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온 더 비트 :: 짙은 파랑으로 너울거리던 아드리앙의 드럼 (강기둥)

연극 <온 더 비트(ON THE BEAT)>는 대학로 TOM 2관에서 올해 초연된 작품으로, 첫 관람시 무대의 막이 오름과 동시에 공연의 매력 속으로 푹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남달랐다. 그중에서도 '비트를 통해 세상을, 자기 존재를 표현하는 한 소년의 꾸밈없는 고백'이라는 문구에 걸맞는 스토리 전개를 확인하게 해줌으로써 보는 내내 심장의 쿵쾅거림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그리하여 1명의 배우와 드럼세트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던 시간이 뜻깊었다. 오직 드럼만이 자신의 모든 것이자 삶의 전부였던 아드리앙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질 때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온 몸을 깊이 파고들어 심금을 울렸다. 

 

(참고로, 본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주인공 아드리앙이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흘러갔다. 엄마, 베르나르 아저씨, 동생 휴고와 함께 가족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여 순탄치 않은 일상을 겪어나가는 동안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의 괴롭힘 속에서도 꿋꿋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게 벌어진 모든 일을 음악과 연관지어 생각하며 드럼에 몰두하던 한때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아드리앙은 자폐 스펙트럼을 보유한 아이였고,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에 노출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위험천만한 사건사고를 드럼의 비트로 받아들이며 태연하게 소리에 집중하는 장면들이 웃프게 다가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럼을 손에 쥐고 난 뒤의 변화가 강렬한 여운을 안겨주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CAST]

아드리앙 : 강기둥

 

내가 본 날은 아드리앙 역으로 강기둥 배우가 활약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1인극으로 혼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함에 따라 변화무쌍한 모습을 선보이던 순간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고, 드럼 연주 또한 기대 이상이라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되었음을 밝힌다. 뿐만 아니라 드럼을 두드릴 때의 표정마저도 완벽하기 그지 없었다. 이와 함께 따뜻함을 보유한 세실과 어리둥절함으로 가득한 아드리앙의 대화가 유독 기억에 남았다. 기존에 익숙하게 봐온 드럼 외에 전자드럼 DTX 900의 위엄을 확인하는 일이 가능해 이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둥드리앙의 드럼 소리가 울려퍼질 때마다 짙은 파랑으로 일렁이던 공간의 파동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유머러스한 아드리앙의 입담에 미소가 지어짐과 더불어 뜻밖의 의미심장함이 도드라지는 에피소드가 상당해서 이 점은 안타까움을 자아낼 때가 없지 않았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둥드리앙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는 것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도왔다. 소년미가 넘실거리던 둥드리앙의 겉모습 너머로 캐릭터와의 탁월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찰진 연기력을 일깨우는 배우 강기둥의 프로페셔널함이 돋보여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했던 공연이 바로 연극 <온 더 비트>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목소리 톤과 움직임을 달리하는 것만으로 멀티 캐릭터가 탄생되니 탄성을 내뱉지 않기가 힘들었다. 본인의 드럼에게 지어준 애칭인 티키툼도 앙증맞았다. 반면, 교도소 및 재판과 관련된 이야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무게감을 선사했음을 언급하고 넘어간다. 덧붙여 결말마저 묘한 혼란스러움을 전할 때가 있었으므로, 이에 따른 호불호도 극명히 갈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좀 아쉬웠다. 

 

드럼 연주를 만나볼 수 있는 1인극이라고 해서 궁금증을 폭발시켰던 작품이 바로 연극 <온 더 비트>였는데, 가볍지 않은 얘기가 중점을 이루는 공연이었음을 알게 돼 깜짝 놀랐다. 민감한 소재의 활용으로 말미암아 트리거 워닝과 폭력적인 묘사가 적지 않았으나 그래서 더 공연 속 아드리앙에게 마음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1인극 자체가 배우에게 커다란 도전이었을 테고, 여기에 드럼까지 연습해야 했다는 점에서 어마어마한 노력이 깃들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최고의 성과물을 맞닥뜨리게 해준 둥드리앙에게 박수를 보낸다. 공연 보면서 강기둥 배우에게 다시금 반해 버렸다. 

 

아드리앙의 존재감과 아드리앙이 연주하는 드럼의 울림이 황홀함을 선물했던 하루였다. BGM과 조명마저 놀라움을 전했다. 공연에 포함된 필수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1인극의 재미와 감동이 실로 대단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드리앙 덕택에 음악과 삶의 공통점이 불현듯 와닿았음은 물론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드럼으로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고스트 노트 등의 기초적인 내용을 설명해주던 찰나도 만족스러웠다. 여기에 더해 여러 뮤지션들의 노래를 연주곡으로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 너바나, 메탈리카 등등.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연극 <온 더 비트>의 커튼콜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만 같다. Imagine Dragons의 "Rise Up"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며 자유를 향한 몸짓을 발산하던 둥드리앙의 모습이 짜릿한 전율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빛과 어둠이 반복되는 조명의 흐름 안에서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뛰어다니던 걸 보는 것만으로도 울컥함이 밀려왔다. 둥드리앙의 리드 하에 관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박수를 통해 상황에 걸맞는 리듬을 탄생시켰던 시간도 감동이었다. 

 

기립박수로 그날의 공연에 화답할 수 있어 기뻤다.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란 바로 이런 것임을 알려준 둥블리, 둥드리앙! 대학로 TOM 2관은 공연장이 옆으로 길어서 중앙 좌석이 제일 좋긴 한데, 왼블과 중블 사이 통로로 올라와 관객에게 말을 거는 장면이 존재하니 이 부분도 고려를 해서 자리를 예매해도 괜찮을 듯 하다. 혀에 관해서 묻는 둥드리앙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놓치지 않는다면 금상첨화겠다. 

 

매체에서 마주하게 해준 개성 넘치는 열연도 당연히 흡족함을 전해 주었지만, 공연장에서 현장감을 느끼며 전달받은 생명력 넘치는 호연이 엄청났던지라 연극 <온 더 비트>의 둥드리앙과 같이 호흡할 수 있어 행복했다. 초연에만 출연하면 드럼 연습한 게 아까우니까 재연에도 꼭 와주었으면 좋겠다. 

 

공연 전 확인할 수 있었던 프로필 사진은 컬러풀한 의상을 착용한 아드리앙의 발랄함이 눈에 쏙 들어왔으나 막상 무대 위에는 무채색의 옷을 입은 아드리앙이 등장해서 이 점도 강렬함을 안겨주었다. 덕분에 나름의 반전이 살아 숨쉬었다고나 할까? 

 

이렇듯 짙은 파랑으로 너울거리던 아드리앙의 드럼 소리에 맘을 빼앗겼던 날의 여운을 깊이 간직할 것이다. 1인극의 묘미를 제대로 알게 해준 작품 속 배우와의 만남이 설레고 또 설렜다. 장단점이 선명한 극인 건 맞지만, 그래도 한 번쯤 관람할 가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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