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위니토드 후기 :: 블랙코미디가 접목된 핏빛 스릴러의 묘미 (이규형, 전미도, 박인배, 노윤, 윤석호, 류인아)
어느 잔혹한 이발사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스위니토드>를 관람하려 잠실역에 위치한 샤롯데씨어터로 오래간만에 발걸음을 옮겼다. 이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로 알려진 19세기의 런던에서 널리 퍼져 나간 도시 괴담, 살인마 이발사와 인육으로 만든 파이를 판매하는 가게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탄생된 연극을 뮤지컬화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블랙코미디가 접목된 핏빛 복수극으로 잔혹한 스릴러 장르를 내세운 공연과의 첫만남이 드디어 성사돼 기뻤다. 참고로 나 같은 경우에는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올해 처음 보는 거였지만, 이를 원작으로 팀 버튼 감독의 손을 통하여 완성이 이루어진 동명의 뮤지컬 영화를 먼저 접했기에 내용 자체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젊고 재능 넘치는 이발사로 아내 루시, 어린 딸 조안나와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가던 벤자민 바커가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긴 채 누명을 쓰고 외딴 섬으로 추방 당했다가 15년 만에 돌아와 무자비한 살인으로 복수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이 무대 위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이로써 벤자민 바커가 루시를 향한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삶을 비극으로 내몬 터핀 판사와의 재회를 위해 스위니토드로 이름을 바꾸고 런던에 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러빗 부인과 손을 잡으며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본 포스팅에는 공연과 관련된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힌다)
[CAST]
스위니토드 : 이규형
러빗부인 : 전미도
터핀판사 : 박인배
안소니 : 노윤
토비아스 : 윤석호
조안나 : 류인아
비들 : 주홍균
거지여인 : 김가희
피렐리 : 이형준
앙상블 : 정재희, 민준호, 박태경,
맹원태, 추광호, 김서안,
장동혁, 손지훈, 정서인
스윙 : 임혜성, 김지욱,
박시후, 정수민
이날 만난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기대이상이었던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이 선사하는 놀라운 음악세계 속 기묘한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진 멜로디가 눈과 귀를 사로잡는 시간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넘버 가사 곳곳에 스며든 재기발랄한 풍자의 매력도 웃음 포인트로 고개를 끄덕이게 도왔다.
게다가 극이 생각보다 많이 잔인한 편은 아니었던지라 보는 내내 안심이 됐다. 이러한 이유로 오히려 장치적 설정에 따른 독특한 연출의 비밀을 알고 싶어 오츠카를 손에 꼭 쥐고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적지 않았는데, 이발소 의자가 천장에서 내려와 안착하게 된 시점부터가 특히 그랬다. 스위니토드가 여기에 앉은 이들의 목에 면도칼을 가져갈 때마다 터져 나오던 피, 2층 이발소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시체가 1층에 존재하는 러빗의 파이 가게로 이동하던 찰나가 화룡점정과 다름 없었다. 끼이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타이밍마저 소름을 오소소 돋게 만들며 음산함을 한층 극대화시키던 한때도 대단했다.
스위니 토드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복수에 성공하지만, 거지여인이 된 루시가 꽤 오래 곁을 맴돌았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채지 못한 채 아내를 죽음으로 이끈 장본인이 되고야 만다. 여기에 더해 루시의 행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것에 분노하여 조력자로 활약한 러빗 부인을 오븐에 밀어넣고 슬픔에 울부짖던 스위니 토드 또한 파이 가게 조수 토비아스에게 살해당한다. 실로 비극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터핀판사에게서 벗어난 조안나만이 유일하게 안소니와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될 것으로 보여졌지만,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난 뒤에는 마냥 행복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피를 손에 묻힌 토비의 미래 역시도 마찬가지.
그런 의미에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는 캐릭터를 맡았던 박인배 터핀은 제 역할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잘 해내서 볼수록 화가 났다. 듣기 좋은 중저음을 보유한 노윤 안소니는 귀에 콕 박히는 대사 전달력과 출중한 넘버 소화력으로 탄성을 내뱉게 했으며, 윤석호 토비가 마주하게 한 광기 서린 클라이막스도 기대 이상이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고음을 뿜어내던 류인아 조안나도 보기 좋았다.
주조연은 물론이고 앙상블과 스윙까지 모두가 의기투합해서 멋진 공연을 선물한 시간이었다. 덕분에 프리뷰 기간이었지만 재밌게 잘 봤다. 그 속에서 러빗부인 역 전미도, 터핀판사 역 박인배, 안소니 역 노윤, 토비아스 역 윤석호에게 눈길이 절로 갔다. 피렐리 밑에서 일하다가 사정상 파이 가게 일을 도우며 러빗부인을 흠모하게 된 순진무구한 소년으로 분한 석호 토비는 배우 자첫을 통해 머리 속에 느낌표를 뜨게 해줘서 맘에 쏙 들었다.
