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더 라스트 맨 :: 인류 최후의 인간이 방공호에서 살아남는 법 (김지온)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임을 미리 밝힌다)

 

뮤지컬 <더 라스트 맨>은 좀비 사태로 인류가 멸망하기 직전, 이러한 상황을 예견한 생존자가 최후의 1인으로 남아 지하 방공호에서 버텨가며 문을 열게 될 날을 기다리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시놉시스의 일부분일 뿐, 사회적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극의 진면목이 모습을 드러내자 놀라움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다 맞닥뜨리게 된 극의 반전과 결말이 허를 찔러 기대 이상으로 인상깊게 다가왔음을 언급해 본다. 

 

 

스스로를 방공호에 가둔 채 좀비와 맞서 싸우는 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생존자는 청년 고독사를 소재로 내세운 극에 존재하는 주인공의 진면목을 깨닫게 만들며 충격을 전했다. 현실에 만연한 안타까운 현상을 판타지에 접목시킨 것이 신선한 충격을 일깨워줘서 이 점이 몰입감을 극대화시키기 충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와 함께 생존자 역을 맡은 김지온은 <더 라스트 맨>이 웹뮤지컬로 스타트를 끊은 뒤, 뮤지컬로 제작되며 무대에 막이 올라 초재연이 진행되는 동안 봐온 캐릭터 중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한 이야기를 선보이며 관심을 잡아끌었다.

 

 

온존자는 기간제 교사로 일해오다 해고당한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이로써 원했던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영위하게 되었음을 확인하게 해줘 안쓰러운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들 때가 없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팠던 간절함이 옷장 속 정장 재킷에 꽂아둔 여러 개의 카네이션으로 표출돼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 본인이 실제로 입고 다니던 양복 겉옷은 낡은 대로 낡은 것이 눈에 들어와 슬펐다. 

 

뿐만 아니라 존버를 통하여 온존자의 내면이 두드러지는 일이 상당해 눈여겨 볼만 했다. 온순한 성정 뒤에 감추어 두었던 분노가 그를 둘러싼 사건사고를 겪은 후 방공호에서 성깔 있는 존버의 모습으로 발현된 것이 굉장히 감명깊었다. 온존자와 존버의 끝말잇기도 기본에 자신만의 디테일을 더해 완성시켜 색다르게 느껴졌고, 'Happy Birthday To me' 넘버에서 들려 온 엄마와의 생일 에피소드는 심금을 울렸다. 다정한 엄마와 사랑받는 아들의 얘기에 마음이 아려왔다.

 

이와 달리, 생존 기록을 스마트폰 영상으로 남기며 방공호의 튼튼함을 증명하고자 바닥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촬영할 때 화면에 안 보인다면서 의자가 아닌 바닥에서 바닥으로 점프하는 재치를 선보여 웃음이 터질 때가 있었다. 생일을 맞이하여 초코파이에 촛불을 붙였는데 금방 꺼져서 다시 불을 밝히던 한때도 잊지 못할 거다. 

 

홀로 남은 세상에서 다른 이들처럼 좀비가 되고파 하는 말들이 터져 나왔던 데다가 인구조사원의 방문에 외로움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모습에서 절절한 외로움이 체감돼 고개가 끄덕여졌다. 

 

 

웃음 많은 다정함과 불의에 대항할 줄 알았던 온존자는 따뜻한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으나 세상이 만만치 않음을 접하게 해줘 현실의 냉혹함에 소름이 끼쳐오는 순간이 있었다. 좀비가 판치는 세상 못지 않게 각기 다른 이유로 문 밖을 나가는 것이 힘겨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을 대변하는 얘기가 묵직한 메시지를 선사해서 이 점이 기억에 남았다. 

 

 

눈물이 많은 온존자로 인해 보는 내내 울컥함을 느꼈던 뮤지컬 <더 라스트 맨>이었다. 1인극 안에서 생존자와 존버로 다양한 면모를 맞닥뜨리게 해준 온존자의 활약이 대단했다. 온존자는 누군가가 따스한 손길이나 온정 가득한 한 마디를 건넸더라면 곧바로 방공호를 탈출했을 것 같아 자꾸 눈길이 갔다.

 

그리하여 커튼콜 후 펼쳐진 엔딩에서 문 밖을 나가는 걸 보면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라는 넘버 가사를 무반주로 부르던 온존자가 본인 역시도 노랫말의 의미를 체감하며 희망을 갖고 퇴장한 걸로 보여져 납득이 갔다. 공연 러닝타임은 100분으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온존자가 무대에 서서 보여준 얘기는 총 120분, 2시간을 가득 채우며 극에 빠져들게 해줘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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