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스카팽 :: 웃음 속 풍자로 가득한 프랑스 희극의 재미를 알려준 몰리에르를 만나다
연극 <스카팽>은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가 집필한 희곡 <스카팽의 간계>를 우리 정서에 맞는 각색으로 재탄생시켜 무대 위에 올린 작품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을 만나기 위해 오래간만에 명동예술극장을 방문하게 됐는데, 올해 관람한 공연 중에서 가장 큰 웃음과 재미를 선사한 극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보고 듣는 재미가 엄청났던 공연으로, 극작가인 몰리에르를 제외한 등장인물 모두가 얼굴에 하얀 분장을 하고 나타나 과장된 몸짓과 표정을 중심으로 탁월한 연기를 선보여 깊이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음향을 담당한 연주자는 1명 뿐이었으나 여러가지 악기를 다루는 실력이 출중해서 이 또한 감탄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몰리에르가 무대에 나와 본인 소개를 상세히 읊어낸 다음, 극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하게 해주고 나서야 본격적인 공연의 막이 열렸다. 이를 통해 만나게 된 스카팽 이야기 자체는 뻔한 설정과 결말로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색다를 재미를 발견하게 돼 만족스러웠다.
연극이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곁들여져 흥겨움이 더했다. 그중에서도 스카팽, 실베스트르, 옥따브가 무대에 앉아 마이크를 손에 쥐고 부르던 랩의 향연은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움직임과 음악적 효과음이 딱딱 맞아 떨어짐에 따라 경험하는 것이 가능했던 배우들과 연주자의 완벽한 호흡 역시도 인상적이었다.
이와 함께, 몰리에르가 그저 작가로만 무대 한쪽에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공연에 출연해 다양한 배역을 소화해내는 장면도 눈여겨 볼만 했다. 실수를 많이 한 배우에게 다가가 역할을 핑계삼아 응징을 가하는 장면도 재밌었다. "지문 빼!"라던 몰리에르의 호통도 생각이 난다.
더불어, 연극 <스카팽>의 명대사로는 "연결해!"를 꼽을 수 있겠다. 몰리에르가 배우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고 난 뒤에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이 대사가 반복됐는데, 들을수록 웃음이 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2019년 현재의 대한민국 실상을 녹여낸 유머 역시도 공연장 전체에 공감대를 형성시켜 웃음바다를 일으켰다.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풍자적 요소가 다분해서 곱씹어 보기에도 괜찮은 작품이었어서 기억에 더 남는다.
명동예술극장 2층 좌석에서 봤는데 무대가 한눈에 들어와 역시나 좋았다. 관람은 왼쪽 객석에서 했으나 공연 시작 전 사진 촬영을 해도 된다고 해서 중블에서 한 장 남겨봤다.
왼쪽에는 연주자의 공간이, 오른쪽에는 희곡을 집필하는 몰리에르의 책상이 마련돼 무대 위 무대에서 공연되는 스카팽이 리허설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연극 <스카팽>의 이야기와 함께 몰리에르의 참여가 더해질 땐 극중극의 분위기 또한 경험하게 돼 흥미로웠던 게 사실이었다.
자신의 차례가 아닐 땐, 무대 위 무대 양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공연을 보며 힘을 북돋아주는 배우들의 모습도 감명깊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작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호응과 격려를 포함해 필요한 소리를 더해주는 순간들도 눈에 쏙 들어왔다. 관객들은 물론이고 앉아 있는 배우들까지 빵 터지는 장면들도 많았어서 이 또한 유쾌함을 전해주었다.
[CAST]
몰리에르 : 성원
스카팽 : 이중현
아르강뜨 : 양서빈
제롱뜨 : 김한
옥따브 : 이호철
레앙드르 : 임준식
제르비네뜨 : 박가령
이아상뜨 : 강해진
실베스트르 : 박경주
네린느 : 이수미
부모(옥따브의 어머니 아르강뜨와 레앙드르의 아버지 제롱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쟁취하고 결혼의 결실을 이뤄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스카팽은, 레앙드르의 하인 스카팽의 이름에서 비롯된 극이었다. 옥따브는 이아상뜨를, 레앙드르는 제르비네뜨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스카팽에게 도움을 받아 계획을 실행에 옮기며 펼쳐지는 사건사고가 눈을 뗄 수 없게 해서 온 신경을 집중시켜 바라보게 됐던 시간이었다.
공연 볼 때 배역 이름이 귀에 선명히 들려오지 않았던 것만 제외하면, 대부분 흡족함을 가져다 준 연극 <스카팽>이었다. 각각의 캐릭터에 따른 개성이 배우들의 열연으로 빛을 발한 점도 좋았다.
"아빠가 결혼하냐 아들이 하지", "엄마가 결혼하냐 딸이 하지" 등의 가사가 들려오던 넘버도 귓가를 울렸다. 이로 인해 공연의 처음과 끝에서 무대가 나오고 들어갈 때 모든 배우들이 함께 부르는 음악의 중독성도 상당했다.
무대 위를 보는 내내 연극 <스카팽>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몰리에르라고 답할 수 있겠다. 몰리에르의 희곡은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됐는데, 원작을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 아닐까 싶다. 감칠맛 나는 연기를 해준 성원 배우 역시도 멋졌다.
게다가 각색이 꽤 많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원작 특유의 포인트는 살려냈을 것이 분명하니 빠른 시일 내에 읽어보기로 다짐했다.
덧붙여 코메디아 델라르테, 16세기로부터 비롯돼 18세기까지 걸쳐 발달한 이탈리아의 가벼운 희극적 특성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연극 <스카팽>을 우리나라에서 만나볼 수 있게 해준 국립극단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맛깔나는 재구성도 최고였다!
이날 공연이 끝나고 이어진 커튼콜에서 몰리에르가 홍보 많이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예매 사이트에 접속해 확인해 보니 이미 전석 매진에 가까워서, 새삼 인기를 실감하게 됐던 연극 <스카팽>이었다. 좋은 작품은 입소문을 타는 법이니까 빈 자리가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이해가 갔다.
웃음 속 풍자로 가득한 프랑스 희극의 재미를 알려준 몰리에르와의 만남이 벅찬 감동을 선물했던 하루를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였던 공연이라 기회가 된다면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문화인의 하루 > 공연의 모든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 관객과의 대화까지 함께 해 더 알찼던 시간 (최연우, 정휘) (0) | 2019.11.01 |
---|---|
[연극] 킬롤로지 ::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에 찾아온 비극을 이야기하다 (0) | 2019.10.11 |
[연극] 킬롤로지 ::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자화상을 담다 (0) | 2019.09.23 |
[뮤지컬] 사의 찬미 :: 20190907 완벽한 결말 (김경수, 안유진, 김종구) (0) | 2019.09.22 |
[연극] 오만과 편견 :: 이 공연은 그저, 완벽한 원작 소설의 축소판 (0) | 2019.09.13 |