덧붙여 씁쓸함이 도드라지는 새드 엔딩의 극치를 선보인 공연은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스릴러 뮤지컬의 진수를 일깨우고도 남았다. 이와 함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에서 아주 잠깐 스치듯이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췄던 뀨미도가 드디어 같은 작품에서 완벽한 케미를 선보이는 모습을 보게 돼 만족스러웠다. 두 배우 전부 매체와 무대를 병행해줘서 고맙다.
이규형 토드는 "들어는 봤나 스위니토드"를 열창할 때부터 흡족함을 자아내며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그중에서도 진지함과 코믹함을 오가는 동안 확인하게 해준 강약 조절이 센스있게 느껴졌다. 의자에서 넘어졌던 건 돌발상황인 것 같은데 유연하게 대처를 잘했고, 미도러빗이 볼에 입을 맞출 때마다 동공이 확장되는 모습에선 폭소가 터져 나왔다. 반면, 뀨토드가 면도칼을 휘두를 땐 섬뜩하기 그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전미도 배우는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한 러빗 부인으로 6년 만에 귀환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찰진 열연이 돋보였다. 스위니 토드를 향한 사랑이 남달라 보였던 게 유독 눈에 쏙 들어왔다.
내가 뮤지컬 <스위니토드> 티켓을 예매한 가장 큰 이유는 전미도 러빗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깨닫게 돼 정말 기뻤다.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하여 그저 멈추지 않고 돌진하는 불도저 같은 면모가 탐욕스러움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의 어리석은 자화상을 엿보게 해줘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하반신을 쓸 수 없어 하루종일 앉아있는 것만이 삶의 전부였던 남편으로 말미암아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시간이 지난 뒤 눈 앞에 나타난 스위니 토드가 러빗에게 있어선 구원이었을 테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보태며 함께 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게 납득이 갔다.
능청스러운 말투를 중심으로 능글맞기 그지 없는 표정과 몸짓이 더해진 미도 러빗의 모든 움직임은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연기는 워낙 잘했던 걸 알고 있었지만, 노래 실력마저 업그레이드된 상태로 만나니 감개무량할 수 밖에.
러빗부인은 여태껏 봐온 캐릭터와 전혀 다른 결을 지녀서 어떤 방식으로 인물의 사연을 풀어나갈지 궁금했는데,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악랄한 빌런으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줘서 감동이었다. 나도 이제 미도러빗 본사다!
샤롯데씨어터 2층 9열 오블에서 본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블랙코미디가 접목된 핏빛 스릴러의 묘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토드씨의 이발소가 오른쪽에 있어서 거리감이 멀지 않아 괜찮았다. 2층 좌석에 앉은 덕분에 시선의 높이가 꽤 잘 맞는 편이었고, 오츠카를 챙겨갔기에 디테일한 표정 보기에도 딱이었다.
기괴한 분위기가 특유의 개성으로 자리잡은 공연이라는 점에서 한 번쯤 볼만 한 가치는 있었으나 취향에 딱 맞진 않아서 오늘의 리뷰가 자첫자막 후기가 될 듯 하다. 그래도 다른 캐스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보고픈 마음이 살짝 들긴 했는데, 재관람 할인이 안 보이니 티켓을 더 못 잡겠다. 할인율 및 각종 할인 혜택이 점점 더 박해지니, 관극을 줄이는 게 맞는 거겠지. 프리뷰 기간에 20% 할인을 받아 보는 일이 가능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자리가 있었던 게 어디냐 싶다.
다만 공연장 내부가 꽤 많이 후덥지근해서 답답한 감이 없지 않았고, 데이터가 잘 안 터지는 와중에 LTE보단 5G가 답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게 수확 중의 하나였다. 피칠갑을 한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커튼콜 속 뀨토드가 미도러빗을 안고 퇴장하던 장면으로 마무리가 돼서 이 점도 훈훈함을 더했다. 한 살 차이긴 하지만 미도러빗과 뀨토드가 연상연하라 그런지 몰라도 극중에서 러빗부인이 토드를 굉장히 귀여워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도 뜻깊은 추억으로 남겨둔다.
공연을 보고 난 이후로도 은근히 입에 감기는 넘버가 상당했던 뮤지컬 <스위니토드> 자첫자막 후기는 여기까지다. 보는 이들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기 갈리는 작품이긴 하나 직접 관람하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 나는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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