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멜로가 체질 ::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다의 향연이 남긴 서른의 이야기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수다의 향연을 통하여 서른이 된 세 친구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담아내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30세를 맞이한 여자 셋의 일상 속에서 만나보는 것이 가능했던 일과 사랑을 포함한 수많은 고민들이 코믹함을 필두로 다양한 명대사, 명장면과 함께 어우러져 쉽게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CAST]

임진주 : 천우희 / 이은정 : 전여빈 / 황한주 : 한지은

손범수 : 안재홍 / 추재훈 : 공명 / 이효봉 : 윤지온

김환동 : 이유진 / 이소민 : 이주빈

홍대 : 한준우 / 이민준 : 김명준

정혜정 : 백지원 / 소진 : 김영아

동기 : 허준석 / 다미 : 이지민 / 하윤 : 미람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장르를 내세운 작품답게,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엄청난 대사량을 선보이며 놀라움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 안에 녹아든 말의 재미와 의미는 실로 대단했는데, 그리하여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1회부터 16회까지 방영되는 동안 최고 시청률은 1.8%에 그쳤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는 인생 드라마라고 이야기하며 극찬을 이어 나갔지만 다른 누군가는 혹평을 쏟아냈다고 하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해 보자면, 나에게 있어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호와 불호의 중간 지점에 존재하는 작품이었다. 수다스러워서 좋은데 캐릭터들이 말하는 순간 자체가 명대사로 흘러가다 보니 기억에 남는 장면을 단번에 꼽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대사가 그야말로 다다다다 이어지는 장면의 연속이라 여백의 미가 필요해지는 시간 또한 없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은, 찰나의 침묵이 고맙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래도 세 여자의 인생 이야기가 맛깔나게 펼쳐지는 스토리 전개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보조 작가에서 드라마 작가로 발돋움하며 자신만의 글을 써내려가던 진주, 트라우마에 갇혀 살지만 능력 만큼은 나무랄 데 없는 다큐멘터리 감독 은정, 워킹맘으로 탁월한 실력을 뽐낸 드라마 제작사 마케팅 PD 한주의 삶이 점점 더 괜찮게 변화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좋았다. 


똘끼 충만한 작가로 코믹스러움을 한껏 살린 천우희의 밝은 캐릭터 연기가 기대 이상으로 자연스럽고 웃겨서 이제껏 어두운 역할만 해왔던 게 못내 아쉬워졌고, 카리스마 넘치는 활약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전여빈과 한지은의 찰떡 같은 생활 연기 또한 완벽했기에 각각의 에피소드 뿐만 아니라 셋이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을 설레며 기다렸던 날이 적지 않았다.


세 사람과 같이 살며 남동생과 오빠 사이를 오가던 윤지온의 연기도 만족스러웠다. 뮤지컬 배우로 처음 만났는데 드라마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니 새삼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비중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성소수자 역할을 맡아 선사한 내면 연기와 친누나 은정과 함께 보내는 따뜻한 순간들이 인상적이었다. 


스타 작가로 분한 백지원의 존재감과 흥미유발 엔터의 대표로 직원을 아끼는 것은 물론이고 일처리 또한 흐트러짐이 없었던 마인드 최고 리더 김영아의 열연도 감명깊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른 건 몰라도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확실히 여성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작품임을 인정하게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솔직당당한 배우의 모습을 보여준 이주빈, JBC 구내식당 영양사가 되어 연애 조언 하는 일을 즐기던 이지민, 재훈의 여자친구 역으로 등장한 미람까지, 각기 다른 개성이 눈에 띄는 것이 재밌다. 



다만, 작품의 제목과 잘 어울리는 드라마였는지는 조금 더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코믹적 요소는 매력적으로 잘 녹여냈으나 멜로적인 부분은 그에 비해 약하게 다가왔다. 연기가 체질인 배우들이 전한 로맨스는 단순히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에 중점을 두지 않고, 캐릭터에 따라 열린 결말을 지향하는 마무리를 확인하도록 도왔는데 이로 인해 아이러니가 느껴지는 장면도 꽤 있었다. 특히, 은정과 상수의 이야기가 그랬다.


오히려 한주와 재훈의 관계가 멜로가 아닌 돈독한 직장 동료로 남은 게 수긍이 갔다. 그리고 재훈과 하윤 역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해서 섣불리 판단하지 않게 됐는데 은정과 상수의 만남과 남은 미래는 내 입장에서 감당하기 힘든 장면들이었어서 언급하고 넘어간다. 



드라마 초반에는 얄밉기 그지 없었지만, 일에 대한 태도 만큼은 똑부러지고 자신감 있는 모습이 괜찮아 정이 갔던 손범수 감독은 배우 안재홍과 싱크로율이 잘 맞아 떨어져 흡족했다. 말은 막 해도 일은 막 안 하다는, 택배 받는 것도 좋아하고 식당에서 메뉴판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무엇보다도 소중한 이 일을 작가와 같이 하고 싶다는 말을 직접 들었을 진주의 마음이 움직이는 게 이해가 갔다.


