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주택, 철없는 어른들의 성장이 기대되는 수림이네 가족 빌라촌 입성기

유은실의 청소년 소설 <순례 주택>은 무심코 손에 집어든 책 한권이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 작품과 다름 없었다. 특히,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성장을 도모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하여 수림이네 가족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옛 여자친구 김순례가 주인으로 있는 빌라 '순례 주택'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사고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 오기까지 지금껏 제 손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엄마 박영지, 전임교수를 꿈꾸며 누나들의 도움을 받는데 익숙해져 버린 대학 시간강사 아빠 오민택, 공부를 빼면 할 줄 아는 게 전무한 고등학생 언니 오미림과 예상치 못한 시간을 보내게 된 수림의 고군분투가 눈에 쏙 들어왔다.

 

16세 중학생 오수림은 엄마의 산후 우울증으로 말미암아 순례 주택에 거주하는 외할아버지에게 보내져 순례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이러한 이유로 떨어져 보낸 날이 더 많은 가족들보다 순례 곁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꼈고 엄마, 아빠, 언니를 1군들이라 부르며 그 사에 어색하게 낀 2군 후보 선수로 스스로를 지칭하던 순간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집안이 망했을 때 그 누구보다도 다부진 면모를 드러내며 정신을 바짝 차리고 1군들을 이끌어서 이로 인한 존재감이 남달랐다.  

 

김순례씨는 75세로 유능한 세신사로 일하며 번 돈으로 거북마을에 순례 주택을 지어 세입자를 들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세가 아닌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임대료만 받는 착한 건물주의 표본이자 삶의 지혜가 돋보이는 연륜 있는 인물의 본보기로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뽐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로 인하여 수림이 순례의 리드 하에 주택에 입주한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 물정 모르는 가족들의 변화를 위하여 애쓰는 모습이 강렬한 여운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피로 맺어진 혈연보다 더 애틋한 정을 쌓아나가던 수림과 순례의 오붓한 한때도 보기 좋았다. 수림을 본인의 최측근으로 명명하며 돈독한 관계성을 일깨워준 순례의 센스도 돋보였다. 덧붙여 순례 주택에서 생활하는 각기 다른 입주민들의 개성도 눈여겨 볼만 했음은 물론이다. 

 

 

미용실 원장 조은영 및 딸 진하와 아들 병하, 박사님으로 불리는 대학 시간 강사 허성우, 순례씨의 전 직장동료로 홍길동으로 지칭되는 이군자와 남편 부부, 혼자 사는 영선, 순례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방식이 기억에 남았다. 여기에는 수림도 포함되며 수림의 외할아버지 박승갑이 머물렀던 과거의 한때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이로써 수림을 제외한 수림의 엄마, 아빠, 언니를 위한 순례 주택 사람들만의 기상 천외한 프로젝트가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빌라촌과 아파트 단지를 대놓고 비교하며 할 말 못할 말을 거침없고도 솔직하게 쏟아내던 엄마를 시작으로 아빠와 언니가 눈 앞에 불어닥친 현실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더 나은 인생을 영위하도록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적당히 스펙타클하게 펼쳐져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전진하던 수림의 책임감 강하고 생활력 넘치는 모습 또한 멋졌다. 할아버지가 살던 집을 보증금 없이 월세로 계약하여 가족들을 머무르게 해준 순례의 깊은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의 마음 씀씀이도 잊지 못할 것이다.  

 

순례의 말마따나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 애쓰는 사람이 진정한 어른임을 확인하게 해준 소설 <순례 주택>의 따뜻함 역시도 매력적이었다. 수림이의 엄마, 아빠, 언니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갈 길이 멀어 보였지만 곁에 있는 이들로 말미암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어 다행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순례 주택에 살면서 조금씩 천천히 가족의 의미를 깨우쳐 가던 네 사람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철없는 어른들의 성장이 기대되는 수림이네 가족 빌라촌 입성기는 현재 진행형에 가까웠지만, 해피엔딩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책장을 덮으며 미소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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