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 액션 느와르가 더해진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의 비상

절대극비 로맨스를 표방하며 1회부터 흥미진진하게 출발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마지막회에 이르러 21.7%를 기록하며 안방극장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tvN 드라마 역대 시청률 1위로 자리매김하는 쾌거까지 이루었으니,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19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밤 9시마다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돌풍을 동반한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와 그녀를 도와주다 사랑에 빠지는 특급 장교 리정혁의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CAST]

리정혁 : 현빈

윤세리 : 손예진

서단 : 서지혜

구승준 : 김정현

리충렬 : 전국환 / 김윤희 : 정애리 / 리무혁 : 하석진

표치수 : 양경원 / 박광범 : 이신영 / 김주먹 : 유수빈 / 금은동 : 탕준상

조철강 : 오만석 / 정만복 : 김영민 

윤증평 : 남경읍 / 한정연 : 방은진 

윤세준 : 최대훈 / 도혜지 : 황우슬혜 / 윤세형 : 박형수 / 고상아 : 윤지민

홍창식 : 고규필 / 박수찬 : 임철수 / 곽태호 : 권동호 

고명은 : 장혜진 / 고명석 : 박명훈  

나월숙 : 김선영 / 마영애: 김정난 / 현명순 : 장소연 / 양옥금 : 차청화

천사장 : 홍우진 / 오과장 : 윤상훈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펼쳐진 사랑의 대서사시는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에 스릴 넘치는 액션 느와르가 더해져 애절함과 잔혹함을 동시에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판타지에 녹여냄으로써 만나볼 수 있었던 이야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스펙타클함을 자랑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드라마에서 좋았던 부분으로는 배우들의 열연과 이로 인해 구현된 캐릭터의 명확성, 다양한 뮤지션들의 참여가 빛을 발한 OST의 매력을 꼽을 수 있겠다. 출연진 모두의 열연을 매회 지켜보면서 웃음과 눈물을 쉴새없이 쏟아냈는데, 대본을 토대로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완성시킨 배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까메오로 출연한 박성웅, 김수현, 최지우의 존재감도 대단했다.


덧붙여, 대한민국 공연계에서 활약 중인 배우 여러 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마주할 수 있어 이 역시도 반가웠다. 연극과 뮤지컬로 먼저 접했기에 브라운관을 통해 맞닥뜨리는 일이 신기했는데, 감칠맛 나게 연기를 잘해줘서 괜시리 더 뿌듯한 마음이 샘솟았다. 게다가 권동호, 양경원, 홍우진 배우는 뮤지컬 <로기수>로 함께 출연한 걸 봤어서 더 그랬다. 북한 사투리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표치수, 천사장을 만날 수 있어 감탄했다. 만복 역의 김영민 배우와 옥금 역의 차청화 배우, 박수찬 역의 임철수 배우도 눈에 쏙 들어왔다. 은동 역의 탕준상 배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평양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노래 부르던 문장미 배우도! 


이와 함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OST의 강렬함도 오래도록 귀에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윤미래의 'Flower', 백예린의 '다시 난, 여기', 송가인의 '내 마음의 사진', 김재환의 '어떤 날엔', 아이유의 '마음을 드려요'가 참 좋았다. 장면에 따른 완벽한 싱크로율을 선보인 음악의 조합이 매우 감명깊었다. 특히 트로트가 아닌 발라드를 통해 출중한 가창력을 뽐낸 송가인의 다재다능함에 깜짝 놀랐고, 노래를 잘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의 실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재환의 목소리에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다만,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몰입감이 상당했던 초반부에 비해서 후반부는 산만함이 느껴졌던 데다가 회차 연장은 없었지만 러닝타임이 계속 길어지는 현상이 반복됐던 것이다. 1시간을 훌쩍 넘어선 90분도 모자라 급기야 최종회인 16회에 이르러서는 무려 2시간에 가까운 분량을 뽑아내다니! 마지막회였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봐도 무방할 테지만, 흡입력 있는 이야기 흐름을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배우들에게 기댄 연출과 대본이 전부였어서 오히려 지루했다. 빨리감기를 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박지은 작가의 캐릭터 생성 능력과 찰진 대사를 써내려가는 필력은 장점으로 여겨졌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기에, 결국에는 뒷심이 부족한 드라마로 남게 돼 안타까웠다. 그리고 방영이 시작될 때 발생된 논란이 흐지부지하게 종결된 사실도 곱씹어 볼만 했다. 