추재훈 역의 공명은 한주를 잘 따르는 신입으로 눈이 가게 만들었고 일을 같이 해 나가면서 가까워져 두 사람 모두 서로를 향한 감정이 분명 존재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피하지 않고 대면하고자 연애가 아닌 동료애로 그친 것이 의미심장했다. 



은정, 진주, 한주, 효봉, 네 사람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감춰두고 싶은 비밀을 어렵사리 꺼내놓음에 따라 같이 고민하고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 순간 역시도 훈훈함 그 자체였다. 


가끔씩은 대화가 삼천포로 빠질 때가 없지 않았지만, 맥주 한 캔과 맛있는 안주로 대동단결해 말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멜로가 체질>은 OST도 귀를 기울이게 했다. 장범준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거야'가 테마곡과 다를 바 없었지만, 센티멘탈함의 절정을 일깨워주는 신인류의 '작가미정'이 내 취향에 더 가까웠음을 밝힌다. 하현상의 'Moonlight'도 괜찮았다. 


덧붙여, 이 드라마가 PPL에 대처하는 자세에도 웃음이 터졌다. PPL을 향한 고충을 토로하며 홍보 제품을 노출하는데 힘쓰는 방식으로 독특함을 자아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치맥은 비비큐(BBQ) 올리브 치킨과 같이, 카페에서 만날 땐 항상 셀렉토커피를 방문했다. 범수가 진주에게 셀렉토커피에서 우리는 왜 맨날 여기만 오냐고 묻던 대사는 잊지 못할 거다. 가장 압권이었던 홍보 마케팅이자 성공적인 재미를 맞닥뜨리게 한 제품은 안마의자였지만, 앞서 이야기한 상품들 역시 이에 버금가는 효과를 누렸을 거다. 






"나 힘들어, 안아줘."


남자친구의 죽음 이후로 홍대의 환영을 보며 혼잣말을 일삼던 은정이 진주, 한주, 효봉에게 털어놓던 진심이 드러나던 장면에선 눈물이 흘렀다. 세 사람이 반응하지 않자 너네한테 하는 말이라고 했고, 그제서야 은정에게 달려가 서로를 꼭 안던 순간이 마음에 사무쳤다. 2년 동안 듣고 싶었던 얘기라는 진주의 내레이션이 감정의 폭발을 도왔던,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명장면이기도 했다.


오래도록 기다려 준 친구들에 대한 보답, 힘들 때 힘들다고, 안아달라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이 넷을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말이 많은 데다가 말을 막 하는 드라마이기도 했던 <멜로가 체질>에서 좋았던 장면들은 제목과 정반대의 에피소드를 풀어나가는 찰나가 대부분이었다. 그 이유는 진주, 은정, 한주, 세 친구가 자신의 일을 하면서 인정받고 더 나아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들에 가슴이 벅차 올랐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서른되면 괜찮아져요."를 통해 똘똘 뭉친 장면도 드라마의 백미였다. 직업 설정에 따라 확인이 가능했던 필연적 만남이었는데, 집에서와는 전혀 다른 프로페셔널함이 눈에 들어와 멋졌다.



그런 의미에서 진주의 대본이 어떻게 찍어도 재밌겠다며 인정받았을 때, 한주가 승진해 일을 진두지휘하게 됐을 때, 소민을 주인공으로 제작한 은정의 다큐멘터리가 다시금 성공적으로 관객들에게 사랑받았을 때 짜릿함이 몰려왔다. 이 친구들은 멜로가 아니라 일이 체질이구나 싶었다. 


연기가 체질인 배우들이 일이 체질인 캐릭터를 만나 선보인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매력은 주인공을 맡은 세 배우의 내공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인정한다. 출퇴근 시간을 엄수하며 일과 사랑을 만끽하는 진주, 전남편이 서울 집을 양도하자 고맙게 문서를 받아 나가다가 돌아와 양도세를 내주겠다는 말까지 야무지게 챙겨 듣고 나가던 한주, 본인의 문제를 자각하고 극복을 향한 걸음을 내딛으며 새로운 작품을 위해 여행을 떠난 은정,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셋 중에 가장 눈에 쏙 들어왔던 캐릭터는 이은정으로, 한주의 전남편을 죽여버리겠단 기세로 도끼를 들고 달리던 순간부터 예사롭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회에 이르러 맛있게 끓인 라면을 늦은 밤에 사이좋게 나눠 먹는 진주, 은정, 한주의 모습이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통해 세 친구가 선보였던 군침 돌게 만드는 다양한 먹방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한 집에서 같이 살았던 시간을 기억하며 각자의 인생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으니, 앞으로도 즐겁지 않을 리가 없다.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가 이런 것이구나를 알려주었던 드라마를 보내며, 내일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맛좋은 음식을 먹겠다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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