈 좌석이 눈에 띄지 않을 만큼 관객들로 가득 채워져서 괜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세계 최초의 유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특징을 엿볼 수 있었으며,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백여명의 화가들이 모든 장면과 그 속의 움직임을 전달하기 위해 6만여점이 넘는 유화를 캔버스에 그려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경험하게 해줬는데 실제로 확인하니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만 했다.



유화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난 인물들의 모습은 겉으로 보이는 외면적 요소를 뛰어넘어 다채로운 감정 속에서 호흡하며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이끌어 나갔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막연히 다큐 형식으로 극이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정해진 스토리 라인에 따라 흘러감으로써 미스터리가 점차적으로 해결되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추리를 해 나가며 관람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영화 <러빙 빈센트>는 살아 있는 동안 단 한점의 그림만을 팔 수 있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 1년 후를 다룬다. 화가의 그림을 아꼈던 우체부 아버지 룰랭의 부탁을 받은 아들 아르망이 빈센트의 편지를 동생 테오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 펼쳐지는 여정으로부터 시작된다.



탕기 영감을 포함해 많은 이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아르망 또한 빈센트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는데, 그로 인해 마지막으로 화가가 살았던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빈센트가 머무르면서 그림을 그렸고, 죽음을 맞이했던 여관이 바로 그곳이다.

 


아르망은 여관주인의 딸 라부를 통해 화가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조금씩 매료되어 그를 위해 시간을 쏟는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빈센트를 치료해주던 가셰 박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가셰 박사의 집을 방문함으로써 그의 딸 마르그리트를 만나게 되며 또다른 의문을 품기에 이른다.

 


고흐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주치의로 책임을 다한 폴 가셰. 그리고 딸 마르그리트 가셰. 1주일에 한 번씩 빈센트가 찾아와 그린 인물화의 주인공이 마르그리트였다는 사실에서 둘의 관계가 연인이 아니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나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다고 한다.


다만, 애니메이션에서 드러나던 고흐를 향한 마르그리트의 그리움은 이유가 없지 않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죽음이 찾아올 때까지 평생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점도 여전히 미스터리하게 느껴진다.

 





화가들의 손에서 탄생한 유화 애니메이션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났고, 주인공의 유명한 작품들 역시 여러 점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여전히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미지수로 남아 있지만 이로 인하여 제시된 추측으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맞닥뜨리게 해준 점은 만족스러웠다.



수작업으로 완성된 멋진 작품의 발현이 예술가들은 물론 평범한 관객인 나에게까지 전율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예술의 가능성과 장점을 확인할 수 있어 흡족했다. 단순한 목소리 더빙이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까지 애니메이션 속에 담겨져 최고의 작품을 눈으로 접하게 된 시간이었다고 확신한다.

 


유화 애니메이션 속에서 만난 고흐의 삶과 죽음은 그가 그린 그림처럼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아름다움 속에 깃든 절망이 섬세한 터치로 살아나 전율을 겪게 하는 건, 아마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림의 심연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갈수록 무심코 엿보게 되고야 마는 화가의 속사정이 때때로 마음을 아리게 했던 것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다.


꽤 오래 전,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눈으로 직접 만나볼 수 있었던 때를 추억하면 아련함이 전해져 올 수 밖에 없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디지털적인 면이 부각돼 실물이 아닌 영상을 활용한 전시가 각광받고 있어 실물 그대로의 모습을 가까이서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다시, 그의 그림을 제대로 마주할 날을 기다려 본다. 영화 <러빙 빈센트> 덕택에 되살아난 그림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기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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