드라마의 처음과 마지막은 물론이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들 속에서 은근히 닮아 있는 장면들이 군데군데 배치됨으로써 데칼코마니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새롭기보단 익숙하게 다가오는 찰나가 많았다. 



둘리 커플로 사랑 받았던 리정혁과 윤세리의 로맨스는 힘을 합쳐서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갈수록 더욱 더 단단해졌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장소가 북한보다 스위스가 더 먼저였다는 걸 에피소드로 보여주며 우연이 아닌 운명을 확신하게 해주는 점도 드라마의 판타지를 극대화시키는 장치로 작용해 재밌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 손예진과 현빈이 주인공으로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절절한 멜로의 극치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웃길 땐 또 제대로 웃겨주는 코믹함도 제대로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서로를 향해 깊어져만 가는 감정을 애틋함 속에 담아낸 둘리 커플의 진심이 드라마가 끝난 지금까지 눈에 선하다.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각자가 지닌 비밀이 수면 위에 떠오르며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이야기 안에서 정혁은 세리를, 세리는 정혁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는 상황들이 사랑의 위대함을 경험하게 해줬음은 물론이다. 



윤세리와 리정혁의 둘리 커플에 이어 구단 커플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구승준과 서단의 사랑은 슬픔으로 채워질 수 밖에 없었으나 그래서 더 잊지 못할 서사가 되지 않았나 싶다. 능글맞은 성격 뒤에 아픈 상처를 감춰왔던 승준의 본모습을 알아차리고 그제서야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된 단의 엇갈림은 그래서 더 애처로웠다.


김정현이 구승준을 멋지게 소화하며 드라마에 복귀한 만큼,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해 본다. 진취적인 서단으로 남다른 카리스마를 뽐낸 서지혜의 차기작도 응원한다. 둘리 커플 못지 않게 구단 커플의 케미도 흡족함을 자아냈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중대장인 정혁과 함께 세리를 지켜주었던 5중대 대원들의 모습도 사랑불에 볼거리를 더해주기에 충분했다. 세리와 치수가 맞닥뜨리게 해준 투닥거림의 티키타카가 좋았고, 한국 드라마 마니아로 남한 지식을 마음껏 풀어내며 세리의 편이 되어주던 주먹의 따뜻한 마음씨가 예뻤고, 말수는 적지만 정혁을 따르며 세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던 광범의 행동력과 순진무구한 소년미를 지닌 은동의 풋풋함도 마음 깊이 남았다.



여섯이서 정혁의 집에 모여 조개불고기를 해먹으며 친목을 다지던 장면에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화끈한 불쇼와 함께 맛있게 익은 조개와 소주의 궁합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넘어가게 했다. 남한에선 입 짧은 공주라고 불렸다던 세리가 북한에 와서는 밥은 물론이고 간식까지 잘 챙겨 먹으며 마음 편히 지내는 모습도 행복해 보였다.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던 5중대 대원들과 세리의 한때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의 하나였다.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임무 수행을 위하여 남한으로 올 땐 만복이 함께 하면서 조철강과의 싸움에 힘을 실어줘 다행이다 싶었다.


정혁과 세리를 방해하는 악역으로 엄청난 활약을 했던 조철강. 불사신처럼 총을 맞아도 살아나던 모습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조철강으로 인해 그들이 함께 하는 곳 어디에서든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이로 인해 액션 느와르를 마주하기도 했다. 



북한에 머무는 동안 잠시나마 세리가 최삼숙이란 이름으로 영애, 월숙, 명순, 옥금과 지냈던 시간도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세리가 CEO로 몸담고 있는 기업 세리스 초이스를 통하여 그리움을 주제로 화장품을 론칭(런칭), 네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제품을 출시했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전해지는 장면도 이러한 이유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사택마을 북벤져스의 열연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묘미였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단의 어머니 고명은의 포스도 엄청났음을 밝힌다. 부와 명예를 소유한 것에 그치지 않고, 딸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게 해주는 모습이 멋졌다. 뿐만 아니라 딸의 행복을 바라며 자신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에서 현명함까지 확인할 수 있어 엄지를 치켜들게 됐다.


서단의 외삼촌으로 명은과 찰떡궁합을 연기를 선사한 고명석도 인상적이었다. 고명은 역의 장혜진, 고명석 역의 박명훈은 영화 <기생충>에 출연했던 걸로 아는데 사랑불에서 남매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서 등장할 때마다 기대를 하게 만든 장본인들이기도 했다. 







둘리 커플이 살아가는 세계가 다르다 보니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 세리의 생일선물로 정혁이 커플링을 선택한 점이 인상깊었다. 둘이서 반지를 나눠끼며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더불어 심플한 디자인으로 눈이 가게 만든 커플링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도 증폭됐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검색해 본 결과, 뮈샤(mucha)에서 제작된 반지라는 걸 알아냈다. 눈에 띄는 무늬 없이 골드 컬러로만 구성이 된 비주얼이 취향에 맞아서 한참을 보고 또 봤다. 


아무래도 협찬을 받은 거라서 제품 노출이 충분히 잘 되어야 했을 텐데, 둘리 커플의 간절한 마음을 손에 포커스를 맞춰서 반지와 함께 잘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감각적인 커플링 광고로 봐도 괜찮을 정도였다.  



또 하나 눈에 들어왔던 건 음식. 사랑불을 보면서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들었던 BBQ의 황금 올리브 치킨은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배우들이 먹는 모습을 보여줄 때 귀로 전해져 오는 튀김옷의 바삭함과 눈에 보이는 치즈볼의 부드러움이 황홀함을 전했다. 



세리도 맛있게 잘 먹는 치킨. 화분에게 해주는 예쁜 말 10개가 "완판녀, 상한가, 스톡옵션, 매출신화, 우수브랜드, 고수익, 코스닥 상장, 업계 1위, 리미티드 에디션, 리정혁"인 윤세리의 우아함은 치킨을 뜯을 때도 빛이 났다.


감정 표현에 솔직한 이방인과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일에 집중해 살아가는 워커홀릭 CEO로 색다른 면모를 확인하게 해준 손예진의 열연에 박수를 보낸다. 



승준의 결말이 조금 놀랍긴 했지만, 단이의 앞날에 성공이 가득하다고 해서 안심이 됐다. 정략결혼이긴 했지만 첫사랑이었던 약혼자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향한 지 오래고, 뒤늦게 깨달은 두 번째 사랑 역시 내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으니 더 이상이 미련이 없을만도 한 거다. 복수까지 해냈으니 깔끔한 마무리인 셈. 



시대의 트렌디함에 걸맞춰 비혼주의자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자신있게 내딛던 서단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그래서 더 눈부셨다. 서단의 결정에 따른 화사한 미래를 엿보게 해주는 레드 드레스를 착용하고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로 거리를 걸어나가던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16회의 명장면과 다름 없었다.




사랑불 최종회는 방송 분량이 어마어마해서 에필로그의 양도 평소보다 길었다. 스위스에서 1년에 2주만 만나서 사랑하며 살아가게 되는, 정혁과 세리만의 찬란한 해피엔딩.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유지하며 행복한 결말을 놓치지 않은 영리함이 돋보였다. 견우와 직녀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나 스마트폰을 통한 연락 또한 쉽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오랜 기다림을 견뎌내야 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꽉 닫힌 해피엔딩까지는 아니었다. 통일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 


다만, 마지막회의 마지막 부분은 스위스의 풍경을 주인공으로 촬영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둘리 커플보다 그들이 서 있는 장소의 풀샷을 드론으로 찍어서 보여주는데 치중해서 고개를 내젓게 만들었다. 키스신 이후에 서로를 품에 안은 세리와 정혁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더니 스위스의 정취가 한눈에 들어왔고, 이어진 에필로그까지 비슷하게 막을 내려서 충격적이었다. 스위스가 너무 멋지고 아름다워서 결말이고 뭐고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을 정도니 말 다한 거다. 


좋았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이 극명하게 나뉘었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이 작품은 액션씬과 총격적이 꽤 많았기에 액션 느와르가 더해진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로 얘기해도 손색이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돌풍과 함께 벌어진 패러글라이딩 사고와 위급한 순간에 세리와 정혁이 함께 패러글라이딩 비행을 하는 장면의 컴퓨터 그래픽에 있어서도 아쉬움이 남았으니 이 점도 언급하고 넘어간다.



명대사도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으나 1회에서, 세리가 패러글라이딩을 준비하며 바람이 부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대답했던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바람이 왜 부는 것 같아요?"

- 모르겠어요. 

"지나가려고 부는 거예요. 머물려고 부는 게 아니고. 저게 저렇게 지나가야 내가 날아갈 수 있는 거고." 


세리의 용기 있는 비행으로부터 비롯된 액션 느와르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배우 손예진의 강림을 다시금 입증시킨 작품으로 기억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높이, 위로 올라가겠단 목표를 가졌던 윤세리를 통해 최고의 시청률을 달성함으로써 성공적인 비상을 마치게 되었으니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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